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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부작용론’을 둘러싼 논란이 정부와 재계에 이어 국회로 옮겨오고 있다.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를 뼈대로 한 법안이 이미 3건이나 국회에 제출돼 있으며, 비슷한 내용을 담은 법안도 2건 이상 준비되고 있다. 6월 임시국회에서 본격 거론될 외자 규제법안을 집중 점검해본다.
“외자, 기간산업 지배 위험 방치 못해” 외국자본 규제 법안을 만들자는 국회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에스케이그룹과 소버린의 경영권 다툼과 일부 외국자본들의 국내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 등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촉발된 외국자본 부작용 문제를 정치권이 외면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신학용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금융감독위원회를 상대로 한 질의를 통해, “국가안보 등을 해칠 수 있는 적대적 인수합병은 사전 뿐아니라 사후에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지배하려는 외국인의 주식 인수·합병과 공개매수 등에 대해서도 외국인투자제한 사유에 해당하면 주식 처분명령, 경영참여 제한 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 쪽은 “이런 방향으로 뼈대를 잡아 관련 법안을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배기선 의원과 김종률 의원은 외국자본 규제 근거를 신설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이미 대표발의했다. 배기선 의원안은 국가 안보, 경제질서 등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 정부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한할 수 있도록 했으며, 김종률 의원안은 국가안보 등과 관련된 기간산업에 대해 외국인이 지배주주가 되려면 사전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우린·민노당 “안보저해땐 규제”법안 잰걸음
산자위 의원 68% “적대적 M&A법으로 제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도 규제 법안을 준비 중이다. 심 의원은 “방송, 해운, 항공, 전력, 통신 등 전략산업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소유제한을 할 필요가 있다”며 “경제질서를 교란하는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제한과 철수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도 6월 국회에 이런 내용이 들어간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등을 낼 예정이다. 이에 <한겨레>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22명에게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법대로 기간산업에 대해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입찰을 법으로 막아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두 15명(68%)의 의원이 ‘동의한다’고 답했다(표 참조).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의원은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 1명 뿐이었고, 나머지 6명의 의원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응답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당별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민주당이 매우 적극적인 찬성 의견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에선 9명 의원 가운데 곽성문 의원 등 3명만이 분명한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안병엽 열린우리당 의원은 “배기선 의원 등이 낸 법안은 산업자원부의 반대도 있고, 무엇보다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에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일단 4월 국회에서는 처리를 유보했다”며 “산자부에 외국 사례 등을 검토한 종합적인 보고서를 요구해 놓은 상태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처리 방향을 (6월 국회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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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외자규제 움직임에 반대
외국인 자본 규제 강화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우선, 정부는 현행 법령으로도 규제가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도 국가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 보건위생·환경보전·미풍양속 저해 등을 이유로 투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증권거래법에서도 금융감독위원회가 외국인의 유가증권 취득에 대해 종류, 업종, 종목별 한도를 정해 제한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외국인 자본에 대한 추가 규제를 위해선 별도 심의를 거쳐야 한다”며, 국회의 규제강화 입법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외국인 자본이 국내 우량 기업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 200조원에 달하는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지만, 경영권을 위협하는 경우는 에스케이와 다툼을 벌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오문석 엘지경제연구원 상무는 “외국인이 자본이득을 노리고 투자한다고 해서 모두 투기자본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외국 자본의 70∼80%는 장기투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영권에 대한 위협보다, 다양한 금융기법을 이용한 외국자본의 자금회수 방식에 정부 당국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일·외환·한미 은행 등 부실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뉴브릿지,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들은 수천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따라서 사전승인제 등 외국인 투자에 대한 원천적 규제보다는 투자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의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민노당- 삼성, ‘동상이몽’
“경제교란 철수명령”한목소리 불구
삼성“국내자본 역차별 바로잡아야”
민노당 “외자규재-재벌개혁 동시에” 외국자본 규제 문제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주장에 삼성의 ‘씽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맞장구를 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서로 꾸는 꿈의 결론이 정반대인 ‘동상이몽’이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달 11일 개최한 외국자본 규제 정책토론회에는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수석연구원이 지정토론자로 나왔다. 김 수석연구원은 이 자리에서 △전략산업에 대한 외국인 소유를 규제해고 △경제질서를 교란하는 외국자본에 대해선 사전 제한과 사후 철수명령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심 의원의 발제에 동의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여기에 더해 “주식시장에 투입된 외국자본은 국내경기와는 무관하게 빠져나가며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었고, 외자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보다는 배당으로 기업 이익을 유출시키는 병적인 상황을 일으켰다”는 비판도 내놨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6일 “삼성경제연구소 등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 여론 형성에 도움은 된다”며 “그러나 우리의 주장은 삼성과 결론이 180도 다르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연구소가 최근 펴낸 ‘대외 자본개방의 허와 실’이란 보고서를 보면, “국내자본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인수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외국자본은 성격을 가리지 않고 인수를 허용해 시중은행들이 외국계로 넘어가는 것을 방치했다”고 비판한다.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제한규제와 대기업 소속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등의 조처로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권이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노출돼 있다는 주장도 편다. 민주노동당은 이 부분에서 재벌들이 ‘외국자본’ 위험론을 들어 재벌개혁의 고삐를 늦추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노동당 관계자는 “외국자본 규제와 재벌개혁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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