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 리뷰] 국내 ‘사회적 기업가’ 심층 분석
경영실태와 처방
돈과 가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며 또 다른 ‘기업가’의 삶에 뛰어든 사회적 기업가들. 하지만 이들에게 냉혹한 경쟁을 우선적으로 강요하는 시장의 높은 파고를 넘어서기란 그리 녹록지만도 않은 일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사회적 가치와 수익성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들의 고민은 여러 곳에서 그 흔적을 드러냈다.
■ 후원금 의존도 높은 편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과, 그 가운데서도 단연 ‘수익성’에 대한 압박감이다. 국내 사회적 기업가들이 저마다 혁신과 성장을 향한 의지를 품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이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의 운영비를 어떻게 충당하는지 그 항목을 빼놓지 말고 복수로 모두 꼽아달라고 물음을 던졌더니, ‘자체 사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93.8%) 이외에 ‘정부 후원’(71.6%), ‘기업 후원’(25.9%), ‘개인 후원’(16.0%), ‘지역사회 후원’(14.8%) 등 거의 모든 기업들이 다양한 종류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38.3%는 기업의 운영비 충당 수단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정부 후원’을 꼽았다. 자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충당하는 비중이 크다는 응답(54.3%)보다는 다소 낮았지만, 상당수의 기업들이 제 벌이만으로는 정상적인 기업 운영조차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사회적 기업들이 적어도 ‘사업적’으로는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다.
■ 마케팅ㆍ사업기획 역량 키워야
이런 현실은 경영자로서 가장 커다란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0.7%가 ‘자금 문제’라고 응답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회적 가치와 기업영리 추구의 조화’ (16.0%)도 실상은 수익성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 사회적 기업가의 머릿속에서 ‘기업 내 인사관리’(16.0%)나 ‘사업기획’(14.8%)보다는 ‘돈’ 문제, 곧 재무상태가 훨씬 커다란 고민거리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이런 탓에 기업 운영과 관련한 경영 컨설팅이나 교육 연수 등에 대한 수요도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93.8%가 ‘경영 컨설팅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고 응답했고, 각종 교육이나 연수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 응답자도 88.9%에 이르렀다. 이런 수치는 실제로 각종 교육강좌나 연수를 통해 그 수요를 충족하고 있는 비중이 18.5%에 그친 것과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대신 ‘주변 지인들을 통해’(17.3%) 해결하거나 ‘관련 서적’(14.8%) 또는 ‘신문·방송 등 매체를 통해’(11.1%) 해결하는 등, 아직은 비체계적인 문제 해결방법이 우세했다.
또, 교육이나 연수, 또는 조언이 시급히 필요한 분야로는 ‘마케팅과 사업기획’(56.8%)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이는 ‘인사·노무관리’(13.6%), ‘회계·재무’(7.4%) 분야에 견줘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아직은 사업적 발판을 마련하는 데 곧장 보탬이 되는 분야에 대해 사회적 기업가들의 준비 정도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slee@hani.co.kr
“세상을 바꾸는 변화 촉진자가 돼라”
기업가 정신이란, 그저 하던 일을 조금 더 잘하는 방법을 찾는 정도가 아니라,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변화촉진자(change agent)가 되겠다는 삶의 자세다. 사회적 기업가 정신도 맥락을 같이한다. 사회문제 해결의 판도를 뒤흔들 만한, 변화촉진자가 되겠다는 자세다.
변화촉진자가 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 듀크대 그레고리 디즈 교수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요소를 제시한다.
첫째, 사명.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지속시킬 수 있는 사명을 채택하라. 둘째, 기회. 그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기회를 집요하게 추구하라. 셋째, 혁신. 끊임없이 혁신, 적응, 학습과정에 참여하라. 넷째, 대담성. 현재 가진 자원의 제약을 넘어서는 대담한 의사결정을 하라. 다섯째, 신뢰. 소비자와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기존 영리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보여주라.
그렇다면 일반적 비영리부문 활동가와 사회적 기업가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특히 비영리기관 출신 사회적 기업가가 많은 한국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전통적으로 한국 비영리기관의 활동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사회서비스 제공이고, 또 하나는 사회운동이다.
사회서비스 제공은 성과의 성격 면에서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다르다. 서비스 제공의 성과는 시스템 안에서의 개선을 지향하지만,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사회 전체를 바꾸는 성과를 지향한다.
한 헌신적인 사회복지법인 활동가가 어느 농촌 마을에서 다문화 전문 보육사업을 시작했다고 하자. 이 사업이 해당 지역 다문화가정에 도움을 주었더라도, 그 모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다문화가정 보육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며 사회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사업은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지향하는 바와는 조금 다른, 사회 서비스 제공사업인 것이다.
사회운동은 간접 영향을 통한 변화를 꾀한다는 면에서, 직접 영향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과 다르다. 마틴 루터 킹이나 마하트마 간디 등의 대표적 사회운동가의 활동을 보면, 정부나 소비자가 기업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려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면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직접 문제에 부닥쳐 해결하는 모델을 지향한다. 제3세계 커피 농가가 어렵다면 직접 공정무역을 벌이고, 장애인이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라면 직접 장애인 기업을 세운다.
이번에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수행한 조사에서, 한국 사회적 기업가들은 시장과 경쟁을 받아들이고 혁신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이 이끄는 사회적 기업에서 그 혁신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가 되고 싶으나, 아직 구체적 실천계획은 부족한 것이다.
기업가는 새로운 시장이나 새로운 사업 방식을 창조함으로써 경제를 전진시킨다. 사회적 기업가는 새로운 사회적 사명을 창출하고 실현하거나 사회 문제 해결의 혁신적 방법을 창조함으로써, 그들은 사회를 전진시킨다. 창조와 혁신이야말로 우리 사회 변화 촉진자가 되기 위해 사회적 기업가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업가 정신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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