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3 21:03
수정 : 2008.03.2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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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펀드 3월 자금유입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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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곡물값 줄줄이 미끄럼…투기자금 이탈 조짐
중 긴축 정책·엔 캐리 청산 ‘변수’…변동성 커질듯
지난해 10월 중국 펀드에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를 본 이아무개(35)씨는 요즘 다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이번 달 초에 가입한 곡물 펀드의 수익률마저 갑자기 -1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곡물을 비롯한 원자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기에, 가격 상승세가 계속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원자재 가격이 이렇게 단기간에 급락할 줄은 몰랐다”고 속상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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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원자재값 상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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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펀드는 연초 이후 ‘대안 투자 상품’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3월 들어 대부분의 주식형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갔음에도 원자재 관련 펀드로는 무려 2124억원의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국내외 주식시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약세를 지속한 반면, 곡물과 원유 등에 투자하는 상품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원자재 시장이 출렁이면서 관련 펀드 투자자들도 불안해 하고 있다.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는 20일(현지 시각)까지 이틀 연속 하락하면서 배럴당 101.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금(-2.6%), 구리(-1.7%) 등 금속은 물론 밀(-8.1%), 옥수수(-3.8%) 등 곡물 가격도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 불안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단기 급등으로 인한 부담이 크다. 서부텍사스유와 금 값은 최근 3개월 동안 각각 8.28%, 10.40% 올랐다. 지난 5년 동안의 연평균 상승률에 견줘 매우 높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3개월 동안 옥수수, 밀 값의 상승률도 각각 14.92%, 28.09%로 지난 5년간 연평균 상승률 13.14%와 17.03%를 이미 뛰어넘었다.
‘투기 자금의 이탈’ 움직임도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금리 인하로 풀린 유동성을 등에 업고 원자재 시장으로 물려들었던 투기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정책금리가 2.25%인 상황에서 미국 금융당국이 추가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여력은 많지 않다”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시장에 풀리는 돈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결국 앞으로 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투기성 자금이 미리 발을 빼고 있다는 분석이다.
저금리인 엔을 빌려와 투자한 엔캐리트레이드 자금의 청산도 원인으로 꼽힌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금리 인하로 미국과 일본간의 금리 차이가 줄면서 엔캐리트레이드의 매력도 떨어졌다”며 “투자됐던 엔화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원자재 가격 급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원자재 값 급등을 이끌었던 투기성 자금의 이동에 따라 원자재 시장의 단기적인 급변동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의 장기적인 오름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최근의 가격 상승을 두고는 거품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조정 기간을 거칠 것으로 내다봤다.
박상현 씨제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큰 흐름에서 봤을 때 미 달러화 약세와 신흥국의 꾸준한 수요 증가로 원자재 가격의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뿐 아니라, 긴축 정책으로 인한 중국 경기의 둔화 추세도 감지되고 있어 앞으로 한동안 원자재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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