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1 18:23
수정 : 2005.11.21 18:23
생생 투자칼럼
서울에 사는 맞벌이 부부 김아무개(40)씨 부부는 연 소득이 9천만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 부부가 이제까지 모아 놓은 돈은 1억원이 채 안된다. 몇해 전 남편이 주식으로 큰 돈을 날린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아내의 설득 끝에 부부는 재무상담차 필자의 사무실을 찾았다.
부부가 꼼꼼하게 모아둔 자료를 토대로 재무설계를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뿔싸! 남편이 사고를 치고 감춰둔 4천만원이 또 있었다. 남편이 사실을 털어놓고서는 손사래를 치며 절대 아내에게 알려서는 안된다고 간청했다.
김씨가 털어놓은 ‘사고친 4천만원’은 그가 자동차 판매 업무를 하면서 영업과 관련된 접대비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지출된 돈이 누적된 결과였다. 당시만 해도 아내와 자신의 연봉을 감안하면 그리 큰 금액이 아니라는 판단에 아내 몰래 카드를 돌리기 시작했고 금액이 커지자 직장 내 새마을금고에서 대출까지 받아 막았지만, 매달 이자 부담이 60만원이나 돼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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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친돈’ 감출수록 재앙 고백부터 해야 튼튼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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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를 낼 때마다 장난감을 사 달라는 자식들의 얼굴이 생각났고, 얼굴에 기미 생긴 집사람 얼굴이 아른거리더란다. 남편은 필자의 설득 끝에 아내와 다시 상담에 들어갔고, 남편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진실을 뒤늦게 알아챈 아내는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오랜 침묵 끝에 아내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겠으니 다시 한 번 잘해보자고 입을 열었다. 옆에서 지켜보며 마른 침을 삼키던 필자도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부부는 아내의 동의 하에 아파트를 담보로 저리 대출을 받아 카드 빚과 마을금고 대출을 일단 갚았다. 한달 60만원 정도 나가던 이자가 당장 21만원으로 줄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을 설득해서 재무상담을 받지 않았더라면, 남편의 이자 부담은 갈수록 힘이 들었을 것이고 그 상태로 1~2년을 더 버텼더라면 아파트 담보 대출은커녕, 아파트를 매각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지 모른다.
감춰둔 빚이나 ‘사고 친’ 경제 문제를 아내 혹은 남편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해결점을 찾는 가정은 무척이나 다행인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재정 문제가 얽혀 있는 가정일수록 부부가 공동으로 방법을 모색하는 경우는 드물다. 배우자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가며,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시간을 질질 끄는 동안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부가 이혼을 한다. 요즘 이런 가정을 적잖게 볼 수 있다.
가족에게 숨긴 빚은 월급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어떻게든 추가 수입을 만들어야만 한다. 제2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급한 마음에 로또 복권을 사게 되고 경마를 하게 되고 주식투자에 뛰어들게 된다. 숨겨놓은 빚이 1천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금융상품을 샅샅이 뒤져 1%라도 높은 이자를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빚을 숨기면서 가정경제가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건 밑빠진 독에 슬쩍 풀을 발라놓고 가족들에게 열심히 물을 길러오자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라의형/포도에셋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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