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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1 18:57 수정 : 2005.05.01 18:57



‘고무줄 원가’…2년새 순익 68% 급증

산정기준 불투명 은행마다 제각각
금감원 개선 지침 강제력 없어

회사원 김태경(35)씨는 최근 통장정리를 하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래내역을 찍는데 자리가 모자라 새 통장을 받았는데, 은행에서 통장 재발급 수수료 2천원을 받아간 것이다. 김씨는 “통장을 잃어버려 재발급 받은 것도 아닌데다, 은행 자동화기기를 이용하면서 매번 수수료까지 내줬는데 왜 따로 돈을 내느냐”고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통장을 더 얇게 만들면 은행들은 떼돈을 벌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김씨는 돌아와 통장을 꺼내 지난 4월 한달동안 은행에 낸 수수료를 계산해 봤다. 계좌이체수수료 6천원(3건), 타행자동이체수수료 4천원(4건), 자동화기기(ATM) 수수료 5000원(타행포함 5건) 등 모두 1만5천원이었다. 김씨가 가입한 1년짜리 정기예금(300만원·연리 3.6%)의 한 달 이자(7614원)의 두 배에 가까운 돈이었다.

은행 수수료 ‘눈덩이’=1일 〈한겨레〉가 금융감독원에서 자료를 받아 확인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6월말 현재 국내 은행들이 받고 있는 수수료 종류는 모두 146개나 됐다. 통장재발급, 통장명의변경 수수료 등 수신관련 수수료가 54종으로 가장 많았고, 자동화기기 현금인출 수수료 등 지급결제 수수료도 24종류나 있었다. 이는 지난 1999년(100여개)과 비교해보면 46%나 늘어난 것이다. 종류만 늘어난 게 아니다. 각종 수수료 수준으로 결정되는 은행 서비스물가지수는 135로, 지수 기준년인 2000년(100)에 견줘 35% 급등했다. 같은 기간 보험 서비스물가지수는 4.7% 오르는 데 그쳤고, 증권 서비스물가는 오히려 14.3% 하락했다. 같은 기간에 부동산 임대료가 10.5% 오른 것을 감안해도 은행의 서비스물가 상승률은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은행들의 비용을 뺀 수수료 순익은 지난 2002년 1조6천억원이던 것이 지난해엔 2조7530억원으로 2년새 68%가 늘었다.

올 1분기 결산을 봐도 국민·신한·우리·하나·조흥 등 5개 시중은행의 이자수익은 5조104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7% 줄었지만 비이자부문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수료 수입은 1조1291억원으로 6.8% 증가했다.

은행들은 금융감독원이 수수료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라는 지침을 내리자, 최근 자동화기기를 중심으로 수수료를 내리기 시작했지만,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수료 수준 적정한가?=은행들은 그동안 공공서비스라는 은행의 특성 때문에, 각종 서비스를 원가에 크게 못미치는 수수료를 받거나 공짜로 제공해온 점을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은행들이 받고 있는 수수료의 수준이 적정한 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선 수수료 원가의 뚜렷한 산정기준이 없어 은행마다 제멋대로라는 점이다. 은행업은 서비스산업이기 때문에 본래 원가 산정이 쉽지 않다. 은행들은 몇년 전만해도 단순히 직원 수에 기초한 간접비를 뽑아 원가를 산정했다. 그러나 은행 업무가 전산화하고, 직원이 담당하는 업무가 복잡해지자 많은 은행들이 활동원가(ABC)라는 방법을 도입했다. 은행이 해당 서비스의 업무 활동에 투입한 시간을 기준으로 원가를 뽑는 것이다. 그러나 활동량 측정방법, 원가에 들어가는 항목, 기회비용 포함여부 등이 은행마다 제각각이고, 그 내역을 외부에 밝히지 않아 불투명한 ‘고무줄 원가’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한 은행 임원은 실제로 “정확하게 원가를 뽑아내는 것이 쉽지 않아 대충 다른 은행 수준을 봐가며 조정하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왔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은행 수수료는 담합성이 짙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은행들은 우리나라 은행들은 아직도 예대마진 등 이자부문 이익이 절대적이고, 전체 이익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2004년말 11.3%)이 미국(27.7%, 2003년말)이나 일본(14.8%)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며 수수료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은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또 송금서비스 등 각종 수수료 수준도 주요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각국 은행서비스 특성에 따라 수수료 비중과 비용이 다르고 물가수준도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기는 곤란하다. 우선 미국 등 주요국 은행들은 각종 여·수신이나 지급결제 등 창구 수수료보다는 각종 금융투자 상품을 통한 거래 수수료 수입 비중이 높다. 또 미국 은행들의 타행송금 수수료는 우리나라의 4~5배 가량인 20달러 수준이어서, 국내 은행들은 수수료 비교 때 이를 자주 인용하지만 내용을 보면 실상은 다르다. 미국 소비자들은 은행 수가 많고 지역적으로 넓어 타행 송금 때 실시간 은행 전산망보다는 대부분 수표송부나 송금환 서비스 이용이 생활화돼 있다. 송금환 이용땐 우편요금 정도인 5달러정도만 부담하므로 우리나라(500~4천원)보다 비싸다고 보기 어렵다.

금감원은 최근 들쭉날쭉한 은행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수수료 원가산정 표준안’을 만들어 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도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 성격이어서 은행들의 지나친 폭리만 제어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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