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리뷰] Special Report 동아시아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이번 동아시아 지속가능경영 연구 결과에 대한 세계 각국 전문가의 의견을 구했다. 한국과 중국, 미국, 영국의 전문가 4명이 의견을 들려줬다. 서구의 전문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환경 및 사회적 성과 기준이 점점 통합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의 국제표준을 창출하고 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면, 아시아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아시아적 가치에 좀 더 무게를 둬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아시아적 가치 되살려 서구 경영방식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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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훈 한국 KAIST CSR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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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의 기본 내용은 여러 이해당사자들과 기업이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농경사회로부터 출발한 아시아의 문화적 배경에는 이미 ‘가족’과 ‘관계 중시’라는 전통이 놓여 있다. 또 장기적인 시각을 강조하는 문화적 토대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동아시아기업에서 나타났던 ‘평생직장’ 개념도 그 좋은 사례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유한양행 등 여러 건실한 기업들이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가능경영을 실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오히려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특히 아시아적 경영의 비효율성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서구식 경영방식이 그 대안으로 속속 도입됐다. 경영진의 스톡옵션, 개인 성과평가제도, 구조조정, 인수·합병(M&A) 등 서구식 제도는 어느새 가장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서구식 제도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효율성 향상은 이뤘지만, 그 반대급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을 잃게 됐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들 역시 극히 단기적인 시각에 매몰되기도 했다. 이런 단기 실적주의가 결국 엔론사태를 가져왔듯이, 우리나라 기업들도 단판 게임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때문에 아시아기업들은 아시아적 가치관에 젖줄을 댄 경영방식 역시 일부 보완해 계속 살려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서구식 자본주의형 경영 행태에 젖어 있다면, 지속가능경영을 통해 다시금 아시아적 경영행태를 재창출해야 한다. 평생직장 개념을 되살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업 경영을 단지 단판 게임이 아니라 반복 게임 또는 협조적 게임구조로 살려내야 한다.
‘인간 존엄성 지키기’ 아시아-서구 구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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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마이어(Stephanie Maier) 영국 윤리투자연구소(EIRIS)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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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가와 이야기하면서 인권이나 노동 문제에 관련된 대화를 풀아나가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진행한 연구 결과에서도 인권 분야 투명성이 낮게 나온 것은 아마도 같은 맥락인 듯 보인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는 표준의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환경 영역에서는 ISO 등 국제표준이 정착되어 전 세계에 보급되어 있다. 그러나 인권, 노동 등 사회영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SA8000 등 표준이 정착되고 실행되고 있지만, 동아시아에는 이런 기준이 아직 보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차이가 보고 관행의 차이를 낳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의 차이는 시민사회에 달려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시민운동이 발달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유도한다. 동아시아의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 또 유럽의 정신적 전통인 그리스도교는 교회가 사회 및 환경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사회책임투자 등에 먼저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유교나 불교 등은 관심사가 달랐던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지역마다 지속가능경영의 모양새가 달라졌을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사회적 책임 표준은 없다는 반론도 있다. 아시아의 기준은 유럽의 기준과 달라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전 세계 어느 기업이라도 아동노동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시민운동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종족,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하는 경영이 지속가능경영이고, 이를 향해 전 세계가 움직이게 될 것이다.
지역 차이 줄어들며 하나의 기준으로 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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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크레이머(Aron Cramer) 미국 BSR(Business for Social Responsibility)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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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물 부족, 지역사회공헌 등은 글로벌 무대를 누비는 모든 기업이 맞닥뜨린 이슈다. 아시아와 서구 기업 사이에 이런 이슈를 다루는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경영 관행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 방법상의 차이조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 시장은 모든 기업에 대해 공통의 기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래서 사회·환경 등 모든 성과는 기업 경쟁력과 점점 밀접하게 연관돼 가는 추세다.
물론 지속가능성 자체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서 정의돼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베트남에서 경영의사결정의 우선순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하나의 국가 안에서조차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중국을 예로 들면 도시와 농촌에서 지속가능경영의 문제와 답은 각기 다를 것이다.
또 한 가지. 사회계약의 형태와 기업지배구조에 따라서도 지속가능경영의 양상은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시아 나라들의 수많은 대기업들은 여전히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았다. 가족경영기업이나 국영기업의 수가 더 많은 나라들도 있다. 이런 기업들에서 지속가능경영 현실은 상장기업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지속가능경영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차이가 분명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BSR은 아시아 기업의 인권 문제나 공급망 관리상의 사회적 책임 문제도 많이 다루고 있다.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가능경영 관행의 지역적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하나의 기준으로 수렴해 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중국 문화와의 조화 고려해 국제표준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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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더부(高德步) 중국 런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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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중국기업은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왔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수많은 사회 문제가 생겨나고 나서야 기업들은 단지 이익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와 기업이 화합을 이루어야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기업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지속가능경영 바람의 배경도 이것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에 견줘 중국은 이제 겨우 배가 부르고 있는 단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은 이미 한 단계 앞서 있는 게 분명하다.
특히 중국 기업의 경우 인권 문제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중국기업의 노동조건은 열악한 편이고 관련 규정도 제대로 정비되지 못한 상태다. 인권 경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굳이 이런 문제까지 속속들이 밝혀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새로운 노동법이 발효된 후 기업 내부의 관련 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한 편이다.
물론 중국기업의 경우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필요하고, 앞서 있는 선진국으로부터 여러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중국기업들은 중국의 고유한 전통의 색깔을 바탕으로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국제 표준을 받아들일 때 자국 문화와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바로 중국 사회의 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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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경제연구소는 동아시아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현주소를 점검하고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는 세미나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특히 이번 세미나에서는 한ㆍ중ㆍ일 지속가능경영 연구 결과 발표 시간도 마련하였습니다. 참석자들에게는 약 150쪽 분량의 연구 결과 최종 보고서를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일시 : 2008년 7월1일(화) 오후 3시~6시 ▶ 장소 : 라마다호텔 ▶ 문의 : 02-710-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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