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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4 19:58 수정 : 2014.09.04 23:43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기자실에서 임영록 케이비(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제재결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최 원장은 제재심의위원회의 결과를 뒤엎고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KB금융 회장·행장 ‘중징계’ 파장
주전산기 교체 싸고 고발 등 마찰
내부 갈등으로 조직은 만신창이
수뇌부 비난여론 갈수록 커져
결국 심의위 ‘경징계 결정’ 뒤집어
제재과정 ‘공정성·투명성’ 숙제로

케이비(KB)금융그룹의 수뇌부가 나란히 중징계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데는, 조직의 수장인 두 사람의 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갈수록 더 증폭되면서 국내 최대 금융회사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는 비난 여론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불과 열흘여 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징계 수위를 낮출 때만 해도, 금융당국이 성급하게 무리한 제재를 추진하다가 체면을 구겼다는 질타가 거셌다. 하지만 케이비 내분의 정점에 서 있는 수뇌부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금융권 안팎의 여론이 높아지면서, 금감원장이 사상 초유의 ‘역공’에 나설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4일 임영록 케이비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중징계 결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자 브리핑 내내 그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다.

최 원장이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우선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기종 변경 추진 과정에서 범죄행위에 준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이날 공개한 검사 결과를 보면, 국민은행은 주전산기 전환과 관련한 성능검증(BMT) 결과 및 소요비용 등을 지난 4월 이사회에 허위·왜곡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를 들어 유닉스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3055억원으로 애초 이사회에 보고한 예산(2054억원)을 크게 웃돌자, 견적금액을 1898억원으로 축소 보고하는가 하면 중앙처리장치(CPU) 과부하 때 안정성 등에 대해 아예 검증조차 하지 않은 채 문제가 없다고 보고한 것이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임 회장과 지주 쪽은 유닉스 체제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은행 아이티(IT)본부장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는가 하면, 이사회 허위보고를 위해 은행 관계자들에게 부당한 압력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도 케이비금융 쪽이 자체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해나가지 못한 채 금감원에 검사를 의뢰했다는 점이었다. 서로 다른 ‘낙하산’을 타고 자리를 꿰찬 지주 회장과 행장 간 마찰이 누적된 지 오래여서 내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내부통제 부실로 경영건전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한 금감원은 검사를 마무리한 지 4일 만에 중징계를 사전 통보하는 등 속전속결로 제재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가 지난달 21일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에서 올린 중징계안을 경징계로 완화하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 제재심의위의 판단은 외부업체와의 유착 여부 등 불법사항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만큼 중징계는 과도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케이비금융지주 쪽이 보고서를 은폐하고 왜곡해가면서까지 왜 유닉스로 교체하려고 했는지 등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금감원이 제재를 서두르면서 정교하게 제재 사유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때부터 최 원장은 법률 검토를 벌이는 등 장고에 들어갔다. 제재심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금감원장이 이를 번복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 원장이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두 수뇌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달 22~23일 조직 화합을 위해 떠난 ‘템플스테이’ 행사에서까지 마찰을 빚는가 하면, 이 행장이 주전산기 관련자를 검찰 고발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날 이 행장은 중징계 결정 직후 사임한 반면 임 회장은 사퇴를 거부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모두 중징계를 받았지만 애초 이 행장이 제기했던 의혹과 문제제기들을 금감원이 대부분 수용한 셈이어서, 내용으로 보면 이 행장 쪽의 판정승이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온다. 따라서 금감원의 사퇴 압박을 거부한 임 회장이 코너에 몰린 형국이다. 주전산기 교체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도 시작된 상태여서 수사 결과에 따라 임 회장에게는 또다른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다.

임 회장의 중징계에 대한 최종 결정은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현재로선 금융위에서 중징계를 다시 번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금융위 핵심 관계자는 “징계 사유를 면밀하게 따져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최근 케이비 내분을 증폭시킨 점 등을 고려하면 (수뇌부) 스스로 특단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개월째 중징계를 장담해온 금감원은 이번 결정으로 어느 정도 체면을 살릴 수 있게 됐지만, 제재심 결정을 거부한 데 따른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됐다. 제재심의 취지가 금감원장의 자의적인 제재권을 견제하고 공정한 심사를 위해 각계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킨다는 것이어서 자칫 제재심 무용론이 부상할 수 있다. 제재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도 도마에 올랐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가 왜 징계 수위를 완화했는지, 금감원장이 왜 이를 번복했는지 등의 과정에 대해 외부에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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