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솔 나오는 ‘금산 분리 철폐’ 주장들
|
금감위원장 발언 이어 이명박-박근혜 한목소리
“재벌에 은행 넘기는 것…금융·산업 분리 고수를”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잇달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상호 지배를 금지하는 ‘금산 분리 원칙’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금산 분리 원칙이 무너지면 결국 재벌 손에 은행이 넘어가 우리 경제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낸다.
이 전 시장은 7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서울파이낸스포럼 주최로 열린 조찬 강연에서 “매우 조심스럽지만 누군가는 물꼬를 트는 발언을 해야겠다”며 “금산 분리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이 전 시장은 이어 “금융과 산업자본 관계는 지난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외국 기업들은 펀드를 만들어 은행을 인수했다. 역차별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고 있는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고쳐, 국내 재벌도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에 앞서 박 전 대표도 지난달 16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외국 자본은 이제 다 들어오는데 외국 자본에는 자율을 주고 우리 기업에는 자율을 안 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외국인들에게는 의결권을 10%까지 허용하는 데 국내 기업에는 4%밖에 허용 안하는 것은 대표적인 역차별”이라 주장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발언은 그간 재계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내용과 다르지 않다. 특히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은 금산법의 족쇄에 묶여 지배구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금산법을 무력화시키는 데 힘을 쏟아왔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지분을 25.64% 소유한 삼성카드는 5%를 넘는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받고 있을 뿐 아니라, 5년 안에 초과 지분을 모두 해소해야 한다. 현행 금산법상 금융회사는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5% 초과해 보유하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대권 후보라는 사람들이) 론스타 같은 사례를 들어 국내 금융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이는 론스타가 외국자본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비금융 주력자의 손에 은행이 넘어간 게 근본적 원인이었다. 문제 의식은 올바를지 모르나, 전혀 엉뚱한 해답을 이끌어낸 꼴”이라 꼬집었다. 이건범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만일 외환위기 때 국내 재벌들이 은행을 손에 쥐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회복하기 힘든 위기를 맞았을 것”이라며 “아무리 금융감독 당국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더라도 기업으로선 경영상 어려움에 빠지면 예금을 마음대로 빼내 쓸 수 있어, 산업 집중도가 낮은 미국에서도 금산 분리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진다”고 말했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금산 분리 원칙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임승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선진국에서도 제도 이전에 이미 시장에서 받아들여진 원칙”이라며 “현재로선 금산 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법 개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정혁준 기자june@hani.co.kr·
금산 분리 원칙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 일정 지분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은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단독으로 20% 이상 소유하거나 계열사들과 함께 5% 이상 지분을 갖고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하려면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는 예를 들어 재벌이 은행을 소유해 은행 예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