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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세계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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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스콜세계포럼 지상중계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함께일하는재단의 후원으로 2009년 3월25~27일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열린 세계 최대 사회적 기업가 포럼인 스콜세계포럼에 참가했다.
2004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는 스콜세계포럼은 이제는 일상이 된 인터넷쇼핑의 새로운 장을 열고 확산시켰던 ‘이베이’ 창업자인 제프 스콜이 만든 포럼이다. 영국 일요신문 <업저버>는 이 포럼을 ‘사회적 기업가 정신의 다보스포럼’이라고 일컬었다.
이 포럼 참석자들은 각 국가를 대표해 온 ‘대표단’이라고 한다. 신청자 모두에게 참석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고, 선별해 초청장을 보내는 방식으로 포럼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 67개국에서 800여명의 사회적 기업가, 사회적 투자가, 컨설턴트, 경영학자, 인권·시민운동가 등이 모였다.
세계경제에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지고,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나오는 가운데 열린 이 포럼에서는 ‘이제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 세계경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류 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포럼의 주요 세션과 포럼에서 만난 주요 기관을 지면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
■ 금융위기 극복은 ‘돼지저금통’으로
2009년 스콜세계포럼의 환영사는 제프 스콜 이베이 창업자가 맡았다. 제프 스콜은 사회적 기업가 정신 확산을 사명으로 하는 스콜재단을 설립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는 스콜센터를 만들고 스콜세계포럼을 열도록 후원하고 있다.
스콜은 스콜센터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세계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에게는 어떤 선물이 필요할까? 단상 옆의 테이블 위에 덮여 있던 보자기가 벗겨지고 나타난 것은 아주 예쁜 돼지저금통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금융 파생상품은 잊어버리자. 주식도 채권도 잊어버리자. 은행 예금조차도 잊어야 할지 모른다. 그 복잡하고 화려한 모든 것이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돼지저금통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른 기교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 삶과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문제가 있는 곳에 들어가서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실용적 접근이다.
스콜은 또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가장 레버리지가 높은 사회문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은 매우 강력한 낙관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콜이 지금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이뤄내야 한다고 제시한 두 가지 임무는 ‘기회의 격차’(opportunity gap)와 ‘희망의 격차’(hope gap)를 없애는 것이다. 스콜이 보기에는 이 두 가지가 세계가 겪고 있는 근본적 문제다.
기회의 격차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말한다. 세계 인구의 극히 일부만이 자신의 삶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사회적 기업가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해서 갭을 줄여야 한다.
희망의 격차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현재 당면한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에 빠져 있다. 사회적 기업가는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이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다만 말과 논리로만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하고 일을 이뤄냄으로써 설득해야 한다고 스콜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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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세계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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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금융 필요
사회적기업은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나누어 주는 식의 단순한 자선활동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 기업처럼 실패의 위험이 있고, 착수에서 성공까지의 긴 과정이 있다.
또 사회적기업은 특정 지역에서 영세한 규모에 머무르며 국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델을 확산시켜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도록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모델을 복제하거나, 규모를 키우는 데 큰 관심을 갖는다.
리스크를 져야 하는 사업, 투자로부터 회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업, 규모를 키워나가야 하는 사업, 이런 사업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금융이다. 사업의 성장 단계와 리스크에 걸맞은 자금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벤처기업이라면 창업 초기에 가족 또는 친구의 투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에인절 투자와 벤처캐피털 투자가 차례로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규모가 더 커지면 은행의 대출도 필요해지고, 주식시장에 기업을 상장해 자금을 모으기도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 사채 같은 복잡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을 필요도 있다. 사업의 리스크, 회수 기간, 투자 규모 등을 고려해 잘 맞는 성격의 자금을 모으는 것은 사업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사회적기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사회적 가치에 투자하기’(Investing for Impact)라는 세션에서 나온 이야기다. 특히 이제는 사회적 기업을 둘러싼 자금의 성격도 다양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과거에는 자선적 성격의 기부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대출이나 투자 등 다양한 성격의 자금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영리기업은 투자와 대부 같은 금융을, 비영리기관은 기부금 같은 자금을 활용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고정관념이라는 이야기다. 지금은 두 영역을 넘나드는 금융이 필요하고, 생겨나고 있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게 핵심적 내용이다. 금융은 산업의 젖줄 노릇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 존재 이유를 충실히 반영한 이야기다.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자금 수요자 역시 금융의 고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가치중심 투자엔 지금이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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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세계포럼이 열린 옥스퍼드대학 사이드경영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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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미국 비영리기관은 각종 독립 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운영됐다. 그런데 이런 재단의 자산운용 수익이 금융시장 붕괴로 추락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영리기관으로 기부되는 자금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사회적 기업가들도 금융시장 위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회적 금융’ 로널드 코언 이사는 최근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회적 기업가들의 에너지가 커지고 있다는 게 한 이유이고, 또다른 이유는 자본시장에 균열이 생기면서 새로운 투자 형태를 찾는 욕구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보다 회사채가 더 주목받고 있다든지 하는 새로운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균열을 이용해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투자를 주류화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최대의 지역투자 금융기관인 쇼어뱅크의 부사장인 잔 피어시는 더욱 낙관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쇼어뱅크는 현재 자산 규모가 28억달러(약 4조원)이다. 피어시는 현재 금융위기의 본질은 재무적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과거 금융기관들이 재무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가치 있는 일에 자산을 운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쇼어뱅크는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금융기관들끼리 ‘가치를 중시하는 국제 은행 연대’라는 조직을 만들고 협력해, 위기를 가치중시 금융이 주류화되는 계기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며 운용하는 쇼어캐피털은 주류 펀드보다 좋은 실적을 내고 있고,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은 일반 대출보다 더 안전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피어시는 피터 드러커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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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스콜세계포럼 참석자 대상 설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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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적인 자금조달 능력이 중요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이자 <자선 자본주의>의 저자인 매슈 비숍은 이런 말로 세션을 마무리지었다. “가장 중요한 흐름은, 사람의 흐름이다. 과거 주류 금융기관으로 가던 인재들이 사회 부문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금융위기 이후 사회 부문이 주류화될 수 있는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기관은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회적 가치 확장을 위한 자금조달’ 세션에서는 수십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투자하며 확장하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세션의 발표자들은 다들 엄청난 규모의 펀딩을 여러 가지 가치혼합 자금을 개발해 이루어낸 사람들이었다. 뱀부 파이낸스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장필리프 드 슈레벨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전세계 150개 마이크로파이낸스 기관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그 비밀은 영리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있다. 처음에는 벤처 자선가처럼 혁신적 마인드를 지닌 기부자를 찾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를 키우는 단계가 되면, 그 정도 자금으로는 어렵다. 영리 금융기관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게 이런 사람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엠비에이(MBA)학위를 받은 드 슈레벨은 의외로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말했다. 대규모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자금 조달은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투자자 및 후원자와 신뢰를 쌓아야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특히 영리 투자자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업을 신뢰하게 하려면, 조금씩 오랜 시간 함께 사업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 중의 기본을 이야기한 셈이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점이 있다. 우선 ‘정말 우리 조직 규모를 키우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작은 규모로, 지역적으로 진행하는 게 더 효과적인 사업도 분명 있다. 또 대규모 자금 조달 이후의 경영에는 반드시 자금 제공자의 영향력이 행사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많이 받으면 그만큼 외부 의존성이 커진다. 어떤 사회적기업이든, 성공한 곳의 소요 자금은 90% 이상이 사업을 통한 내부 조달이다. 돈을 벌어서 쓴다는 이야기다. 자체 영업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벤처기업가들은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고 나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자금 조달이 끝났으니 이제 사업에 집중하자.” 그러나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 사업에 그런 말은 적용되지 않는다. 자금 조달은 영원히 계속된다. 조금의 성과로 조금 더 받고, 그래서 늘어난 성과를 가지고 조금 더 받는 방법으로 말이다.
어쩌면 자금 조달 능력은 영리 기업가보다는 사회적 기업가나 비영리 경영자에게 더욱 중요할 수 있다는 게 이 세션의 결론이었다. 가치 실현을 위한 자금 조달은 끝없이 해야 하는 일이고, 사업이 성공할수록 더 잘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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