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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재매각 쟁점
“제2금융권의 인수·합병에도 시시콜콜 간섭하던 정부와 금융당국이 사상 최대규모의 매물인 외환은행 매각 건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의혹을 확산하고 정부가 제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2003년 미국계 투기펀드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이 확산되고 있고 론스타의 탈세 등에 대한 국세청 조사 등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재매각 추진에 팔짱을 끼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우려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당국의 방관은 결국 론스타가 단기간에 3조원 이상의 차익을 챙기는 국부유출 사태로 귀결될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과거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을 말끔히 씻고, 인수가격이 적정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도록 정부와 감독당국이 론스타의 졸속 재매각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민간 자본간 거래에 개입할 근거가 없다”며 수수방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시중은행들의 독과점 문제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은행·하나금융지주 등 시중은행들이 인수후보로 적극 참여하면서 이들이 외환은행을 인수·통합할 경우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번 외환 재매각을 계기로 은행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강화하고, 국내 금융산업 재편기에 걸맞는 제도 정비와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스타 조기매각 못 막나
당국, 인수 승인권 활용해 일정 늦춰야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서둘러 끝내고 거액의 매각차익을 챙긴 뒤 청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제동을 걸고 나섰다. 2003년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팔 때 제기된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적정 인수가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엄청난 돈을 투기펀드의 품에 고스란히 바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론스타에 대한 국세청·감사원·검찰의 전방위 조사다. 론스타는 국세청으로부터 탈세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다, 이달 들어 국회까지 과거 외환은행 인수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청구와 검찰 고발 의뢰 방침을 세운 상태이다. 탈세혐의가 확인되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대주주 자격 상실 판정을 받아 보유지분의 10%를 제외한 나머지를 무조건 팔아야 한다. 이럴 경우 강제 매각지분에 대해서는 제값을 받기 힘들어지고, 나머지 10% 지분에 대해서도 4% 이외에는 의결권을 상실해 사실상 외환은행으로부터 손을 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감사원이 감사에 들어가고 검찰수사까지 진행되면 매각 일정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야당은 감사원·국세청·검찰의 감사나 조사결과의 윤곽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매각 일정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주가가 뛰어 높은 가격 부담을 져야하는 인수 희망자들 역시 매각 일정이 늦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는 하나같이 “(불법매각 의혹으로) 상처난 매물을 사는 것은 부담”이라며 “당시 매각 당사자인 정부가 나서 의혹을 말끔히 해소한 뒤 인수하도록 일정이 늦춰지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에서 사고파는 거래에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최근 국회에서 “매각을 연기시킬 현실적 권한이 없다”며 외환 매각과정에 불개입 원칙을 거듭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 전문가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인수·합병의 최종 승인권을 갖고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매도자·매수 희망자와 협의하면 매각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은행산업 독과점 우려 국민은행 인수땐 시장점유율 40% 새 쟁점 이번 외환은행 매각과정에서는 은행산업의 독과점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눈길을 모으고 있다. 유력한 국내 인수후보인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40% 까가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해 공정거래법상 독과점의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과 통합했을 때 영업이익면에서 시장 점유율 40%, 자산규모 30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은행이 탄생한다. 현재 공정거래법상 단일업체가 50%, 3개 업체가 70% 시장점유율을 가질 경우 독과점의 위험이 크다고 보고 규제를 받도록 되어있다. 과거 국내 은행산업은 다수 은행들의 경쟁체제를 유지해와 독과점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다. 정부와 금융시장에서는 선도은행과 대형은행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초대형은행의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시장도 경쟁적으로 짜여져야 하기 때문에 독과점 문제가 있는 은행의 인수·합병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부가 이를 방관해서는 않된다”고 지적했다. 국민은행은 이에 대해 “영업수익 기준 말고 여신·수신·카드 등 금융시장 전체로 보면 외환과 합병해도 시장점유율은 20%대에 머물 것”이라는 주장이다. 독과점 여부에 대한 판단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독과점 여부는 50%, 70% 규정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시장을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문제”라며 “현재 은행업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 소비자·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외국사례를 통해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성용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앞으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과정에서 (독과점 여부를 포함해) 이런 부분을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은행산업의 시장점유율을 법적으로 제한하거나 은행간 인수·합병을 규제하고 있다. 지동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합병은 앞으로 신한·하나지주의 우리은행 및 기업은행 인수합병 시도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따라서 정부가 이번 외환 매각건에 대해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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