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0 20:00
수정 : 2015.11.10 20:00
유명인 참여·일반인 미담 등
적극 알리라는 정부 지침에
거의 매일 자료 내며 홍보 열올려
내부서도 “비위 맞추기 지나쳐
‘관치 펀드’의 상징이 된 청년희망펀드 홍보에 은행권이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출범한 이 펀드에 시중은행들이 직원들의 가입을 강요하면서 ‘관제 모금’ 논란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홍보 치적 쌓기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달 15일부터 10일까지 6개 시중은행이 배포한 청년희망펀드 가입 관련 보도자료는 모두 18건이다. 휴일을 빼면 날마다 한 건 씩 청년희망펀드 관련 보도자료를 낸 셈이다. 은행들은 각사 누리집에도 이를 내걸고 있다. 계좌이동제 등에 대응하는 새 금융상품 출시나 3분기 실적발표 등 굵직한 이슈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청년희망펀드 관련 자료는 전체 배포 자료의 20%에 이를 정도로 빈번했다.
은행권의 이런 행보는 청년희망펀드에 참여한 유명인이나 사연을 가진 일반인들의 미담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언론에 홍보하라고 한 정부 지침이 배경이 됐다. 스포츠 스타 등을 통해 이벤트를 개최하라고 하자 곧장 엔에이치(NH)농협은 류현진 선수를 앞세워 가입 이벤트를 연 것은 물론 류현진 재단 행사에서도 가입자를 받았다.
하지만 물량 공세에 비해 홍보 내용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억지로 틀을 짜 맞춰 경쟁적으로 홍보에 나서니 내용이 부실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농협은 지난달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어린이집(총 9개소) 원장 9명이 청년희망펀드에 가입해 전국적인 기부 열풍에 동참했다”고 알렸고,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은 이수태 파나시아 대표, 이순재 정우건설산업 대표 이사의 가입 사실을 홍보했다. 신한은행은 가수 하춘화 씨와 연기자 김수미씨를, 케이이비(KEB)하나은행은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의 가입을 전면에 내세웠다. 우리은행은 육군3사관학교 동문회 임원들의 가입을 알렸다.
잇따르는 대기업의 ‘반 강제적 성금’ 기부 행렬과 금융권의 홍보 강화를 두고 은행 내부에서조차 “정권 비위 맞추기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직원은 “그나마 초기에는 대중적 인지도와 관심이 높은 이들을 내세웠는데, 지금은 무리수를 둔다는 인상을 주면서까지 이례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홍보 강화가 관제 가입을 강요받았던 은행원들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구 직원 김아무개(32)씨는 “청년희망펀드는 펀드가 아닌 신탁이라 기부금을 내라고 고객에게 권유하는 꼴인데 (정부의) 눈치가 보이니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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