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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02 20:19 수정 : 2007.05.03 14:56

우리나라 고액권 변화

사과상자 하나면 30억…검은돈 유통은 쉬워져

10만원과 5만원 고액권이 나오면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까?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영업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뇌물 제공과 비자금 조성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위조지폐 제조가 늘어나지는 않을까?

“경조사비 올라갈 것 같다”=2일 낮 12시10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근처 식당에는 점심식사를 하는 회사원들로 붐볐다. 텔레비전에서 한국은행이 고액권을 발행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반응이 엇갈렸다. 이 식당 사장은 “10만원권 수표를 받을 때 이서를 요구하면 손님들이 싫어하는데다 이서를 받았는데도 부도 수표인 경우가 있었다”며 고액권 발행을 반겼다. 그는 또 “은행에 10만원권 수표를 맡기면 당일 못 찾고 다음날 오후 2시 이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며 “현금이 빨리 돌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원들은 심드렁해했다. 한 직장인은 “1만원권 여러 장을 지갑에서 내야 돈 쓰는 맛이 있는데 10만원권은 그렇지 못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옆에 있는 동료는 “부모님께 용돈 드릴 때도 봉투가 가벼워질 것 같다”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이서를 할 필요가 없어져 개인 정보 보호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성곤 하나은행 차장은 “1만원권보다 씀씀이가 헤퍼져 과소비할 수도 있겠지만, 소비가 늘어나 내수 회복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 한해 1700억 이익=고액권 발행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주판알로 튕기면 한은과 은행들은 득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연간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10억장 가량 발행한다. 이들 수표의 수명은 통상 10일 정도에 그친다. 이를 10만원짜리 고액권으로 대체하면 ‘10억장×10만원×10일÷365일’의 계산으로 2조7천억원 정도의 통안증권(한은이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발행하는 특별 유통증권) 발행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통안증권 이자를 연 4.5%로 적용하면 10만원권 수표 대체만으로 1200억원 정도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여기에 제조·운송·보관·검사 등 화폐관리에 소요되는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이런 비용 절감은 정부의 재정 수입 증가로 이어진다.

반면 시중은행은 이자 수익이 줄게 된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고객들이 수표를 맡긴 뒤 은행들은 이자도 주지 않고 이를 운용해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며 “고액권이 만들어지면 이런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수표 발행과 보관 등에 따른 비용으로 연간 4천억원 정도를 부담해 왔으나, 고액권 발행으로 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이득을 보게 된다.

사과상자 하나면 30억=1997년 수서 비리 사건 당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사과상자에 2억4천만원, 라면상자에 1억2천만원을 넣었다. 96년엔 신한국당 김석원 의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사과상자 25개(61억원)에 담아 보관했다. 99년 대선 자금 불법모금에 등장했던 여행용 가방에는 5억원, 안상수 인천시장의 여동생이 지난 2004년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받은 굴비상자에는 2억원이 들어갔다. 안동 간고등어 상자에는 3천만원, 곶감상자에는 2천만원, 초밥통에는 300만원이 들어갔다.

10만원권이 나오게 되면 사과상자 하나에 30억원 가까이 담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표는 자금 흐름이 쉽게 추적되지만 고액권은 상대적으로 추적이 어렵다. ‘검은돈’의 유통이 그만큼 쉬워진다. 무자료 거래와 음성적 탈루도 더 용이해져 조세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초정밀 위폐 나돌수도= 현재 심심찮게 발견되는 위조지폐는 개인들이 컬러복사기를 통해 만들어 유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화폐인 ‘슈퍼노트’처럼 기업형 위조지폐를 만드는 단계까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10만원권이 나오면 위조지폐를 만들 유혹이 커질 수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조폐공사와 함께 고급 위변조 방지장치 적용에 대해 계속 연구하겠지만, 지금 어떤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은행의 현금 입출금기(ATM)에서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하는지도 논란거리가 된다. 고액권 입출금 과정에서 금융사고나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소비자 편의를 위해서는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 총재는 “고액권의 현금 입출금기 이용 문제는 은행이나 민간 부분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한은도 은행권과 함께 신중히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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