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9 23:38
수정 : 2018.03.30 00:31
28일 오후 금융위원회는 <한겨레>가 이날치로 보도한
‘살인·배임·뇌물범…저축은행 대주주는 못 되는데, 보험사는 돼?’ 기사에 대한 두쪽 짜리 참고 자료를 냈다. 정부 부처들은 흔히 언론보도 내용의 오류를 짚거나 반론을 펼때 ‘보도해명’ 자료를 내지만, 이날 금융위가 낸 것은 ‘보도참고’ 자료였다. 보도참고 자료는 말 그대로 반론을 펴기보다는 상세 배경 설명이 필요할 때 취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보도참고 자료의 내용은 사실상 금융위의 ‘반박문’에 가까웠다. 어떤 속사정이 있었던 걸까?
<한겨레>는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 유지 요건의 허술함에 대해 보도했다. 한 예로, 저축은행을 뺀 나머지 보험·카드사 등의 대주주들은 살인죄를 저질러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아무런 제한을 가할 수 없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의 문제를 짚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보도참고 자료를 통해 “금융투자와 보험, 여신전문금융업권에 대해 다른 업권보다 완화된 대주주 심사 요건을 두고 있다는 것(보도)은 적절하지 않다. 인가 및 대주주 변경 시 기타 법률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도 대주주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보도가 기존 대주주의 자격 유지 요건을 짚은 데 견줘, 반박 내용은 새로 대주주가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인가 및 대주주 변경 요건’을 거론했다는 점에서 논점을 비켜간 것이나 다름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반박이자, 해명인 셈이다. 이는 국회에서 앞으로 전개될 관련법 개정의 논점과도 차이가 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대주주 자격 요건을 규정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2건(각각 박찬대·천정배 의원 대표발의) 올라가 있는데, 둘다 대주주 자격의 유지 요건을 문제 삼고 있다. 심지어 최근 금융위가 입법예고한 관련법 개정안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여부를 대주주 자격의 유지 요건에 포함하자는 내용이다.
따라서 금융위의 이런 태도는 문제가 제기된 법제도의 구멍을 가리려고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금융관련 법령은 방대하다. 예를 들어 449개 조항이 있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어내기도 벅차다.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에다 감독규정에 이르기까지 하위 법령에 위임하는 내용도 많은 데다, 다른 법률과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중범죄를 저지른 금융회사 대주주에 아무런 제약을 두지 못하는 지배구조법의 구멍도 이런 특성이 낳은 의도치 않은 결과일 수 있다.
논점을 비켜간 보도참고 자료를 읽으면서, 지난해 10월부터 불거져 얼마전까지 금융권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 건이 떠올랐다. 금융실명제 도입 뒤 25년이 흐른 뒤에야, 1993년 이후 만들어진 차명계좌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구멍’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에 있다는 사실을 금융당국이 인정한 일이다.
정부가 만회할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다. 지배구조법에 숨어 있던 구멍을 신속히 메우면 될 일이다. 혹여라도 계속 논점에 어긋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자칫 정부의 실수를 감추려하거나 혹세무민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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