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① 글 쓸 때도 사람이 먼저다
②‘대한’을 대하는 자세
③‘의’와 전쟁을 선언하라
④‘빵들과 장미들’이 어색한 이유
⑤ 갖지 말고 버리자
⑥ ‘것’을 줄여쓰라
⑦ 주어에 서술어를 응답하라
⑧ 쌍상에 맞춰 ‘응답하라’
⑨ 동사가 먼저다
⑩ 좋은 글은 ‘갑질’하지 않는다
⑪ 중언부언 말자
⑫
영어 번역투에서 벗어나자
⑬
일본식 표현 ‘적’을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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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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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다른 단어에 들러붙어 뜻을 풍부하는 구실을 하는 ‘접사’가 있다. 접사 가운데 접미사는 어근이나 단어 뒤에 붙어 새 단어를 만든다. 접미사에는 ‘뭔가 많거나 심한 사람’을 뜻하는 ‘꾸러기’(장난꾸러기·잠꾸러기), 뭔가 지키는 사람을 뜻하는 ‘지기’(등대지기·문지기), 수와 양을 뜻하는 ‘짜리’(다섯 살짜리, 얼마짜리) 등 무척 많다.
곶감 빼듯 ‘감’을 빼자
접미사 가운데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뒤에 붙어 느낌을 보여주는 게 ‘감’이다. 요즘엔 이 감을 남용한다. 행복감, 불행감, 불안감, 불만감, 초조감, 절망감…. 여기서 곶감을 빼 먹듯 감을 하나씩 빼자. 행복, 불행, 불안, 불만, 초조, 절망…. 굳이 감을 넣어 쓸 필요가 없다. 감정을 나타나는 단어에는 감을 넣지 않는 게 낫다.
물론 감을 넣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책임감, 우월감과 같이 쓸 때다. 책임감은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느낄 때, 우월감은 남보다 낫다고 여길 때다.
그런데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의 기대감은 한 번도 어긋난 일이 없다.” “사장은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들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두 문장 모두에 ‘기대감’이 들어가 있다. 기대(期待)는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을 뜻한다. 굳이 감을 쓸 필요가 없다. 감을 모두 빼버리는 게 낫다.
“그는 너무 경솔했다는 후회감이 치밀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걸 그랬다는 후회감이 생겼다.” ‘후회감’은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는 말이다. 여기서도 감을 빼라.
‘성’은 진정성 있게 써라
“대선 후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언론에서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진정성’이 있다. 명사 ‘진정’(眞情) 뒤에 접미사 ‘성’(性)을 붙였다.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을 뜻한다.
원래 진정성을 뜻하는 영어 ‘authenticity’는 그리스어 ‘authentikos’(진짜)에서 기원했다. 가짜가 많은 곳에서 진짜는 ‘원본’이나 ‘독창성’을 의미했다. 독창성을 담은 원본을 만드는 사람을 ‘작가’(author)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품은 ‘권위 있는’(authoritative)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진정성’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진정성은 1990년 초부터 사람 입에 오르내렸지만, 지금도 그 뜻이 모호해 정치인이나 언론에서만 주로 쓴다. 분명 쓰이기는 하지만 뜻이 자리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단어다.
‘근접성’ ‘친밀성’ ‘가독성’ ‘붙임성’처럼 접미사 ‘성’이 붙은 단어를 자주 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성’을 ‘성질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정의한다. 순수성은 순수한 성질, 신축성은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성질, 창의성은 창의적인 성질이다.
성도 감과 마찬가지로 남용되고 있다. 되도록 줄여 쓰자. 성을 다른 표현으로 바꿔보자. 진정성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이렇게 수정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수월성 교육으로 학교 차별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도 성이 붙은 단어가 눈에 띈다. ‘수월성’이다. 이 단어 역시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말 ‘수월하다’는 ‘까다롭거나 힘들지 않아 하기 쉽다’는 뜻이다. 단어 뜻으로 보면, ‘힘들지 않고 쉽게 교육하는데 왜 학교 차별로 이어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만큼 이 단어를 보고 직관적으로 의미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단어는 최근 만들어진데다 교육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쓰기 때문이다. 수월성은 미국 교육정책에서 온 ‘Excellence in Education’에서 비롯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엘리트 교육’이 된다. “엘리트 교육으로 학교 차별화가 이어지고 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이처럼 성은 필요 없는 곳에는 쓰지 않는 게 좋다. 성을 갖다 붙이면 의미 전달 ‘정확성’도 떨어진다.
‘화’를 줄이자
접미사 ‘화’(化)는 ‘어떤 현상이나 상태로 바뀌는 것’ 또는 ‘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화는 민주주의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고, 도시화는 도시처럼 된다는 뜻이다.
화는 영어에서 동사를 명사로 만드는 접미사(~ization)에서 왔다. 한자를 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많이 사용한다. 화도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적’과 함께 한자 뒤에 많이 쓰인다.
화는 주로 명사 뒤에 붙지만, ‘강하다’란 형용사에 붙어 ‘강화’(强化)로 활용하기도 한다. 동사에 붙기도 하는데, ‘변화’(變化)는 ‘변하다’는 동사에 붙은 거다.
한자어를 동사로 바꿔줄 때 쓰는 방법은? ‘하다’를 붙이는 거다. ‘공부’라는 한자어에 ‘하다’를 붙이면 ‘공부하다’가 된다. ‘근무’라는 한자어에 ‘하다’를 붙으면 ‘근무하다’가 된다.
화는 동사로 바꿀 수 없는 한자어에 주로 붙인다. 산업·공업·민주·도시 같은 말에 바로 ‘하다’를 붙일 수 없다. 이때 들어가는 게 ‘화’다. ‘도시+화+하다’ 이렇게 말이다. 두 단어를 이어주는 윤활유 구실을 하는 셈이다. 문제는 ‘하다’로 동사로 만들 수 있는 명사에도 ‘화’를 붙이는 것이다.
“청년실업률을 낮추려면 인력 수준을 높이고 경제 혁신을 가속화해야 한다.” ‘가속화하다’가 나온다. 여기서 ‘화’는 굳이 쓸 필요가 없다. 왜냐면 ‘가속하다’는 동사가 있기 때문이다. ‘가속+하다’처럼 한자어 명사에 ‘하다’를 붙여 쓸 수 있어 ‘화’를 넣을 필요가 없다. “청년실업률을 낮추려면 인력 수준을 높이고 경제 혁신을 가속해야 한다.” 이렇게 화를 빼는 게 낫다.
“비대화한 공공부문을 축소해야 한다.” 이 문장에서 ‘비대화한’은 어색하다. ‘강대·불량·비대’ 같은 한자어에는 하다를 붙여 ‘강대하다·불량하다·비대하다’처럼 화를 붙이지 않고 쓸 수 있다. 화를 빼자. “비대한 공공부문을 축소해야 한다.” 훨씬 간결한 문장으로 탈바꿈했다.
‘~화하다’는 딱딱한 표현이다. 꼭 필요한 경우 말고는 다른 자연스러운 말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화’를 낸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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