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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고 있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장중 한때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950원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일 동안 22.70원, 연초부터 3개월여 동안 50원 넘게 폭락했다. 외환당국이 최근 구두개입은 물론 물량개입까지 나섰으나 환율 급락을 막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시장에서는 상반기 중 원-달러 환율이 920원대까지 떨어지고 원-엔 환율도 100엔당 800원대를 위협하는 등 원화강세(환율하락)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어, 국내 수출업체들의 수익성에 비상이 걸렸다. 브레이크 없는 급락, 왜? = 외환 딜러들은 최근 며칠간 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표현하는데 ‘전투’란 말을 서슴치 않는다. 갑자기 쏟아지는 엄청난 달러 매물 탓에 하루에도 몇번씩 급락장이 펼쳐지고, 외환당국은 개입에 나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이날도 원-달러 환율이 한때 달러당 948.50원까지 하락했다가 전날보다 0.1원 낮은 달러당 953.4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27일의 939.9원(종가) 이후 8년 5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또 원-달러와 엔-달러 환율로 결정되는 원-엔 환율도 7일 100엔당 809.24원까지 주저앉았다. 올초 100엔당 856.71원에서 3개월여만에 50원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810원대 아래로 내려간 것은 97년 11월18일 이후 처음이다. 최근 환율 급락(원화강세)의 중요한 이유는 시장에서 달러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상칠 국민은행 외환딜러는 “4월 들어 외국인 배당금 송금수요로 환율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데다 미국의 금리인상 중단설, 위안화 절상에 대한 기대로 달러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업체들의 보유 달러화 물량도 한꺼번에 쏟아지고, 덩달아 역외시장에서도 달러 팔자에 나서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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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금리인상 중단설등 영향…외환당국 “일시적 현상”
수출업체 비상…당국 대책 없나? =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절상율은 올해 초부터 4월7일까지 6%에 이른다. 이는 일본·중국 등 주변 나라들과 견줘도 훨씬 빠른 속도다. 재정경제부가 이날 오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를 보면, 달러화에 대한 통화 절상률은 인도네시아(9.4%), 타이(7.1%)에 이어 아시아에서 3위권이다. 우리나라와의 경쟁국인 싱가포르(3.7%), 대만(1.9%), 중국(0.8%), 일본(0.3%) 등의 절상률은 모두 우리보다 훨씬 낮다. 이에 따라 대외 수출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들이 가격경쟁력에서 그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가파른 원-엔 환율 하락으로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재경부는 최근 원화가 가파른 절상을 기록한 원인은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일시적인 문제로 보고있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집중 유입과 수출 호조 등의 재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생긴 ‘쏠림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재경부는 “환투기 등 의도적인 시장교란 요인에 대해 적절한 시장안정 조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환율 급락은 일시적 현상”이라며 “시장은 수급상황에 따라 결정돼야 하며 한은은 시장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도록 도울 것”이라는 원론적 수준의 대안만을 제시했다. 이정하 산업은행 외환거래1팀 과장은 “투기적으로 볼 수 있는 쏠림현상 탓에 시장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며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당국이 어느 정도의 ‘실탄’을 쏟아부을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고독한 싸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재 권태호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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