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22 20:08
수정 : 2015.03.22 20:08
금융의 성장은 실물경제 성장에 의존
신규 금융수요 창출 없이는 효과 제한
금융회사의 수익성 개선이나
국민경제 성장에 대한 기여는 불투명
나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금융은 등락이 심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하다. 2000년대 들어 실물경제의 고성장과 더불어 호황을 구가하다가 거품이 붕괴하면서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당한 바 있는 금융산업은, 경기부진이 계속되며 저성장-저수익이라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최근 다시 핀테크라는 조류와 더불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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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나은행 을지로지점에서 직원들이 모바일 금융 서비스 ‘뱅크 월렛 카카오’를 선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을 비롯해 16개 시중 은행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 서비스는 별도 앱을 내려받아, 충전형 선불카드인 뱅크 머니와 은행 현금카드를 등록해 이용할 수 있다. 상대방의 계좌 번호 없이도 10만원 한도에서 송금이 가능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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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는 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등을 통칭하는데, 사실 금융에서 정보통신기술은 오래전부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정보통신기술 덕분에 온라인 시스템의 구축과 더불어 은행 지점 간의 자유로운 실시간 입출금 거래가 가능해졌으며, 거리 곳곳의 현금자동출납기 역시 정보통신기술 발전의 산물이다. 증권사 지점을 통하지 않고 온라인상으로 자유롭게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홈트레이딩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의 핀테크가 굳이 과거와 다른 점을 찾자면, 예전에는 금융회사들이 필요에 따라 정보통신기술을 주도적으로 채택해 활용해온 반면, 최근에는 비금융 분야의 정보통신기업들이 주도권을 쥐고 금융 관련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핀테크로 불리는 새로운 조류는 지급결제 서비스, 새로운 금융거래 플랫폼의 제공, 금융데이터 분석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몇 가지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 이런 영역에서 핀테크의 도입을 통해 기존의 금융 관련 업무들이 더 효율화되고, 금융거래 과정이 좀더 편리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급결제를 비롯한 금융거래 수요, 다양한 투자상품들에 대한 수요와 공급 등은 기본적으로 실물경제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경제주체들의 금융여건 변화에 달려 있다. 핀테크가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의 개발을 통해 추가적인 금융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기존 상품이나 서비스의 개선·효율화에 그친다면 이런 변화가 금융산업의 성장이나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는 효과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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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산업 분류. 자료: UK Trade & Investment, 우리금융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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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지급결제 영역에서의 모바일결제 서비스는 소비생활의 편의성 제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로 인해 소비규모 자체가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우리나라에서 현금결제 대비 카드결제의 비중은 이미 매우 높다. 단말기 제조업자 입장에서는 모바일결제 서비스를 탑재함으로써 자사 제품의 경쟁력 제고에 활용할 여지가 있지만, 카드사와 페이게이트(PG)사 등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결제 관련 수수료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 전체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기회로서의 의미는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투자자와 자금수요자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수취하는 피투피 대출(P2P lending)은 금융중개의 위험을 중개업체가 아닌 투자자(자금공급자)가 부담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은행 대출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국내외 사례를 보면 피투피 대출의 성장은 주로 서민금융 등의 영역에서 기존의 고금리 대출상품을 부분적으로 대체하는 것일 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지 않는다. 게다가 과도한 부채 수준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출 관련 시장의 성장, 즉 새로운 대출기법이 도입되어 부채가 추가로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해외 논의를 보면, 최근 수년간 피투피 대출업체의 성장은 위기 이후의 경기회복 국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승과 하강을 포함하는 경기순환의 전 국면에서 이들의 신용평가와 여신심사 역량이 입증된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에 대한 신기술의 적용이 금융산업의 성장, 금융회사의 새로운 수익기회로 이어지려면 실물경제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경제가 변한 것이 없는데 모바일결제의 도입을 계기로 소비가 급증하거나, 새로운 대출기법이 도입되었다는 이유로 부채가 급증한다면 그것이 도리어 문제다.
물론 자산관리 등의 영역에서 핀테크의 도입은 이미 진행중인 금융상품 유통채널의 온라인화와 결합되면서 새로운 유통채널의 등장, 금융상품 제조업자와 판매업자의 분리 등의 변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의 최종적인 모습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금의 핀테크는 거대한 변화의 시발점인지도 모른다. 또한 금융데이터 분석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은 금융회사들이 기존의 업무를 좀더 효율화하고 리스크관리와 고객관리에 수반되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핀테크가 우리 금융산업이 직면한 과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핀테크가 야기하는 변화들은 금융회사들이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불가피한 환경이지만, 실물경제의 성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그것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또한 개별 금융회사 차원을 넘어선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금융의 문제는 양보다는 질에 있다. 은행 대출이 양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성장성이 높은 산업보다 담보능력이 있는 분야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고, 또한 기술금융의 중요성에 대한 지적에서 드러나듯이 모험자본의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정보통신기술과 금융의 접목이라는 측면에서 핀테크는 불가피한 변화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금융회사의 수익성 개선을 보장하지 않으며, 나아가 실물경제의 성장에 금융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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