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23 20:20
수정 : 2006.11.24 01:11
주택대출 겨냥 시중 풀린 부동자금 흡수 초점
16년만에 인상…약효 없으면 콜금리 올릴수도
한국은행이 한동안 쓰지 않던 예금 지급준비율(지준율) 인상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가파르게 치솟는 집값을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을 하기 위해서다. 16년여 만에 지준율 인상이란 정책 수단을 갑작스레 동원한 데서 보이듯 한은의 움직임에는 다급함마저 느껴진다.
한은은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요구불예금 등 단기 예금의 지준율을 현행 5.0%에서 7.0%로 올렸다. 대신 장기주택마련저축 등 장기 저축성예금의 지준율은 1.0%에서 0%로 낮춰 사실상 지준율을 없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지난해 10월 이후 다섯 차례 콜금리를 인상했지만 최근 통화 증가율이 급증하고 있어 지준율을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지준율 인상안은 12월23일부터 시행된다.
지준율 제도는 은행이 언제든지 고객의 예금 지급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예금 총액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쌓아두도록 하는 것이다. 대체로 지준율이 조정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이 직접 영향을 받아, 충격의 강도가 콜금리 조정보다 클 수 있다.
한은이 지준율 조정에 나선 것은 집값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여론을 더는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인 듯하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지방도 부분적으로 투기 조짐이 보인다. 땅값도 오름세가 이어져 올 들어 10월까지 전국 평균 상승률이 4.55%나 된다.
부동산 가격이 이처럼 급등하면서 이득은커녕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자원 배분의 왜곡이 심해지는 것 또한 더 방치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한은이 지난 9일 금통위 회의에서 콜금리를 동결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한은이 오랫동안 저금리 기조로 시중에 유동성이 넘치게 해 부동산 시장의 왜곡에 일정한 구실을 해놓고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한은의 지준율 인상으로 일단 은행들의 대출 증가세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택 담보대출에 연관된 단기 유동성의 증가세가 우선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 예금의 지준율이 2.0%포인트 올랐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에 따른 지준율 증가액이 5조원 가량은 될 것으로 분석한다. 여기다 장·단기 예금의 지준율 격차가 확대돼 장기 예금에 금리를 더 쳐줄 유인이 커졌다. 단기 예금이 장기 예금으로 갈아탈 여지가 넓어진 것이다. 지준율 인상은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주택으로 몰리는 자금의 비중이 줄어들 수 있게 된다. 주택 담보대출 급증이 최근의 집값 급등을 이끈 한가지 요인이라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집값을 안정시키는 데 다소나마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지준율 인상으로 올해 안에 콜금리가 다시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준율 인상안이 다음달 하순에 시행되기에 한은으로서는 그 과정을 지켜본 뒤 콜금리 조정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지준율을 올리고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면, 콜금리를 당장 연내에 인상하거나 내년 초에 인상을 단행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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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준비율(지준율) 제도란 은행이 예금주의 예금 지급 요구에 언제라도 응할 수 있게 예금 총액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예컨대 예금 총액이 100조원인 은행의 경우, 지준율을 5%에서 7%로 올리면 매달 적립해야 할 돈이 5조원에서 7조원으로 늘어, 그만큼 은행으로선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만약 은행이 지준율을 맞추지 못하면 부족액의 1%를 과태료로 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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