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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02 16:12 수정 : 2010.03.02 16:12

[헤리리뷰] Special Report 국내 싱크탱크 현주소
언론·학계는 KDI, 엔지오·의원실은 SERI 꼽아
정부·대기업 구미 맞는 정책·지식 생산 한계

사람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 많은 생각들을 한다. 우리의 두뇌는 담고 있던 온갖 지식을 끌어모으고 부족하면 외부에서 조달하여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는다. 더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를 발견하기도 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가를 움직이는 정책이 있고, 이러한 정책결정에 근거가 되는 보고서, 즉 충분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이끄는 생각들은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을까? 한겨레경제연구소는 국내 싱크탱크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기 위해 국내 오피니언 리더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주로 언론계와 학계, 비정부기구(NGO) 및 시민단체, 국회의원실에서 설문 대상자를 골랐다. 이들은 국내의 정책 지식이 삼성경제연구소(SERI)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라는 2강 체제 아래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정부 영향력이 가장 큰 싱크탱크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현 정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를 3순위까지 꼽도록 질문한 결과,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순위 응답률은 한국개발연구원이 44.0%, 삼성경제연구소는 29.0%로 나타났다. 3순위까지의 복수응답을 기준으로 보면 삼성경제연구소가 76.0%, 한국개발연구원이 71.0%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계와 학계는 영향력이 가장 큰 싱크탱크로 한국개발연구원을 꼽는 경우가 많은 반면, 시민단체와 의원실은 삼성경제연구소를 가장 많이 선택해 시각의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3위로 언급된 여의도연구소의 경우, 3순위까지의 복수응답률이 19.0%인 것을 고려하면,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내 싱크탱크를 ‘삼성경제연구소 및 한국개발연구원’과 ‘기타’로 구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은 업무에 이용하기 위해 많이 이용하는 싱크탱크를 3순위까지 묻는 문항에서도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언급하는 압도적인 수준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정부정책 결정에 대한 영향력뿐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정부·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아

응답자들은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의 독립성, 객관성, 전문성, 개방성을 묻는 물음에서 독립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기관의 순위가 엇갈린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 3.33점(5점 만점)으로 보통을 조금 웃도는 수준을 보이지만, 한국개발연구원의 경우 2.18점으로 ‘독립적이지 않다’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자본과 대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한국개발연구원이 3.03점으로 보통 수준을 보이는 반면, 삼성경제연구소는 1.80점으로 현저히 낮은 수준을 보인다.

이런 차이는 이들 연구기관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응답자들은 한국개발연구원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이유로 국책기관인 점(34%)을 들었고, 삼성경제연구소가 자본과 대기업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이유로 대기업에 속한 기관인 점(70.3%)을 지목했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두 기관 모두 정부나 기업의 구미에 맞는 정책 지식을 생산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두 기관의 연구 내용에 대한 이들의 신뢰도가 높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객관성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더욱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객관성에 대해서는 ‘객관적’이라는 평가와 ‘객관성이 없다’는 평가가 28.9% 대 27.6%로 근소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에 대해서는 ‘객관성이 없다’는 평가가 42.3%로 ‘객관적이다’(21.1%)라는 평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는 응답자들이 각 기관의 실질적인 연구 목적을 무엇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이는 이해관계가 얽힌 목적을 지적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은 정해진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또는 정부의 정치적 견해를 반영하기 위해서 등 연구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관과 연구 성과가 갖는 객관성 자체에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다.

개방성을 묻는 문항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3.28점, 한국개발연구원이 2.82점으로 객관성이나 독립성 점수 수준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개방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를 살펴보면, 외부와의 소통이 불충분한 점과 결과 및 정보에 대한 접근의 한계성이 공통으로 언급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뽑은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임에도 정책 지식의 유통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전문성에 대해서는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이 각각 4.09점과 3.97점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전체 응답자 중 28.9%가, 한국개발연구원은 전체 응답자 중 21.1%가 ‘매우 전문적이다’라고 답해, 오피니언 리더들은 두 기관이 싱크탱크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소수의견도 있는데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슈 파이팅’ 식의 적시성을 강조하는 점, 한국개발연구원은 연구가 분업 구조로 돼 있는 점이 전문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거론됐다.

이번 조사를 통해 삼성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 두 독보적인 싱크탱크가 전문성은 갖췄지만 존재 자체가 독립적이지 못해 연구 결과의 객관성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 역할 못하는 100억 국고지원

외면받는 정당 연구소들 …여의도연구소만 언급

한겨레경제연구소의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에서 드러난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정당의 정책 연구소(정당 연구소)의 부재이다.

국내 주요 싱크탱크를 알아보기 위해 현 정권에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를 3순위까지 묻는 질문에 총 57곳의 싱크탱크들이 거론되었다. 기업 연구소나 국책 연구소뿐 아니라 시민사회 연구소도 거론되어 전체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정당 연구소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다.

정당 연구소 가운데 이번 조사에서 언급된 곳은 여의도연구소가 유일하다. 그러나 응답자 100명 중 6명만이 영향력 1순위로 언급한 정도에 불과하다. 응답자의 66%가 영향력의 요인으로 ‘정책 결정권자에게 접근이 용이’한 점을 꼽은 것을 보면, 그마저도 현재 여의도연구소를 만든 한나라당이 여당이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전통적으로 정당이나 의회의 정책 제시 능력이 약한 편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책 지식 생산 측면에서 정당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95년 한나라당이 여의도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각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연구소 설립에 동참하였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비교적 최근에 창당한 정당까지 모두 정책 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2010년 현재 국내에는 모두 7곳의 정당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능한 데에는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을 통해 정당 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한 영향이 크다. 현재 정당법에서는 별도 법인의 정책 연구소 설립을 의무화하고 이에 대해 국고보조금을 지원하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덧붙여 정치자금법에서는 정당이 국고보조금의 30% 이상을 정책 연구소에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연간 100억원가량이 정당 연구소 지원에 배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조사를 통해 정당 연구소가 국고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책 지식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당 연구소는 여전히 싱크탱크라기보다 정당 조직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김지예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minn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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