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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2 20:51 수정 : 2009.02.13 13:26

금융업종 장벽 ‘와르르’ 소비자도 더 ‘똑똑하게’

[특집] 격변하는 금융시장 자통법 시대

증권사도 5~6월쯤 지급결제 가능
은행과 ‘펀드 판매’ 주도권 싸움도
증권업계서는 이미 생존게임 시작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지난 4일 발효되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아직은 탐색 단계지만 증권사들이 지급결제망에 가입하면 은행과 증권의 고객 쟁탈전에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선물·자산운용 등의 벽이 없어지면서 증권업계 내부에서도 생존을 위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앞으로 2~3년 동안 금융산업의 지형도가 크게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애초 자통법은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을 발전 모델로 삼는 것이었지만, 미국계 아이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뒤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한 때 자통법 시행을 미뤄야 한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법 시행 뒤엔 투자은행을 지향한다는 목표보다는 금융권역별 경쟁 격화가 더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불붙는 은행-증권 고객 쟁탈전

자통법 시행으로 은행과 증권사는 머지않아 고객 빼앗기 경쟁에 들어가게 됐다. 증권사들이 이달 초 금융결제망 가입조건에 합의함으로써 오는 5~6월부터 은행 수준의 지급결제 시스템을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은행 수시입출금식 예금과 비슷한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는 이미 무서운 성장세를 타고 있다. 2007년말 27조1천억원이던 시엠에이 계좌 잔액은 지난달말 34조1천억원으로 불어났다. 은행 예금보다 연 0.5~1%포인트 가량 높은 금리를 주는데다 예금자보호 대상이다. 지급결제망 가입으로 24시간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용과 공과금, 보험료, 관리비 납부, 신용카드 결제 등이 가능해지면 성장세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에선 고객 이탈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펀드 판매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판매 요건이 엄격해지면서 창구에서 손쉽게 펀드를 팔아온 은행 쪽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투자상담의 경험과 지식 등에서 아무래도 증권사가 앞서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적립식 펀드 바람이 불면서 은행으로 넘어갔던 펀드 판매의 주도권을 증권사가 되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도 시엠에이와 비슷한 고금리 상품을 내놓는 등 수성에 나서고 있다. 나아가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해 고객 확보와 금융상품 판매를 주도하겠다는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전성표 국민은행 전략기획부 팀장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고객의 ‘포트폴리오 구성’(자산 구조 재편성)을 돕게 되면 자연스럽게 관련 상품 판매로 연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맞서 증권사들은 시엠에이 계좌의 단순 확대에 그치지 않고 주요 거점지역에 대한 독자적인 현금입출금기 설치와 신용카드 발급까지 추진하고 있다. 조금씩 전선이 확대되면서 은행과 증권의 영토전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생존 게임 시작된 증권업계

자통법은 애초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증권·선물·자산운용 등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증권사들의 이름도 금융투자회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닥친 현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이다. 각종 규제의 끈이 풀린 이상 고객 기반이 넓고 탄탄한 상품 판매망을 갖춘 곳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유리한 곳은 은행(금융지주회사)과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다. 대기업 계열은 계열사 직원의 급여계좌 이체 등 그룹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은행 계열은 방대한 은행 지점망 및 그동안 축적된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은행과 대기업 계열로 양분될 전망이다. 윤성희 동양종금증권 이사는 “대형사와 특화된 소형사 위주로 증권업계 판도가 재편될 전망”이라며 “대기업이나 금융지주사를 끼지 않은 중형 증권사들은 제휴나 인수·합병(M&A)으로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신상품 개발이 허용됨에 따라 파생상품이나 복합상품 등의 새로운 시장을 누가 선점할지도 관건이다. 일단 펀드 판매와 운용에 있어서는 미래에셋증권이 독보적이다. 지난해 국외 투자에서 큰 손실을 봤지만 고객 이탈이 심하지 않다. 또 주식과 채권 펀드 수탁액이 35조4천억원에 이르는 등 아직 확고한 1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주식과 채권으로만 이뤄져 있던 펀드시장 자체가 실물 등 대안펀드 위주로 재편되면서 판도가 변화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증권업계 판세는 △고객확보 △상품개발 △상품판매 3가지 분야에서 얼마나 종합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몇 분야의 강점을 바탕으로 영업을 해온 과거 방식으론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결국 틈새시장에 안주하는 소형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전방위적인 경쟁 속에서 팔방미인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 또는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투자은행의 윤곽은 이러한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친 뒤에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남기 선임기자 jnamki@hani.co.kr


애초 목표는 ‘대형화’…‘투자은행 신화’ 무너져 머쓱

자본시장통합법은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은 정식 법률 용어가 아니다. 기존의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자산운용업법, 종금업법 등 자본시장 관련 법률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로 한데 묶은 것을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이제 금융관련 법률은 △은행법 △자통법 △보험업법 등이 뼈대를 이루게 됐다.

자통법 체제로 전환하는 데는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했다. 비록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크게 빛을 잃었지만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 금융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 ‘한국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 금융중심지 전략이 정부 주도로 펼쳐지면서 금융법 체제 개편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자통법은 이미 2003년부터 정부 안에서 논의가 시작돼 2005~2006년 공청회,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 국회 논의를 거쳐 2007년 8월 공포됐으며, 일부 개정안이 진통 끝에 지난 1월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지금의 체제를 갖췄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기에 자통법은 업종 간 벽을 허물어 대형화, 전문화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상품개발의 제약을 풀어 경쟁을 촉진한다는 것이었다. 자통법을 통해 미국의 투자은행(IB)과 같은 대형 금융회사가 출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한국형 골드만삭스’가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미국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함에 따라 그토록 견고해보이던 투자은행의 신화가 무너졌고, 자통법의 원대한 목표는 먼 미래의 과제로 돌려졌다.

여기에 국회에서 자통법 개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한 회사 안에 영업부문간 정보교류를 차단하는 ‘차이니즈 월(Chinese Wall)’ 제도 △펀드판매인 자격 제도 △파생상품 판매인 자격 제도 등은 길게는 1년까지 유예된 상태다. 막상 자통법은 시행됐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애초 목표는 뒤로 밀려나는 대신 자통법에 부수조항처럼 끼어 있던 ‘투자자 보호’ 조항이 최근의 펀드 불완전 판매 논란과 연결되면서 더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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