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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7 15:09 수정 : 2009.02.27 15:0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헤리리뷰] 넓은 세상 다른 시각

금융시장은 이제 축소되어야 한다. 금융시장 스스로가 레버리지를 통해 자체 팽창을 하면서 도박장화하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금융시장이 파괴적인 역할을 그만두고 생산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융시장 규제조처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금융기관의 국유화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 우리는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위기가 촉발된 가운데 신금융체제(New Financial Architecture)가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신금융체제는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완화에서 시작되었다. 신금융체제에서 주장하는 느슨한 규제의 이론적인 근거는 자본시장에서는 위험과 수익이 서로 반비례하며 이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고전주의 경제학 이론이었다. 즉 시장에서 제공되는 위험과 수익의 정보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은 감당할 능력이 있는 만큼 위험을 부담하고, 이에 따라 수익을 얻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최적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자유로운 금융시장에서는 금융위기의 가능성이 오히려 최소화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금융시스템은 상업은행을 포함하여 투자은행,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기금 등 모든 금융기관들의 핵심적 직원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만드는 행위를 조장하는 수수께끼 같은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주택담보대출의 증권화를 통해 생긴 수수료의 총액은 2조달러에 이르렀다. 2006년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보너스 총액은 160억달러였다. 2만5000명의 임직원들에게 돌아간 금액은 평균 65만달러였다. 스타 트레이더라면 매년 5000만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받았다.

이런 환경에선 누구든지 거품을 이용해 과도한 위험을 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시되었다. 많은 사람이 조만간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위기가 온다고 해도 거품기에 받은 보너스를 토해놓을 필요는 없었다.

신용평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이 신용평가를 하는 투자은행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았다. 유동화증권에 부정적인 평가사는 곧바로 수입이 대폭 줄어들 것이 뻔했다. 이런 보상체계 아래에서 신금융체제는 필연적으로 지나친 레버리지에서 생성된 과도한 위험을 낳았다.

규제완화·첨단기법이 만든 ‘신금융체제’

신금융체제에서 은행은 ‘대출을 만들어 팔아버리는’ 새로운 운영모델을 채택했다. 특히 ‘신용 디폴트 스와프’(CDS)라는 전가의 보도를 사용하면 모든 위험을 잘라 없애버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 모든 전제가 헛된 신화에 불과했다. 모든 대출은 팔아버릴 수 있다는 신금융체제의 요란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은행이 MBS(주택담보부채권)와 CDO(담보부채무증서)를 계속 보유해야만하는 이유는 도처에 산재했다.

우선, 자신들이 만든 증권상품이 안전하다고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금융기관들은 가장 위험한 부분을 종종 스스로 보유했다. 이런 소위 ‘맹독성 폐기물’을 보유함으로써 이들은 신금융체제가 주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스스로 부정했다.

투자담당 직원들은 가장 위험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유했다. 이들 부분이 단기적으로 가장 수익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함으로써 그들은 가장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실제 만들어진 증권의 규모가 너무 클 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의 실행 시기와 MBS나 CDO 매각 시기 사이에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은행이 거의 항상 상당 부분을 안고 있어야만 했다. 위기가 와서 증권에 대한 수요가 사라져버리면 은행은 엄청난 규모의 팔리지 못한 파생상품을 안아야만 했다. 파생상품의 가격 폭락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은행의 부담이 되었다.

또 CDO는 장부에 잡히지 않아서 자본비율 요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신금융체제 아래서 이들 증권은 은행이 보유하지 않고 매각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2007년 영란은행은 영국내 금융기관의 장부상 보유자산 규모가 2000년의 10조달러에서 2006년에는 230조달러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은행의 자산이 놀라울 정도로 증가한 이유는 MBS와 CDO를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증권에서 발생한 손실이 7600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신금융체제에서 투자상품은 조각으로 분리되면서 위험 역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자자는 위험부분만을 살 수도 있었고 세계적 금융시장의 통합으로 위험은 세계적으로 배분될 수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이른바 황금시대의 금융시스템에서와는 달리 위험은 상품을 만든 금융기관에 집중되지 않고 전세계에 걸쳐 무수한 금융기관으로 분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파생상품은 헤지와 투기 모두에 이용될 수 있었는데, 금융 확장기에는 위험을 무릅쓰는 공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호황기에는 파생상품을 이용한 헤지의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다. 왜곡된 보상체계에 현혹된 금융기관의 투자직원들은 위험을 제거하는 헤지비용을 치르려 하지 않았다.

심각한 금융시장 혼란이 생긴 뒤 위험을 헤지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비용이 너무 커져 버렸다. 씨티그룹의 채무에 대한 디폴트 스와프 레이트는 2007년 5월 1000만달러당 1만5000달러였는데 2008년 2월에는 19만달러로 무려 13배 증가했다.

서브프라임으로 시작된 시장 붕괴

신금융체제를 찬양하는 쪽에서는 금융시장의 국제화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한 상품이나 지역에서 시작된 위기가 다른 상품이나 지역으로 급격히 전염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시장에서 시작된 위기가 미국의 주택담보부채권등과 같은 관련 상품뿐 아니라 신용카드, 자동차대출 등 거의 모든 금융시장의 위기로 파급되었다. 이것은 바로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을 가져와 세계적 금융위기로 비화하였다.

신금융체제에서 은행들은 위험자산을 은폐하는 것이 가능했다. SIV(구조화 투자 회사,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s)라는 덮개에 가려 있던 위험자산은 장부에 올리지 않아도 되었고 감독기관들 역시 이런 장부외 자산 처리를 권장하기까지 했다. SIV는 은행과는 아무런 권리 의무 관계가 없는 형식상의 회사여야 했지만 은행들은 SIV가 발행하는 채권이 낮은 금리가 가능한 AAA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막대한 신용대출을 스스로 제공했다.

SIV는 단기로 조달된 자금으로 CDO와 같은 극히 위험한 장기상품에 투자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주택관련 대출상품 시장이 붕괴하고 MBS나 CDO의 가치는 급락하자 SIV의 마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자산담보부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2007년 7월 1조2000억달러였던 자산담보부 단기채권의 발행잔액이 2007년 연말이 되자 8400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이제 은행들은 이들 위험자산을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저금리정책에 쏟아지는 비난

SIV 관련 자산이 장부에 반영되면서 이들의 부실은 은행의 수익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은행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출을 줄이는 한편 금리를 올리자 주택가격의 하락과 대출의 부실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은행의 손실 증가로 증폭되었다. 대규모의 감가상각이 불가피했고 금융시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신금융체제에서 금융시스템 전체에 걸쳐 위험할 정도의 레버리지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LTCM(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사)사태에서 이런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파산할 당시 LTCM의 자기자본은 50억달러 정도였는데 파생상품을 통한 투자자산 합계는 125조달러에 달했다. LTCM의 부실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에 각국의 금융당국은 세계적 금융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구제조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LTCM의 교훈은 너무나 쉽게 잊혀졌다. 미국 금융기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차입규모는 1997년 62%에서 2007년말 114%로 증가했다. 상업은행의 재무구조는 외견상 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많은 위험들이 장부외 거래로 숨겨져 있었다. 위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상업은행의 숨겨진 진실도 같이 드러났다. 이렇게 레버리지가 높아진 원인은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저금리 정책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1990년대 후반의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자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질 것을 우려한 연준은 2000년말부터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연준 기준금리가 기록적인 수준까지 내려갔다. 금융회사들은 싸게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자본투자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자금은 투기적 금융투자에 주로 사용되었다. 세계 금융시스템은 버클리대학 교수인 하이만 민스키의 경구처럼 ‘금융적으로 취약’(financially fragile)한 상태였다.

이처럼 지난 사반세기 동안 진행된 규제완화와 금융혁신의 과정에서 정부의 구제조처는 점점 더 치명적인 금융위기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동안 금융산업은 실물부문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너무나 비대해졌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 실물부문이 금융산업의 게걸스런 식욕을 채워줄 현금흐름을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융자산이 이렇게 비대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금융시장은 이제 축소되어야 한다. 금융시장은 실물경제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정도면 족하다. 금융시장 스스로가 레버리지를 통해 자체 팽창을 하면서 도박장화하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금융시장이 파괴적인 역할을 그만두고 생산적인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금융시장 규제조처가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금융기관의 국유화가 뒤따라야 한다.

짐 크로티
미국 매사추세츠대학(애머스트) 경제학과 교수

짐 크로티/미국 매사추세츠대학(애머스트) 경제학과 교수
크로티 교수는 1973년 카네기멜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크스이론과 케인스이론을 통합하려는 노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폭넓은 연구 실적을 보였다.

그의 주요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거시경제이론에서의 극도의 불확실성 암시>, <금융시장론: 마르크스와 케인스의 투자론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의 구조와 성과>, <신자유주의의 글로벌화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미친 영향> 등이 있다.

특히 저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에 미친 신자유주의 구조개편의 공과에 대한 정치경제적 연구>(케임브리지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 2002)를 통해 한국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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