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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은 다양한 이해관계로부터의 독립이 객관적 시선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정책연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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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HERI가 만난 사람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
언론은 시끄러웠다. 노후연금(social security)이 2030년이면 완전 고갈된다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뒤덮었다.
정치인들은 바빴다.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보험금을 줄여야 한다’ ‘민영화하고 주식투자를 많이 해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따위의 갖가지 해법이 등장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위기의식은 같았다.
2000년, 미국 이야기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누구도 노후연금이 위기라는 분석이 ‘사실’(fact)인지는 묻지 않았다. 노후연금이 정말 위기인 것일까? 제대로 계산한 것일까?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수치를 왜곡한 것은 아닐까?
그때 한 권의 보고서가 워싱턴의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에서 나온다. <노후연금: 가짜 위기>(딘 베이커·마크 웨이스브로트 지음)라는 책이다. 그리고 단순한 질문에 단순한 답을 한다. ‘2030년 노후연금의 위기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 위기를 이유로 한 민영화는 어불성설이다.’
이 보고서를 쓴 경제정책연구센터 딘 베이커(52)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 논쟁에서는 숫자가 중요했지요. 그런데 누구도 그걸 꼼꼼히 따져 묻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게 답답해서 직접 장기적 기금 예측을 해 봤더니, 놀랍게도 건전성이 유지되더군요.”
정확한 사실 토대로 한 분석 강조
그는 독립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에 대해 ‘객관성’을 매우 강조한다.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정치권력과 특정 기업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정책 현안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의견을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싱크탱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책 영향력이 가장 높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정확한 사실과 객관적 분석에 근거한 그의 노후연금 관련 보고서는, 추측과 주장만 난무하던 워싱턴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우선 노후연금 위기설을 반박함으로써 민영화론자나 연금축소론자의 입지를 줄였다. 거기다가 장기 주가수익률을 대입해 주식투자 비중이 높아질 경우 연금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줬다. 민영화하면 주식투자를 많이 할 수 있으므로 연금 수익률이 높아져 안전해진다는 금융사 쪽의 억측에도 일격을 가한 것이다. 사실과 분석을 강조하는 그의 연구는 국제문제에서도 빛을 발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민영화와 자유화를 앞세운 ‘워싱턴 컨센서스’가 주류였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런 식의 구조조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지요.” 한국도 그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분석해 보니, 실제 경제발전에 성공한 개발도상국 가운데 민영화와 자유화를 통해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단순한 숫자 분석이었는데, 그 파장은 매우 컸습니다.” 미국인들은 늘 말했다. ‘유럽은 사회복지가 아주 잘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근로의욕이 낮다. 그래서 실업률이 높다.’ 높은 세금과 실업급여 때문에 실업률이 높다는 것이다. 진리처럼 통용되는 이 이야기도 딘 베이커에게는 도전의 대상이었다. 막상 숫자를 들여다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통계 분석 결과, 유럽도 북유럽 국가들은 다르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이 보고서의 결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토론하고 다시 연구했다. 그러고 나서 북유럽 국가들의 독창적인 경제발전과 사회복지 모델에 대한 논의가 전세계에 확산한다. 숫자 하나가 대중과 당국을 설득 “학자가 학술논문으로 이런 이야기를 밝히고 정책에 영향을 끼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창한 이론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대중을 설득하고 정책결정권자를 설득하는 것은, 이론적 정교함이 아니라 단순한 숫자 하나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숫자를 아주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찾아내고 제시하는 일을 싱크탱크에서 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렇게 찾아낸 객관적 분석은 미디어와 의회를 통해 정책에 반영된다. “상원 재정위원회 등에 보고서를 보낼 수 있다면 가장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 보고서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이 함께 본다면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지요. 물론 미디어 보도를 통해 여론을 움직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고요.” 그런데 이런 싱크탱크는 어떤 재원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주로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 같은 데서 지원금을 받아 연구활동을 합니다. 처음에는 개별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하지만, 성과를 조금 입증하고 나면 운영 경비 전체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부러운 대목이었다.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런 지식창조작업을 지원할 만한 재단 등의 후원자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지원금은 학술논문과 사회복지사업으로 양분되기 마련이라 현안의 해법을 찾는 일에 투입되기 어렵고, 그것마저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모든 현안 다루는 언론으론 한계 싱크탱크가 재원을 찾기 어렵다면, 신문이 이렇게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베이커 소장은 부정적이었다. “워싱턴의 진보적 신문조차도 경제 이슈에는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곡보도나 추측보도 역시 너무나 많습니다.” 언론은 부동산 문제나 기업 등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사실 언론은 모든 문제를 백화점식으로 다뤄야 하므로 깊이를 갖기 어렵고, 목소리 큰 집단의 이해관계에서도 자유롭기 쉽지 않다. 베이커 소장은 미국 워싱턴의 대형 싱크탱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일부 대형 싱크탱크는 자신의 성향과 맞는 정권이 들어서면 연구원이 대거 정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을 엄정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 점에서는 보수나 진보나 비슷합니다.” 싱크탱크의 ‘독립성’과 ‘객관성’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독립성과 객관성을 갖춰야만 경제의 실체도 보인다. “주식 버블과 주택 버블의 비밀은 그게 더는 비밀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상식이 있는 사람, 간단한 산수를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일반적으로 공유되던 의견에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본질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었다.” 베이커 소장이 최근 저서 <약탈과 실책>에 쓴 글이다. 그가 보기에 시장의 붕괴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권력, 기업, 투자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 그 독립이 객관적 시선을 갖게 해 준다는 이야기다. 워싱턴/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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