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02 16:05
수정 : 2010.03.0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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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더 100인의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 평가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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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Special Report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 | 이상적 싱크탱크의 조건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현실은 한 걸음 더 발전한다. 한 사회에서 정책 지식을 생산해 내는 싱크탱크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모습을 지향할 때 현실의 문제점도 개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싱크탱크는 어떤 모습일까?
응답자 64% “국내 기관 중엔 없다”
이상적인 싱크탱크의 조건을 알아보기 위해 독립성, 객관성, 전문성, 개방성의 4가지 조건을 나열한 뒤 각각의 항목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해달라고 주문했다.
1순위 응답률을 살펴보면, 전문성이 48.0%로 가장 높았으며, 독립성과 객관성이 각각 39.0%, 12.0%로 그 뒤를 이었다. 엔지오(NGO)와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응답자들은 전문성(24%)보다 독립성(64.0%)을 더 중요한 조건으로 꼽아 인상적이었다. 반면, 국회의원실에서는 객관성(평균 순위 2.0)을 전문성(평균 순위 2.29)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전체 평균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렇다면 국내에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싱크탱크가 있을까? 아쉽게도 응답자의 64.0%가 ‘없다’고 답했다. 국내 주요 싱크탱크의 전문성에 대한 평가 점수가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결국 문제는 다른 조건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의 문제점을 묻는 물음에 49%의 응답자가 독립성 문제를 꼽았다. 또한 국내 환경에서 싱크탱크가 갖추기 어려운 조건에 대해 과반수의 응답자가 독립성(78%)을 거론해, 독립성은 싱크탱크를 둘러싼 우리 사회 전반과 얽혀 있는 문제임이 드러났다.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의 문제점에 대해 ‘독립성의 부재’로 두루뭉술하게 언급한 응답자가 22.0%, 재정의 독립성 부재가 17.0%, 정권으로부터의 독립 부재가 10.0%로 조사되었다. 특히 조사에서 재정의 독립성 부재가 상대적으로 높게 거론된 것은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가 성장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연구를 생존의 문제로 연결해 인식해야 하는 환경을 대변하고 있다. 즉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나 사안이 아니라 생존 가능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분위기는 싱크탱크가 정책을 앞질러 대안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장벽이 된다.
사회 핵심문제 연구·대안제시 취약
독립성이 결여된 싱크탱크에서 진행하는 연구 역시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의도와 결과에 한계를 가진 싱크탱크는 사회적으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창의적인 대안을 창출하는 데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실제로 싱크탱크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가를 묻는 물음에 62%의 응답자가 ‘없다’고 응답했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양극화, 빈부격차나 이념갈등 등을 꼽았다. 이러한 이슈들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인 만큼 광범위하고도 장기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의사결정 구조에 제약이 있다면 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종속적인 연구조직의 특성이 창의적인 국가 어젠다 창출을 저해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사회 연구소 전문성 제고 시급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문제는 ‘재원’이다. 설문에 응한 오피니언 리더들도 이러한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재정 확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응답자들이 재원 확보에 이어 꼽은 것은 ‘연구인력 강화에 따른 전문성 강화’다.
하지만 응답자들의 답변은 실제 현실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생존을 위한 연구사업을 수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재원이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답변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이들이 생태계 문제 극복 방안으로 재원 확보를 꼽은 것은 이들 연구기관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자리잡은 싱크탱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싱크탱크의 유형별로 독립성, 객관성, 전문성, 개방성을 묻는 설문에서 시민사회 연구소들은 전문성을 제외한 모든 조건에서 국책 연구소, 대기업 연구소, 업계 연구소를 누르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전문성에서만큼은 반대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시민사회 연구소들은 특히 존립의 위협을 받을 만큼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연구를 위한 전문인력을 확보할 여유를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재정 확보’라는 해결책은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싱크탱크의 전문성 강화를 통해 모든 조건을 갖춘 이상적인 싱크탱크의 탄생을 의미하는 셈이다.
시민사회 연구소 등에 재원이 투입되어 더 많은 싱크탱크가 제 기능을 하게 되면, 그만큼 다양한 정책 지식이 생산되어 이상적인 의사결정의 기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적으로 어젠다를 꾸릴 수 있는 싱크탱크의 탄생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갈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다.
김지예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minn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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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조사했나
오피니언 리더 100명 대상 설문조사
언론·학계·엔지오·국회의원실로 나눠 진행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수행한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연구 및 조사는 2010년 1~2월 두 달 동안 진행되었다. 연구 주제 및 가설 확정으로 시작해 설문조사 디자인, 국내외 사례 분석, 설문 결과 분석 등 네 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1단계에서는 연구 주제와 가설을 수립했다. 우선 싱크탱크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연구하면서, 규모가 큰 싱크탱크들은 대부분 특정 조직의 지배구조 아래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싱크탱크들은 정책을 연구함에 있어 독립성 및 객관성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또한 싱크탱크 생태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분석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싱크탱크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역할을 점검하기로 했다.
2단계에서는 조사 문항을 구성하고 대상을 선정하는 등 설문조사를 디자인했다. 조사 문항은 각종 문헌에 나온 개념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싱크탱크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싱크탱크 생태계의 현주소를 묻는 문항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조사 대상은 정책 의사결정자인 행정관료 주변에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오피니언 리더로, 국내 언론사에서 근무하며 사회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자, 전국 4년제 대학 교수, 국내 엔지오(NGO) 및 시민단체 실무책임자, 국회의원실 등 네 그룹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샘플의 그룹 편중을 막기 위해 분야별로 유의 할당 하였다. 조사는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1월11일부터 2월5일까지 4주간 진행하였다.
3단계에서는 국내외 싱크탱크 사례를 분석하였다. 설문조사 문항에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싱크탱크의 모델을 주관식으로 넣어 언급된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점검하였다. 또한 규모 면에서 주요 싱크탱크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정책에 영향을 끼친 경험이 있으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민간 싱크탱크 사례도 함께 분석하였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설문 결과에 대한 분석을 했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내 주요 싱크탱크의 독립성, 객관성, 전문성, 개방성 수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싱크탱크의 구조적 특징과 이들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또한 3단계 사례와 비교 분석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싱크탱크의 이상적 조건을 도출해 보았다.
이번 조사 결과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인식하고 있는 싱크탱크의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실제 정책 결정자인 관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점이 연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김지예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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