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9 21:35
수정 : 2009.06.29 21:35
|
국내외 금융기업 사회책임경영 관리체계 세부요인 수준 비교
|
[헤리리뷰] 국내 금융회사들은 안전한가
국내 금융회사들은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커다란 숙제를 받았다. 바로 ‘내부 체질 개선을 통한 자생력 확보’였다. 외부의 강한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강력한 내성을 키우도록 주문받은 것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국내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이라는 외부 위기요인을 통해 밀린 숙제 검사를 받고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푸치) 편입 선진국 금융회사들을 대상으로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 뒤 파산에 영향을 끼친 사회책임경영 요인이 어떤 것인지를 연구했다. 그렇다면, 여전히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세계경제의 어두운 터널 속에 서 있는 국내 금융회사의 잠재적 내부 위기 요인으로서의 사회책임경영 관리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내부 위기 요인으로 여겨지는 지배구조, 윤리강령, 뇌물과 부패, 이해관계자, 환경 등 5가지 지표에 따라 국내 금융회사의 수준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모든 지표에서 사회책임경영 관리체계 수준이 평균적으로 글로벌 우수기업은 물론, 파산기업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증권·보험 등 18곳 선정해 분석
이번에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진행한 국내 금융회사들의 내부 체질 진단은 3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로는 진단 대상 금융회사를 선정했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아이리스(EIRIS)로부터 제공받은 ‘FTSE WAEI’(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World Advanced Emerging Markets Index)에 속해 있는 국내 기업 107곳 가운데 금융회사 18곳을 분석 대상으로 선택했다. 은행 8곳, 증권사 7곳, 보험사 2곳, 기타 금융회사 1곳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2단계에서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사회책임경영 관리체계 수준을 글로벌 우수기업과 파산기업에 견줘 분석했다. 비교 결과, 국내 금융회사들의 사회책임경영 관리체계 평균 수준은 5개 지표 모두에서 선진국 우수기업은 물론 파산기업보다도 낮았다. 특히 ‘환경’, ‘뇌물과 부패’ 지표에서 그 차이가 컸다.
3단계에서는 글로벌 금융회사 분석 결과 파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밝혀진 이해관계자, 사회책임경영 실행 시스템, 지배구조의 세 가지 측면에서 국내 금융회사의 수준을 살펴봤다.
보건·안전·교육 항목 부문 특히 낮아
첫째, 이해관계자 측면에서 ‘보건 및 안전 시스템’, ‘임직원 교육’, ‘고객 및 협력업체 시스템’을 살펴봤다. 이 항목 전반에서 국내 금융회사는 글로벌 우수기업 및 파산기업들보다 현저하게 낮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보건 및 안전 시스템’과 ‘임직원 교육’ 항목에서는 평균 10점 미만의 평가를 받아 관련 정책 또는 프로그램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발생한 ‘펀드 소송’과 ‘키코 소송’의 이유가 대부분 ‘설명의무 위반’ 또는 ‘강제적인 계약’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사회책임경영 실행 시스템 측면에서는 ‘윤리강령 시스템’, ‘보건 및 안전 시스템’, ‘고객 및 협력업체 시스템’ 그리고 ‘환경 시스템’ 등이 모두 글로벌 기업보다 낮았다.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정책을 감시하고 모니터링하는 기업 내 체계로서, 사회책임경영의 지속적 실행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따라서 다소 선언적 성격을 띤 ‘정책’과 달리 실행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글로벌 우수기업의 경우 ‘환경관리 시스템’처럼 일반 금융사들이 소홀히 하는 시스템도 상당 부분 갖춰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위기 덜 노출됐지만 대응 능력은 취약
셋째,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 분리 여부’ 요인을 살펴봤다. 이 요인에서 국내 금융회사는 100점 만점에 28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글로벌 우수기업(84.2)과 글로벌 파산기업(50.6)에 견줘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사실 이 항목을 금융회사들의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견제와 감시기능으로 중요한 요소이긴 하나, 조직의 규모나 형태, 문화에 따라 적합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회사에 끼친 영향은 글로벌 파산기업들에 견주면 아직은 작다. 파산 금융회사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내부 체질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여전히 글로벌 금융회사들에 견줘 위험에 대한 노출 정도가 작아서 그렇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사회책임경영 등 위기관리 전략을 제대로 세워두지 않으면 언제 파산사태를 맞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세계화를 지향하는 국내 대형 금융회사들에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는 또 한 번 학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금융위기로 인해 쓰러져 가는 수백 년 된 기업들이 남겨준 유산일지도 모른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jkseo@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