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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부터 단계적 실명화 추진
검은거래 줄 듯…암시장 커질수도
검은돈 거래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해온 양도성예금증서(CD·시디)가 드디어 양지로 나오게 됐다. 금융감독 당국이 오는 7월께부터 단계적으로 시디 거래 실명화를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디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만기가 되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기로 약정한 증서로,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도 실명제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 만기가 되기 전에 증권사 등 유통시장에 팔아 바로 현금화할 수 있어 사실상 ‘현금’ 구실을 해왔다. 은행에 처음 돈을 맡길 때와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공식적으로 현금화 하기 전에는 얼마든지 무기명으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26일 시디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디 등록발행제를 도입하고, 시디 실물 거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좌대체 결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7월부터 금융회사 및 공공기관에 대해 등록 발행제를 실시하고 9월부터는 개인과 일반 법인에 대해 시행될 예정이다. 등록발행제는 의무 사항이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적극 유도하고 있어 곧 일반화될 전망이다. 등록발행제는 지금의 주식거래와 같은 형태로 이해하면 된다. 증권예탁결제원에 주식이 예탁되어 있어 실물이 없어도 거래가 이뤄지듯이 시디도 전산상으로 거래되고 중간에 거래를 한 사람의 이름이 모두 남게 된다. “검은 돈 거래 줄어들 것”=금감원은 시디 등록발행제가 도입되면 돈세탁이나 로비자금, 비자금, 편법증여나 상속 등에 시디를 사용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금융권이나 정치, 재계의 웬만한 비리사건에는 시디가 빠지지 않았다. 지난해 시중은행 직원들이 시디를 위조해 현금화 한 뒤 달아나는가 하면,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할 때도 제3자 명의의 시디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거액 비자금 사건과 장영자 어음부도사건,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 등에도 어김없이 시디가 등장했고,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재벌과 정치인이 시디로 돈을 주고받았던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권에서는 실명제로 검은거래가 줄어드는 효과 외에도, 위조나 절도의 위험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거래 위축이나 다른 부작용 없나=금감원 관계자는 “시디 시장 규모가 제한적이고 금리도 시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유통시장에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만기 상환을 하는 일부 개인고객들이야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아직 실명거래를 희망하지 않는 부동자금의 규모가 엄청난 만큼 다른 형태의 지하 자금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5월말 현재 시디 발행 잔액은 69조원에 이르고 있다. 금리체계 변화도 관심 사안이다.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시디 금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쪽은 시중은행 8곳 등 14개 은행의 금리를 매일 평균해서 계산하는 코리보(KORIBOR) 금리로의 변경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지만, 금융권 실무자들은 “시디 금리만큼 시장상황을 예민하게 반영하는 게 없다”고 말한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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