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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24 14:53 수정 : 2008.12.24 14:53

‘활동적 타성’, 신뢰·전문성 양날의 위기 부르다

[헤리리뷰] 비영리조직 위기 심층 분석 위기의 요인과 처방
수요-공급 일치한 10년의 황금기
급성장 속 과거 답습이 위기 초래

위기에 빠져 있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은 아직 모른다. 비영리조직 대표자들이 비영리조직 스스로에 대해 내놓은 진단이다.

비영리조직 취업자 비중 추이
한겨레경제연구소는 11월24일부터 2주간 전국 115곳 비영리조직 대표자를 대상으로 비영리조직의 위기 실태 및 극복방안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이들 중 64.9%가 ‘현재 비영리조직은 위기’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위기 원인에 대한 질문에서는 전체 응답 가운데 가장 많은 26%가 ‘무응답’이었다. 위기 진단과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비영리조직 위기의 원인과 극복 방안을 찾기 위해,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의 분석을 수행했다. 먼저 비영리조직의 성장 속도와 성장사를 분석해, 위기가 다가온 원인을 역추적했다. 다음으로는 비영리조직의 현재 상황에 대한 대표자들의 인식을 들여다봤다.

비영리조직은 과거 1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혜원 연구위원이 ‘2008 사회적기업 연구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 경제에서 비영리조직의 고용 비중은 1996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제3섹터 취업자 비중’ 그래프는 김 연구위원이 사업체 기초통계조사 원자료를 이용하여 1996년부터 2006년까지의 변화를 살펴본 것으로, ‘최대 비율’은 공공행정산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영역에서 영리 부문이 아닌 취업자를 분자로, 사업체 기초통계 원자료의 취업자 수를 분모로 하여 계산한 것이다.

비영리조직 대표자들에게 이런 성장의 요인을 물었더니, ‘사회 서비스 수요가 다양화한 점(71.3%)’과 ‘사회 구성원들의 서비스 욕구가 증대한 점(69.5%)’이 영향을 끼쳤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교육, 주거, 환경 등 복지서비스 수요가 늘어난 게 주요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비영리조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증대(53.9%)’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응답이 나왔다. 이들은 비영리조직 성장의 원인이 된 외부 환경이다.

일부 내부 요인도 중요하게 거론됐다. ‘중산층에 대한 비영리조직의 관심이 증대된 점(51.3%)’이 대표적이었다. 과거 취약계층 보호 등 한정된 사회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던 비영리조직이, 중산층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전략을 펼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더불어 ‘사회운동가의 역할 증대(49.6%)’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운동가의 리더십이 성장의 동력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응답자들이 중요한 외부 환경 요인으로 꼽은 ‘사회 서비스 수요의 다양화와 증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활동적 타성’, 신뢰·전문성 양날의 위기 부르다
첫째, 1997년 금융위기 뒤의 실업 사태와 양극화 등에 따른 서비스 수요 증대다. 당시 사상 초유의 기업도산 및 정리해고 등으로 상대적 빈곤층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복지서비스 수요가 크게 증가한 반면, 정부의 역할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비영리조직의 공간이 커진 것이다.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현 함께일하는재단) 등 일자리 관련 비영리조직, 지역아동센터 등 아동복지 관련 비영리조직 등이 당시를 기점으로 다양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둘째, 전반적인 국민소득 증대와 사회 다원화에 따른 욕구의 다양화다.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반적인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시장 개방도 빠르게 진행됐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회서비스 수요가 형성됐고, 비영리조직의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됐다. 환경 문제에 대한 시민의식이 향상되고 식품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산층이나 지식인층에 기반을 둔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같은 조직이 급성장의 길을 달렸다.

비영리조직 역시 이러한 외부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 새로운 수요를 채워 나가면서 입지를 키웠다. 이전 시기 비영리조직이 절대빈곤층 보호활동에 관심을 주로 기울였다면, 이 시기 비영리조직은 새롭게 생겨나는 다양한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이번 조사 응답자의 51.3%가 ‘비영리조직들이 소외계층뿐 아니라 도시 중산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점’이 과거 성장에 기여했다고 응답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과거 10년간 비영리조직의 성장은 이렇게 ‘외부 환경과 내부 조직의 전략이 조화’를 이룬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장의 함정’에 빠지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던 비영리조직들은 바로 그 성장 때문에 타성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우선 사회서비스에 대한 도시 중산층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데 반해, 비영리조직들은 기존 사업 영역에 매달려 도시 중산층의 변화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새롭게 떠오르는 자영업자 문제, 농촌 지역의 문제, 도시 지역 공동체 붕괴의 문제 등을 비영리조직들은 예전처럼 빠르게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비영리조직 경영자들 역시 ‘과거 5년간 사업 진행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질문에 46.1%가 ‘그렇다’고 응답하고 18.2%만이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비영리조직 성장요인
지난 10년간 정부와 기업의 위탁사업 및 후원이 늘어나면서 성장의 큰 힘이 됐지만, 이 역시 거꾸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민하고 실험적이어야 하는 비영리조직의 생리보다는 느리고 관료적인 정부와 대기업의 논리에 따라 위탁사업과 후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기업 후원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조직 본연의 비전이나 미션과는 상관없이 후원이나 위탁사업에 맞는 일회성 사업을 진행하는 비영리조직이 늘어나게 된다. ‘일회성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정작 신년 초에 계획한 주요 사업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느냐’는 질문에 49.6%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19.1%만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따라 비영리시장에서의 자원 확보 경쟁이 그만큼 심해지고, 동시에 새로운 사회 문제를 발굴할 여력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위탁사업의 경쟁 심화’가 일어나고 있느냐는 질문에 66.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한편, 후원은 늘어났으나 이를 처리할 전문인력과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투명하지 못한 자금 집행과 책임성이 결여된 업무 행태가 일부 지적되기도 했다. 최근 잇달아 불거진 비영리조직의 회계 스캔들은 신뢰가 자산인 비영리조직에서 치명적인 사건이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07년 실시한 ‘IMF 10년, 한국 사회 어떻게 변했나’ 조사에서, ‘시민단체’의 신뢰도는 10년 동안 48.8%에서 21.6%로 떨어져, 정당, 대학, 군대, 노조, 경찰, 대기업 등 12개 집단 가운데 가장 신뢰도 하락폭이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학자 도널드 설(Donald N. Sull)은 급속한 성장 뒤에는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언급하면서 이를 조직의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고 불렀다. 조직의 활동적 타성은 조직이 외관상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나, 과거 성장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기업의 혁신과 도전을 가로막아 결국 기업의 쇠퇴를 야기하는 위험요인이 된다. 한국 비영리조직에 바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비영리조직 위기 인식과 원인

경영 시스템 취약, 새로운 프로세스로 혁신 필요

비영리조직 대표자들이 운영하는 조직의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응답자들은 ‘(우리 조직에서 재원 마련과 사회 환경 등의 이유로) 조직 비전에 맞지 않는 사업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10.4%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현재 우리 조직의 비전은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13.0%)’, ‘조직 책임자보다는 실무자의 의지에 따라 사업이 그때그때 계획되고 진행되는 편이다(15.7%)’는 항목에 대해서도 ‘그렇다’는 응답률이 매우 낮게 나왔다. 조직 운영의 뼈대에 해당하는 ‘비전과 미션’ 및 ‘전략적 의사결정’ 등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과 보상이나 인력관리 등의 구체적인 경영 프로세스를 묻는 질문에서는 상당히 다른 반응이 나왔다. ‘(우리 조직은 합리적이며) 구체적인 성과 측정방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긍정 응답률은 46.1%에 그쳤으며, ‘채용한 인력에게 금전적 보상 외에 동기부여가 될 만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있다’는 질문에는 고작 18.3%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말하자면, 비영리조직들이 큰 원칙은 잘 지키고 있으나 사업 수행상의 운영 프로세스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조직 내부의 문제점은 ‘최근 위기설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데, 응답자들은 다양한 위기 원인 가운데 비영리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20.1%)’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즉, 비영리조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재차 확인되고 있다.

투명성과 책임성 이외에도 응답자들은 ‘재정 확보의 어려움(18.4%)’, ‘경쟁환경 심화(13.1%)’, ‘비전과 미션의 부재(12.3%)’ 등을 주요 위기 원인으로 들었다. 특히 재정 확보의 어려움은 ‘사업내용은 진화하고 있으나 과거 5년간 사업 방식은 변화하지 못한(46.1%)’ 비영리조직의 활동적 타성이 불러온 결과이기도 하다. 사업의 내용은 급변하는데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답습해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마인드를 가진 기부자와 기업의 사회공헌 담당자의 외면을 자초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여러 질문을 통해 파악한 비영리조직의 위기 원인은 크게 투명성과 책임성의 결여라는 ‘신뢰 훼손’과, 성과 보상 관리 등의 ‘경영 역량 부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가지는 모두 재정 압박과 경쟁 심화라는 ‘자원 조달’의 문제로 귀결된다.

비영리조직 대표자 중 74.8%는 여전히 ‘비영리조직은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므로, 정부나 기업은 신뢰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투명성이나 전문성이 강화되지 않아도 헌신 때문에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전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오늘날 비영리조직은 전에 없던 취업난 속에서도 오히려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과거 비영리조직 사이에는 ‘3급 장비를 갖춘 2급 조직에 1급 노동력이 일한다’는 말이 유행하곤 했다. 그러나 이것조차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오고 있다. 1급 노동력은 더 이상 2급 조직을 찾지 않고 있다.

1급 노동력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2급 조직은 경영 역량을 강화하고, 3급 장비는 새로운 프로세스로 혁신하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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