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원-엔환율 급락 심층진단 엔화 대비 원화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이어져온 ‘100엔=1000원’이란 공식을 깨면서 지난 1월말 세자리로 떨어진 원-엔 환율은 이제 900원대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난 6일 6년8개월만에 930원대로 진입한 환율은 이후 소폭 오르는가 싶더니, 11일에는 934.95원으로 다시 전날보다 2.95원 떨어졌다. 예전보다는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곧 회복될 것으로 보였던 원-엔 환율이 3개월째 900원대 선에서 유지되자 수출기업들도 환율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원화에 견준 엔화의 약세는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국산 제품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원-엔 환율 왜 떨어지나=원-엔 환율은 시장환율이 아니라 국내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 변동치를 도쿄 외환시장의 엔-달러 환율 변동치로 나눠서 간접적으로 산출하는 재정환율이다. 따라서 원-엔 환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엔-달러 환율 상승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3월 중순 103엔까지 떨어졌던 엔-달러 환율이 이달들어 108엔대까지 오르는 동안, 원-달러 환율은 1010원 안팎에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원화와 엔화의 대 달러 환율은 서로 같이 오르내리는 뚜렷한 동조화(커플링) 현상을 보여왔지만, 이제 그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조사를 보면 지난해말 0.93이었던 원화와 엔화의 상관계수(1에 가까울수록 동조화)는 1월 0.63, 2월 0.43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그동안 원화와 엔화가 동조 현상을 보여온 주된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수출 품목들이 비슷해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쪽 통화의 상대적 약세는 수출 증가 및 경상수지 개선으로 이어져 결국 해당 통화는 강세를 회복하는 식으로 균형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국으로 부상한 뒤, 중국 경제가 원-달러 환율에 휠씬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원-엔 환율 동조성이 깨지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석달만에 100엔=1000원서 930원대로
달러대비 엔5%↓·원2%↑ 동조화 깨져
“국내 기업 달러투매탓…미세조정 필요”
또 세계적으로 주요국 통화들이 미국 달러화의 강세 반전으로 약세 움직임을 보이는데도 유독 원화만 강세를 보이고 있는 탓도 크다. 올들어 엔화와 유로화는 평균 5% 정도 가치가 떨어졌는데, 원화는 같은 기간 오히려 2%정도 절상됐다. 특히 엔화는 미국이 지속적인 금리인상으로 제로금리 상태인 일본과 금리차를 벌리고 있고, 일본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까지 확산되면서, 미국 달러화에 견줘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의 상대적인 ‘나홀로 강세’에는 국내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출로 많은 달러를 쌓아둔 기업들이 환율이 오르기만 하면 현물, 선물을 가리지 않고 달러를 내다 팔면서 다시 환율을 끌어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최근 각 대기업 외환담당자들에게 달러 매도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고, 박승 한은 총재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원화의 단독 가치 상승을 막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추가 하락 계속되나=기업들의 달러 투매만 없으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원-엔 환율 하락도 진정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일본은 무역흑자 폭을 회복하는 분위기여서 장기적으로는 달러대비 엔화가 꾸준히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경기 전망이 좋아 원화 강세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원-엔 환율은 곧 오름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전 원-엔 환율이 700원대였던 것에 비추면 우리나라 경제수준에 견줘 900원대 환율이 지나치게 낮다고 볼 수 없다”며 “문제는 하락 속도와 폭인데 기업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외환당국이 적절히 미세조정을 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이날 모건스탠리와 제이피모건은 6개월 뒤 엔-달러 환율을 각각 98엔, 96엔으로, 원-달러 환율은 950원으로 전망했다.6s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