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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02 16:14 수정 : 2010.03.02 16:16

독립 민간 ‘싱크탱크’ 균형사회 밝힌다

[헤리리뷰] Special Report
한겨레경제연구소 출범 3주년맞이 특별기획 |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





발달장애는 개인에게 큰 어려움이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며,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런데 발달장애의 원인은 대체로 두뇌발달의 불균형에 있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라고 한다. 이성적 활동을 담당하는 좌뇌와 감성적 활동을 담당하는 우뇌 사이의 불균형이 이런 증세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이 두뇌에서 만들어진 생각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사회의 변화 역시 특정한 생각에 기반을 둬 일어난다. 한 사회에서 생각을 생산하는 두뇌집단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데 사회의 두뇌집단에 불균형이 생긴다면 어떨까? 사회도 발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다양한 생각이 펼쳐지고 토론되어 사회의 방향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게 될 때 그 사회는 지체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주도층 대상 한국사회 ‘생각의 균형’ 측정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출범 3주년을 맞아 한국의 싱크탱크 지형도를 연구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경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쉴 새 없이 성장했다. 깊은 성찰과 다양한 사고를 경험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민주화와 개방화와 구조조정을 극심하게 겪고 난 지금, 최소한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한국 사회는 그 성장 수준에 걸맞은 두뇌를 갖추고 있는가? 두뇌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균형 잡힌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한 사회에서 생각이 생산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두뇌집단, 싱크탱크를 통해 그 ‘생각의 균형’을 측정하고 싶었다. 국회의원, 기자, 교수, 엔지오 활동가 등 한국의 여론주도층 100명에게 싱크탱크에 대해 물었다.


결과는 암담했다. 독보적으로 정책결정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꼽힌 두 개의 싱크탱크는 삼성경제연구소(SERI)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었다. 각각 기업 연구소, 국책 연구소다. 존재 자체가 독립적이지 않은 곳이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다. 기업과 정부 입맛에 맞는 정책 지식만이 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조사 대상 여론주도층은 이 두 기관의 정부권력 또는 특정 대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크게 의심하고 있었다. 이 의심 때문에 연구 결과의 객관성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홍일표 수석연구원이 쓴 <세계를 이끄는 생각>에는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 헤리티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80년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고 일주일 후 헤리티지재단의 대표 에드윈 풀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1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정책자료집을 발송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사항’(Mandate for Leadership)이었다.” 여기 담긴 내용의 약 60%는 실제로 착수됐다.

진보적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 대표 존 포데스타는 2008년 9월 ‘녹색 경제회복’(Green Recovery)이라는 보고서에서 환경산업을 키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이후 ‘녹색 일자리 계획’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워 실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제목의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가 제출됐다. 국민소득 2만달러론 등 국정 방향 수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다. 국책 및 기업 연구소 출신 인사들이 정부의 주요 실무책임자급 보직에 자리잡는 모습도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들과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오직 기업 주도 연구소와 국책 연구소만이 그런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엇비슷한 정책 아이디어만이 주입되고, 토론은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헤리티지와 진보적인 미국진보센터 및 중도적인 브루킹스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독립 민간 싱크탱크가 모두 그런 구실을 하면서 균형을 잡는다.

한국 사회 두뇌의 균형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이번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의 핵심적 질문이었다. 결론은 분명하다. 독립 민간 싱크탱크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식이 생산되고 토론되어야만 한국 사회가 발달장애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두뇌집단 균형→ 생각의 균형→ 실행의 균형

어려움은 많다. 우선 재원 문제가 걸린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과,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국책 연구소가 어엿이 버티고 있다. 재원이 해결되지 않으니, 독립 민간 싱크탱크는 좋은 인력과 전문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전문성이 확보된다고 해도, 정책결정권자에 대한 접근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도 고민거리다. 국책연구소는 관련 부처가 주는 연구용역을 통해 직접 보고할 수 있다. 기업 연구소는 기업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하며 정책결정권자에게 접근하고,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연구 성과를 드러내며 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독립 민간 싱크탱크에는 이 모든 것이 여의치 않다.

독립 민간 싱크탱크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도 자립하고 있는 훌륭한 곳도 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어 여전히 규모가 작고 약하다. 재원과 접근성은 규모와 직접 연관이 있다. 독립 민간 싱크탱크가 모여서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네트워크를 통한 규모 확대가 절실한 때다. 그래야 한계를 넘어서서 진정한 독립 민간 싱크탱크가 대한민국에 자리잡도록 할 수 있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두뇌집단의 균형이, 생각의 균형으로, 그것이 실행의 균형으로 이어지고 나서야 대한민국은 균형 잡힌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생각이 논의되는 사회가 되어야,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생각의 좌표’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지식과 관점을 접해야 자신의 좌표를 자기가 정할 수 있다.

다양하고 행복한 사회는 생각의 다양성과 균형으로부터 온다. 일방적으로 기업과 정치권력의 관점만 전달받아서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 <생각의 좌표>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생각은 내 생각이 아니다. 내가 내 생각을 찾고 사회가 생각의 균형을 찾는 일, 그게 대한민국이 사춘기를 스스로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한국의 싱크탱크 지형도 연구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이원재 소장, 이현숙 연구위원, 홍일표 수석연구원, 김지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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