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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4 19:47 수정 : 2006.10.24 19:47

금융권 외화차입·기업 달러 선물환 매도 늘어
“기초체력과 무관한 달러 공급과잉 탓” 분석


최근의 환율 움직임만 보면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경기 둔화에다 경상수지 적자 확대, 북핵 사태 등 원화가치가 떨어질 요인이 많은데도, 정작 원화 환율은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원고’의 원인을 놓고, 기업과 금융권 간에는 책임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거꾸로 가는 환율=외환시장의 수급사정을 보면 원화 환율이 오르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경상수지는 하반기에 반전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8월까지 13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5월 이후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판 주식금액은 사들인 주식금액보다 120억달러나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외펀드 투자금액도 170억달러에 이른다. 이들 셋을 합치면 300억달러가 넘는다. 이 모두 달러가 국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압력으로 작용할 요인들이다. 장기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주는 경제 상황도 환율상승 쪽이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전망은, 정부 스스로 내년에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불투명하다. 내년 경상수지는 10년만에 처음으로 적자가 예상된다. 북핵 사태도 최악의 고비는 넘겼지만 국가신용등급 하락 압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환율은 이런 시장 여건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달러=1,100원선을 깬 것이 2년 전인 2004년 10월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타면서 올해초 1천원선이 무너졌다. 지난 5월 920원선에서 바닥을 친 뒤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95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북핵 사태로 한 때 960원대로 올라섰지만 다시 미끄러졌다. 최근엔 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까지 급락하는 ‘엔저’까지 겹쳤다. 한 수출기업 임원은 “엔저는 달러 대비 엔화의 약세가 근본원인이지만 원화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면서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됐다”며 “원고와 엔저의 이중고로 기업들이 죽는다”고 탄식했다.

금융권과 기업들은 원화가 고평가됐다는 데 동의한다. 금융권에서는 달러당 1천원선이 적정하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더 높게 본다. 어쨌든 최소 5% 이상 고평가된 셈이다.

책임 공방=기업들은 ‘원고’의 책임을 금융권의 단기 외화차입 급증으로 돌린다. 현대차그룹의 임원은 “올들어 금융권 단기 외화차입이 370억달러나 급증했다”며 “이로 인해 외환시장에 달러공급이 늘면서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융권의 분석은 정반대다. 기업들의 달러 선물환 매도가 환율을 왜곡시킨다고 역공한다. 기업들이 달러가치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달러를 미리 내다파는 게 주범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조선업체들이 선물환 매도에 열심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심지어 4년 뒤인 2010년에 배값으로 받을 달러도 미리 판다”고 전한다.

기업들의 선물환 순매도 규모는 올들어 9월까지 287억달러에 이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 환율이 떨어질 때 환위험 회피(헤징)를 안했던 재무담당자들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본 뒤에는 100% 헤징을 한다”고 말한다.

시장에 달러가 쏟아지니, 원화가치가 상승압력을 받고 환율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금융권은 외화 차입도 기업 탓으로 돌린다. 한은 간부는 “기업들이 달러를 많이 팔수록 은행들은 외화자산이 많아져,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려면 달러 부채를 늘리거나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팔아야 한다”면서 “이 모두 환율하락 요인”이라고 말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수출업체의 최고경영자들이 환율 때문에 죽겠다고 하면, 당신 밑에 있는 외환담당 임원이나 잘 단속하라고 말한다”면서 “기업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는 정부의 책임 회피라고 발끈한다. 수출기업의 한 임원은 “가만히 있다가 달러가치가 떨어져 손실이 나면, 정부나 한은이 책임질거냐”면서 “정부는 기업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 대책을 내놔야한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정부의 외환관리 실패라는 ‘원죄’ 탓도 크다고 말한다. 정부는 2003년 이후 환율 하락을 막으려고 외환시장에 개입했다가 20조가 넘는 큰 손실을 입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국회에서 정부의 환율방어 실패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앞으론 정부가 쉽사리 개입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안선희 기자

jskwak@hani.co.kr


☞ 환율과 선물환 거래=환율은 우리 돈과 외국 돈(미 달러) 간의 교환비율이다. 환율은 단기적으론 외환시장에서 외환에 대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즉, 달러 공급이 늘면 달러가치가 떨어지면서, 원화의 교환비율(환율)이 내려간다. 선물환 거래는 현재 약정한 가격으로 향후 일정시점 뒤에 외환을 거래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주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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