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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대표적 노동통합형 사회적 기업 ‘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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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유럽의 사회적 기업 현황
유럽은 다양한 국가, 인종, 언어로 구성된 다문화 사회다. 사회적 기업들과 관련한 움직임도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추구하는 목적과 처한 환경, 조직 형태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발전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조차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노동통합형 기업과 같은 다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들의 경제활동을 ‘사회적 경제’라는 틀로 묶어 설명한다. 사회적 경제는 이윤 추구보다는 구성원이나 지역사회에 대한 서비스를 우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수익 분배에서 사람과 노동을 우위에 두려는 협동조합, 민간단체, 상호공제조직 같은 기업들의 모든 경제적 활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영미식 경영학적 접근과 큰 차이
유럽의 사회적 경제 조직체들은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즉, 사회적 경제에 우호적인 제도를 정착시켜 사회적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 폭넓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영미권의 사회적 기업들이 비영리단체의 수익사업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고, 제도보다는 사회적 기업가의 ‘혁신’에 기반을 두고 경영학적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의 사회적 기업들은 노인, 장애인, 보육 등 사회서비스 제공형 기업, 취약계층이나 장기 실업자를 고용하는 노동통합형 기업, 낙후 지역의 발전을 추구하는 지역개발형 기업으로 나뉜다.
정부 설득해 지원 제도 이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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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를 위한 레스토랑 ‘세삼’ 주방장과 운영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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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이민자 거주 밀집지역에서 활동하는 사회서비스 제공형 민간단체인 ‘부용 드 퀼튀르’는 제도 개선을 통해 성장의 동력을 얻어낸 사례로 꼽힌다. 이 단체는 ‘세삼’이라는 식당을 운영하여 이민자들의 직업훈련을 돕는 한편, 언어와 문화 차이로 정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이민자 자녀를 위한 방과후 학습이나 맞벌이 가정을 위한 보육, 여성 지위 개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드는 자금의 93%가량을 지방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정부가 자금을 지원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방정부는 이민자들을 단속하고 불합리하게 대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근 지역 시민단체와의 강한 연대를 통해 정부를 설득하고, 시민의 이해를 얻어내, 이민자들과 거주 취약지역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 냈고, 이를 제도화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임금격차 제한해 취약계층 고용
지역의 다른 기업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노동통합형 사회적 기업의 경우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경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벨기에 왈룬 지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인 ‘테르’는 280여명이 고용된 재활용 기업이다. 하루 평균 의류는 35t, 종이류는 300t 정도를 처리해 대부분을 수출하고 있다. 한 해의 운영 방침을 결정하는 총회에는 문맹자를 포함해 15개 국적의 직원 전원이 의결권을 행사하는데, 이들의 대다수가 취약계층이다. 최고임금과 최저임금의 격차를 2.5배 이내로 한정하고, 수익금으로 제3세계의 파트너들을 지원하는 등 뛰어난 사회적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60년간 왈룬 지역의 버려진 물품을 수거해 왔지만, 재활용시장의 수익성이 확인된 이후 재활용품 수거는 지자체의 입찰을 통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동집약적 산업 특성상 경쟁 업체들이 저임금을 강요해 가격경쟁력을 추구하면서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에 입찰에 따른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역발전에 사회적 기업 적극 활용
이렇듯 제도를 통해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프랑스 릴(Lille)시의 사례에서도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광역 릴시에는 150만명가량이 거주하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사회적 경제 발전계획을 운용해, 사회적 기업 주체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사회적 기업 활성화, 사회적 경제 홍보 등을 시정의 중요한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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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역개발형 사회적 기업 ‘에스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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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시는 사회적 경제를 사회복지나 실천의 문제가 아닌 경제의 문제로 인식해, 시 정책 전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용인구의 12%를 차지하는 사회적 경제 당사자들의 역량을 개발하고, 사회적 경 제 조직들의 연대를 촉진하여 부문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책임 있는 소비 활동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지역 유기농 농산물을 매주 다양한 포장 형태로 지역민에게 공급하는 사업이나 청년들의 농촌 정착을 돕는 프로그램은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금융 부문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20여명의 시민이 모여 예금을 하고 일정액이 되면 사회적 경제 분야에 투자하는 작은 단위부터 훨씬 큰 규모의 연대금고까지 대안금융제도를 통해 지역의 자금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이 사회적 경제 활동의 가치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정무역 활성화를 위한 행사를 열어 시민들이 쉽게 사회적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시 스스로 사회적 기업 상품의 우선적 구매자로 앞장서고 있다. 시 예산의 8%가량을 사회적 기업 물품 구매에 할당하고, 지역 건설공사 때 환경을 중시하는 사회적 기업에 발주하거나, 크리스마스 선물 구입을 사회적 기업에서 하도록 하는 소비 조항 등을 신설해 릴시의 구매가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와 직접 연계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릴시의 노력은 자원봉사나 환경적 문제를 포괄하는 사회적 경제 개념이 단순한 지역내총생산(GRDP)으로 산출되지 않는 가치를 담고 있다는 인식 전환에서 출발했다. 사회적 경제를 지역 발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편,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여 이러한 성장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이다.
유럽 사회적 기업과 지자체의 노력은 사회적 기업이 창출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가 단순히 목적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제도 개선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까지 아울러야 함을 알려준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제도 개선이 사회적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임을 보여준다.
릴ㆍ리에주/글·사진 박상유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kron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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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사회적기업 보육모델 ‘더허브’
40여곳에 지부…운영비 회비·기부로 조성
유럽에는 혁신에 기반을 둔 사회적 기업 모델이 많다. 이러한 모델의 핵심에는 창의성과 네트워크가 있다. ‘더 허브’(The HUB)는 창의적 환경에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전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기업 인큐베이션 모델이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4개 대륙 22개 도시에 퍼져 있는 40여곳의 지부가 독자적으로 지역의 특성에 맞게 운영되고 있다.
더허브가 주목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훌륭한 아이디어들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닥쳐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누군가의 간단한 조언이나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이었다.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더허브에서 와서 자신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편하게 토론하고, 사업계획서를 수정·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들과 회계, 경영, 디자인 등의 전문가들이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시장에 대한 정보나 자금 운용과 같은 실제 부분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편안한 시간에 이곳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가들은 기업 운영에 실질적 도움을 받거나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육을 받을 수도 있고, 협력 혁신 연구를 지원받기도 하며, 허브런치라는 회원 사이의 네트워킹과 자원 공유를 촉진하기 위한 회식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아이디어라면 가치투자자들을 만날 수도 있다.
사실 더허브 사무실에는 사무가구와 컴퓨터, 회의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설비,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주방이 전부다. 편안하게 창의적 생각을 하고, 일을 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공간 디자인은 탁월하게 설계되었다. 아늑한 의자, 책상, 소파, 공간 그리고 분위기가 창의적 사고를 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용하는 비용은 시간당 2유로에 지나지 않는다.
지부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은 회비, 공간 사용료와 지역 기부를 통해 조성된다. 본부는 지원금을 주지 않으므로 지부 운영에 직접 간여하지 않는다. 다만 본부는 각 지부로부터 거둔 일정 비율의 회비를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사용한다. 암스테르담/박상유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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