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28 08:46
수정 : 2007.09.2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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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발급 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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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량 할당해놓고 실적 몰이
직원들 ‘카드 스와핑’도 성행
농협중앙회의 한 영업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33) 과장은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창구에 하나은행 직원이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이 찾아와 “이번 달 목표량에 몇 좌 못미친다. 도와달라”며 자사 카드에 가입하면, 본인도 농협카드를 들겠다고 제안해 받아들였는데, 며칠째 감감무소식이다. 오죽 다급하면 거짓말을 했겠나 싶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치열한 카드 회원 유치 경쟁의 한 단면이다. 영업점마다 목표량을 주고 직원을 독려하는 것은 예사다. 다른 은행 직원끼리 서로 카드를 들어주는 이른바 ‘카드 스와핑’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은행들의 실적 독려에 직원들은 숨이 찬다.
올 들어 우리은행은 이례적으로 본사 직원에게도 카드 유치 할당량을 제시했다. 반기별로 실적을 평가해 우수 직원에겐 상품을 주거나 외국여행 기회도 제공한다. 카드 유치 1좌당 일정액의 수당도 지급한다. 국민은행은 카드나 대출, 펀드 등 상품별로 한 단위씩 판매할 때마다 점수를 부여해 목표를 채우도록 한다. 외환은행은 지역본부 간 경쟁이 두드러진다. 지역본부에서 소속 영업점에 목표량을 제시하면, 영업점 내에서 각 직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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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 카드회원 증감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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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카드 고객 유치에 주력한 탓에 올 들어 신규 회원 수는 크게 늘었다. 특히 올 4월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마다 100원씩 할인해 주는 파격적인 부가서비스가 제공되는 ‘마이웨이카드’로 두 달 만에 50여만명의 회원을 모집한 하나은행은 6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100만3천명을 더 모집했다. 우리은행 역시 지난해 말보다 76만6천명을 신규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국민 한 명당 평균 3∼4장의 카드를 갖고 있을 정도로 포화 상태인 점을 고려하면, 이런 모집 실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발급된 카드 개수는 올해 1분기 현재 9211만개로 ‘카드 대란’이 일어났던 2002년의 1억480만개에는 못미치지만 다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은행권이 카드시장에 공격적으로 나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주 수익원이던 주택담보대출에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수료를 손쉽게 챙길 수 있는 카드시장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은행권으로선 주택담보대출 등이 정부 규제로 늘지 않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이익 기반을 만드는 데 카드 회원 모집만한 게 없다”며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공격적으로 회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원 수 증가가 아직까지는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회원 수가 크게 늘어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모두 2분기 카드부문 이익이 전 분기에 비해 오히려 각각 57억원, 10억원씩 감소했다. 박지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공격적 마케팅에 따른 출혈 경쟁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재 연구위원은 “신규 회원이 이익으로 연결되는 데 최소 1∼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움직임에 자극받은 전업계 카드사들은 지난해보다 한층 파격적인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더는 은행권에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이 카드업계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과 전문가들은 자칫 카드시장이 과열로 내닫지 않을까 우려한다. 김준현 금융감독원 여전감독실장은 “건전성이 유지되고 있어 아직까진 과당 경쟁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카드시장 특성상 언제든지 심각한 과당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10월1일 통합신한카드 출범 등을 계기로 카드사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 같다”며 “만약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경기가 악화되면 내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 카드시장이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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