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01 14:54
수정 : 2009.09.0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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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사회적기업 인증과 지원. 일러스트레이션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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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갈림길에 선 사회적기업
노동부에서 직원 1인당 90만원 정도의 인건비를 다달이 지원받는 인천의 한 사회적기업은 요즘 다른 부처에서 확보할 수 있는 지원금이 없는지 알아보느라 바쁘다. 노동부의 인건비 지원 기간이 곧 끝나기 때문이다. 인건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방법이 없다. 다른 정책지원을 받게 되면 ‘사회적기업’은 이 기업에 거추장스러운 수식어가 될지도 모른다. 비영리단체인 이곳이 애초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한 이유도 오로지 인건비 지원이었다.
이보다 앞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서울의 다른 비영리단체도 사업모델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대기업의 안정적 기부금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업 외에 취약계층을 고용해 제공하던 유료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축소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중단되면 수익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인건비 지원기간 2년 시한 속속 도래
2007년 7월에 발효된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시행 2돌을 맞았다. 2007년 10월 아름다운가게 등 36개사가 처음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250여 기업이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2007년 당시 35억원 수준이었던 정부의 사회적기업 관련 예산은 올해 758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0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사이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져 일반 시민의 43.8%가 사회적기업에 대해 들어봤으며, 64.8%는 사회적기업 제품을 살 뜻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성공적으로 파고든 셈이다.
이런 사회적기업들이 요즘 고민에 싸여 있다. 비교적 탄탄하게 사업을 꾸려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들도 그렇다. 고민의 핵심은 사회적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중단이다. 정부의 인건비 지원 시한이 애초 2년으로 정해져 있어 오는 11월부터는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업들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사업 내용을 수정하거나 인력을 감축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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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위기의 주요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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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낮은 사업모델에 일차 원인
정부의 인건비 지원 중단 앞에서 사회적기업들은 왜 이렇게 무력한 것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사업모델 문제다. 기업은 스스로 혁신해 조직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 인건비 지원 중단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회적기업들은 대부분 수익성이 낮다. 정부의 인건비 지원을 기업의 원가 우위 창출이나 비용구조 개선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셈이다. 바꿔 말하면 정부 지원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사업모델이 성립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체계적인 수요 예측이나 경쟁 전략 없이 일단 지원금을 받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사례가 많다.
사회적기업들이 인건비 지원에 관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부의 사회적기업 지원이 사실상 인건비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올해 사회적기업 관련 예산 758억원 가운데 82.7%가 인건비다. 사회적기업이 새로 직원을 고용할 경우, 신규 직원의 임금과 4대 보험료를 합쳐 월 9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데 예산이 496억원이 든다. 경영에 필요한 전문적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고용하는 경우에도 최대 월 150만원 수준의 인건비를 지원하는데, 여기에 131억원이 들 예정이다.
우선 구매·설비투자 등 장기 지원 필요
지원 정책이 인건비 위주이다 보니, 평가도 사회혁신 성과나 경제적 성과보다는 근로조건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사회적기업 정책 주무부서인 노동부에서는, 채용된 직원의 근로 조건을 확인하는 ‘감독’ 기능에 머물기 일쑤다. 사회적기업 쪽에서도 사회문제 해결이나 창의성 및 혁신보다는, 규율과 통제를 통한 경영관리에 치중하기 십상이다. 그 결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도 쉽지 않게 되는 곳이 많다.
사실 인건비 지원을 받기 위해 인력을 대거 신규 채용해 놓고 보면, 생산성은 떨어지고 오히려 비용만 늘어나기 쉽다. 기업의 초기 단계에는 시장 분석과 전략 수립, 홍보 및 판로 개척 등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 체계 구축 등이 신규 인력 채용보다 더 필요하다.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사업과 조직문화를 교육하고 적응시키는 비용과 함께, 각종 관리비용도 든다. 신규 직원이 자원으로 전환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 돈이 뒤따른다. 또 이런 투자가 마무리되어 역량을 갖추게 된 후에는 정작, 인건비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조직을 떠나게 되어 그 과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기업 초기에 고용 창출 효과를 요구하기보다는 기업이 안정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연스럽게 고용이 창출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기업의 안착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또 사회적기업은 수익성뿐 아니라 사회적 성과를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시장 경쟁에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일반 시장 경쟁에 내몰리는 현상도 사회적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사회적기업 제품의 우선 구매와 관련한 법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실효성은 없는 실정이다. 강제조항이 아닐뿐더러, 구매 결정자들의 사회적기업 이해도도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한 공공기관이 제시하는 까다로운 입찰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어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적기업들이 적지 않다. 입찰 기회가 생기더라도 대부분 최저가입찰 방식이므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가격정책을 펼칠 여지가 없다.
많은 사회적기업이 자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대출이나 투자를 받을 여지도 매우 적다. 주류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이 어려울 뿐 아니라, 정부의 대부사업도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이익의 30%를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사회적기업 인증 요건 때문에, 증자를 통한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투자기관의 출현은 아직 멀었다.
‘사회문제의 혁신적 해결’이라는 사회적기업 본래 취지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사회적 기업가의 불안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더 많은 사회적 기업가가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좀더 과감하고 열린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것인가. 또 하나의 유행 지난 복지정책이 될 것인가. 사회적기업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박상유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kron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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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조직 잠재력 끌어내는 게 관건
양용희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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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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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은 정부의 공공근로, 자활센터, 사회적 일자리 등 취약계층의 고용 창출 방안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물론 사회적기업을 통해 취약계층의 고용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진사회의 경험에 비춰 볼 때 효과적인 정책과 사업을 펼치면 취약계층의 고용문제를 완화하는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정부 정책과 민간 사업에 대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발달 과정과 내용을 보면 선진사회의 사회적기업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부 주도로 사업이 추진돼 왔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기업 육성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특히 우리의 경우 정부 주도로 사회적기업을 육성해왔기에 단시간에 사회적기업이 취약계층을 위한 주요한 일자리 사업 중의 하나가 되었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만큼 민간 차원의 동력이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인증받은 많은 사회적기업이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중단될 경우 자립이 매우 요원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렇다고 정부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을 부정하거나 반대할 수도 없다. 당장 시급한 취약계층의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뚜렷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지원을 유지하면서도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와 사업의 효율성을 통해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정부는 사회적기업을 정부의 관점이 아닌 비영리조직의 관점에서 그들이 처한 환경과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비영리조직의 규모, 예산, 전문성 그리고 서비스 대상자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차별화된 정책과 지원을 해야 한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기업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비영리조직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전세계적으로 비영리조직들은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자원의 개발과 전문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영리조직 못지않게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취약계층의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 정책과 사업을 정부의 단방향 관점이나 조직과 재정이 취약한 일부 비영리조직에만 의존한다면 사회적기업을 통한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사업은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나타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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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 다지는 지원 정책으로 전환해야
이철종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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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종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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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 정책의 초점은 사회적기업의 주체를 확산시키는 데 맞추어져 있다. 사회적기업의 초동 주체에 대한 동원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가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250곳이 넘는 인증 사회적기업이 탄생했고 예비 사회적기업도 800곳을 훌쩍 넘어섰다. 정부의 사회적기업 확대 정책이 일정 부분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사회적기업에 대한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육성정책이 필요하다. 양적 확대를 위해 사회적기업과 예비 사회적기업들에 대한 역량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인건비 중심의 지원정책이 집행되었다. 이에 자신들의 역량을 가늠하지 못한 사회적기업과 예비 사회적기업들은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적정 규모에 대한 고민 없이 외형만 키워, 고도비만으로 인한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듯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사회적기업이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양적 확대 속에서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롤모델을 형성할 사회적기업들이 확실하게 전면에 떠오르지 못한다면 정부의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당위적인 기획안들에 현혹돼 사회적기업의 수만 늘리려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2년여간 정책을 집행한 결과, 외형보다는 내실있게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사회적기업들을 발굴해서 키워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작은 아이템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운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사회적기업은 시혜적 복지를 실현하는 복지정책의 위탁기관이 아니다.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고 스스로 성장하여 가는 경쟁력 있는 착한 기업을 지향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사회적기업 정책을 한시적 일자리 정책과 혼동하여 운영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사회적기업의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을 담보하는 지원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때다. 예컨대 사회적기업의 사업아이템이 다양해질 수 있게 10명 미만의 작은 조직으로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아울러 지원의 내용도 인건비 등의 운영경비에서 투자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또한 성과를 내고 좋은 사업모델을 실천적으로 만들어내는 사회적기업을 적극 지원해 사회적기업 내 바람직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도록 이끌어내는 지원정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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