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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업체의 불공정약관 주요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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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불공정 약관 141개 적발 시정권고
약관 미규정 사항 ‘사규’로 옭아맨 곳도
세 식구의 가장인 일용직 노동자 박원삼(43·가명)씨는 지난 6월 길거리로 나앉을 뻔했다. 일거리가 떨어진 상황에서 약값 등 생활비가 모자라 서울의 ㅎ 대부업체한테서 30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두번째 원리금 상환이 이틀 늦어졌는데 대부업체가 갑자기 박씨의 유일한 재산인 월세보증금 1천만원을 압류해버린 것이다. 은행은 연체를 해도 석달 정도 기한을 주지만, 대부업체 대출에는 가벼운 연체에는 시정기회를 준다는 ‘기한의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상담기관의 소개로 구청의 생활비 지원 등을 받아 겨우 삶의 터전을 지킬 수 있었다.
대부업체들이 기한의 이익을 빼앗거나 이자율을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담보물을 임의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소비자한테 일방적으로 불리한 대출약관을 적용하다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대형 대부업체 28곳의 약관에서 141개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적발해 자진 시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적발업체 가운데는 케이블텔레비전에서 광고도 하고 있는 산와머니와 리드코프, 러시앤캐시도 포함됐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산와머니(일본계) 등 22개 업체는 단 하루만 연체해도 기한의 이익이 상실되도록 해 시정기회를 막아버렸다. 머니라이프는 약관에 “채무 변제를 1회라도 입금하지 않으면 즉시 변제를 청구할 수 있다”고 명기할 정도였다.
이에스캐피탈 등은 ‘자의적인 담보물처분 조항’이 지적됐다. 대부업자가 고객 빚을 받아내기 위해 법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담보물을 처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산와머니는 ‘자동계약연장 조항’을 약관에 넣어 문제가 됐다. 원래 약정기간이 끝나면 계약이 종료돼야 하는데, 고객의 의사 표시가 없는 경우에 계약이 5년 동안 자동 연장되도록 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자율과 연체율을 일방적으로 대부업체가 결정하는 약관 조항도 있었다. 산와머니와 엠원크레디트 등은 “금융사정의 변화 등으로 채권자가 이자율과 지연배상금의 율을 바꿀 때는 채무자가 이에 따른다”는 조항까지 약관에 넣어 두었다. 원래는 당사자간 합의를 해야 금리를 변경할 수 있다.
이밖에 일부 대부업체들은 약관에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업체 쪽이 일방적으로 정한 ‘회사의 내규’에 따르도록 하거나, 법적 분쟁 때 관할 법원을 업체의 소재지로 제한해 고객의 소송을 불편하게 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일부 약관이 불공정하다 해도 기존 계약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공정위 소비자정책국 관계자는 “기존 계약이 불공정한 약관에 의한 것일지라도 법원 소송을 통해 무효판결을 받아내기 전까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대부 계약을 맺을 때 꼼꼼히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번 약관 개선이 ‘대세’에는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등록대부업체가 1만8천여개로 늘어난 상황이어서 대형 대부업체는 시장점유율이 15%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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