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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지부진한가 했더니… 외국계 투기자본에 맞설 우리 자본을 키우자는 취지로 도입된 사모투자전문회사(PEF, 이하 사모펀드) 제도가 애초 기대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현재 금융감독원에 설립신고를 마친 국내 사모펀드는 우리은행, 맵스자산운용 등 5곳이지만, 활동 내역은 아주 부진하다. 우리은행 사모펀드가 우방을 인수한 것이 고작이다. 이마저 투자가 아닌 수익률을 약속받은 변칙 대출성 성격이 짙다는 논란에 휩싸여 결과가 불투명해졌다. 26일 미래에셋이 에스케이생명을 인수하겠다는 의향서를 제출했지만, 미래에셋 자회사인 맵스자산운용은 인수 주체가 아니라 자금을 일부 대는 정도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곳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국민연금 “3500억 투자” 단비 ■ 왜 지지부진한가?=사모펀드는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자금을 마련한다. 그 자금으로 기업을 사서 가치를 끌어올린 뒤, 되파는 방법으로 이익을 투자자들과 나눠 갖는 구조다. 국내 사모펀드들이 고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국계 자본들이 휩쓸고 간 뒤여서 ‘쓸만한’ 기업 매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산운용계 한 사모펀드 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들어온 외국계 자본들이 이미 알짜 은행과 기업들을 사고팔아 단물을 죄다 삼켰고, 그나마 남은 곳은 너도나도 달라붙어 가격만 크게 올려놓아 투자 매력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엘지카드와 같은 대형 매물은 이미 내년 이후로 매각이 늦춰진 상태다.
매물이 없으니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도 어렵다.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 출신으로 지난해 칸서스자산운용을 설립한 김영재 대표는 “외국기업들은 이미 수익률을 검증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간판만 달아도 자금이 모이지만, 그렇지 못한 국내 펀드들은 구체적인 투자대상과 계획 없이 투자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외국계 ?고 간 자리 ‘알짜’ 드물고
투자자는 ‘대박 신기루’ 실탄 안모여
난관 많아 외국자본 대항마 미지수 그나마 국민연금이 올해 3500억원을 사모펀드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 시장의 유일한 ‘단비’다 투자자들이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대박성 투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한 은행 사모펀드 관리팀 임원은 “본래 사모펀드는 내재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은 정상 기업을 사서 가치를 키워 되파는 것”이라며 “국내 투자자들이 쉽게 문을 열지 않는 것은 외환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들어온 외국계 펀드들이 부실기업을 싸게 인수해 몇십 배로 튀겨 투자금액을 회수하는 것만 봐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은 사정이 여의치않자 추진해오던 3천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설립을 중단하고 지난 1월 준비팀을 해체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을 믿고 투자하겠다는 곳은 많았지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기대수익은 턱없이 높아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 외국자본 ‘대항마’ 구실 가능할까?=올해 안에 사모펀드를 만들겠다고 밝힌 곳은 은행 4곳, 증권사 2곳 등 모두 9군데에 이른다. 개인 참여도 활발해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 원장은 외국계 투자은행과 함께 사모펀드 설립 준비에 들어갔고, 외국계 펀드인 칼라일그룹 부회장을 지낸 김병주씨도 칼라일과 결별하고 별도의 사모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이헌재 전 부총리 역시 퇴임이후엔 “국내 자본을 토종 펀드로 육성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어, 금융계는 그의 움직임도 주목하고 있다. 변양호 · 김병주씨등 활동 눈길 그러나 이들 사모펀드들이 수많은 난관을 뚫고, ‘실탄’이 충분한 외국자본에 맞설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내에서 짭짤한 재미를 본 대형 외국 펀드들은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다시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론스타는 50억달러(5조원)의 신규 펀드를 조성중이고, 칼라일과 제이피모건 등도 1조~1조4천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집중이다. 은행들이 설립하는 펀드들은 속성상 안전한 자금운용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여 활동폭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한 증권계 사모펀드 대표는 “은행들이 안전한 수익률에 집착하다보면 기업대출 등으로 확보한 기업 내부정보를 활용하는 등 편법을 쓸 가능성이 높다”며 “감독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병철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펀드와 투자자의 신뢰가 형성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투자성과를 치밀하게 관리해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석구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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