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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권에 ‘동그라미’가 너무 많다 |
2009년 상반기 발행 예정인 10만원권 지폐에 아라비아 숫자 `영'(제 로)이 모두 몇개 들어갈까?
현재 유통중인 지폐에는 숫자로 표시되는 액면금액이 앞.뒷면에 2개씩, 모두 4개이다.
10만원에는 영이 모두 5개 들어가기 때문에 앞뒷면 모두 합치면 영이 무려 20개나 필요하다.
문제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발생한다.
앞면에는 `100000' 이라는 커다란 숫자가 좌우에 꽉 들어차기 때문에 지폐 도안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볼 때는 앞으로 다섯손가락을 동원해 지폐의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헤아려야 하는 불편도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고액권 발행계획을 발표하면서 화폐액면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을 현단계에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고액권이 실제 유통되기 시작하면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더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3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초 발행된 새 1천원의 가로길이는 138㎜로 이 가운데 앞면 좌측하단 부위에 새겨진 `1000' 액면표시 숫자의 가로 크기는 32㎜다.
1천원 지폐의 가로 길이에 대비한 액면숫자의 비율은 23.5%다.
1만원 지폐의 좌측하단 액면숫자의 가로길이는 41㎜로, 지폐 전체 길이 148㎜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7.7%로 커진다.
현재 유통중인 지폐의 액면숫자 크기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10만원권의 경우에는 `영'이 하나더 추가되면서 숫자의 가로길이는 50㎜로 길어진다.
10만원 지폐의 가로길이 160㎜에 대비한 액면숫자의 길이 비중은 31.3%로 커진다.
지폐 길이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공간에 액면 숫자가 가로로 배치되는 셈이다.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면 화면 가득히 동그라미가 꽉 들어차는 느낌이다.
인물초상과 여타 보조소재를 심미적으로 배치하기에 꽤 부담스러울 것이라는게 한은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또 동그라미가 5개나 되기 때문에 한눈에 액면 금액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현재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경우 `100,000' 으로 액면금액을 표시하고 있지만 지폐에는 `콤마'가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인물초상이나 색상, 한글로 표시는 액면금액으로 지폐 권종을 구별해야 할 형편이다.
만약 10만원, 5만원권이 발행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액면권종은 우리나라가 차지하게 된다.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헝가리에서 2만포린트 지폐가 발행되고 있으나 한국의 고액권이 이를 추월하게 된다.
국가적 위상이나 지폐의 사용 편리성 등을 감안할 때 고액권 발행을 계기로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될 것이라는게 한은 내부의 분위기다.
박상현 기자 shpar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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