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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사당에서 하원의 의료개혁법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 3월21일, 의사당 밖에서 의료개혁을 지지하는 이들이 응원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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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World
지난 3월9일, 워싱턴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첫해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드라마가 펼쳐졌다. 의회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정한 의료보험 개혁을 막기 위한 거대한 로비에 저항하기 위해, 필자는 수십명의 노조 및 공익단체 지도자들, 그리고 수천명의 시민들과 함께 움직였다. 우리 5000여명은, 의료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업이 가하는 모든 종류의 압력을 대표하는 ‘미국의료보험계획’(AHIP)이 다음 단계를 위한 계획을 짜고 있던 워싱턴 호텔로 행진을 하였다.
이 시위는 ‘미국을 위한 의료보험, 지금 시작하자!’(Health Care for America NOW!)라는 단체가 주도했다. 이 단체는 일반 국민이 재정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양질의 의료보험을 지향하는 전국적인 풀뿌리연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날 행사에 참여한 100곳가량의 단체 지도자들에게 시위에서 체포당할 위험을 감수할 것을 요청하였다. 필자도 정책연구소의 바버라 에렌라이크 이사,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리처드 트룸카 의장, 그리고 이들 외에도 연합에 참가하는 다른 동료 단체 대표들과 함께 행진에 참가하였다.
이번 행진은 미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계기를 상징한다. 수십 명의 단체 지도자들이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기업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나선 것이다. 거대 의료보험기업, 석유나 석탄의 화석연료기업, 금융기업 등이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완전히 중단시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예컨대 대형 제약회사들의 최고경영자들과 연합하고 있는 거대 의료보험기업들이 의회의 표를 매수하여, 근본적인 의료보험 개혁을 중단시키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경영자들의 보수
미국이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대가를 치러내야 한다.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경영자들의 연봉체계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정책연구소’에서 경영자들의 연봉을 조사한 결과, 상위 5곳의 의료보험기업 최고경영자들은 2007년과 2008년의 연봉을 합쳐 1억1300만달러 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웰포인트,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시그나, 에트나, 휴매나 등 5개 기업은 모두 ‘미국의료보험계획’(AHIP) 로비그룹의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경영자는 에트나의 로널드 윌리엄스이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356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평균 연봉의 미국 근로자들이 이 돈을 벌려면 1000년도 넘게 일을 해야 한다. 곧 발간될 2009년 연봉 자료에서도 의료보험기업의 경영자들은 과다한 연봉을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일반 시민들은 높아진 의료보험료와 치솟는 실업률로 고통받아 왔다.
이러한 기업 경영자들의 연봉체계 조절 실패가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원인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과도하게 높은 보수를 유지하기 위해 경영자들이 일반인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은 비단 첨단금융부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잠재적 보수가 높을수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보수를 받아내려는 유혹도 거세진다. 의료보험산업에서, 이러한 유혹이란 곧 건강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아픈 사람에게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의료보험사의 이윤을 이윤 하한선까지 깎아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에게 일반인의 건강위기는 단지 급료의 인상을 의미할 뿐이다. 경제 전반으로 보았을 때, 막대한 개인 보수를 취하려는 경영자들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와 같은 행동방식에는 무분별한 투자, 부당한 대우의 노동자 교육, 연구개발(R&D)의 대폭 축소, 소비자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경우, 경영자들은 간단히 분식회계를 자행해 버리기도 한다.
몇 해 전, 미국에서 가장 큰 의료보험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고위 경영자들에게 배당금을 몰아주기 위해 스톡옵션을 소급적용한 죄목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 이 회사는 해당 고위 경영자들을 퇴출시켜야 했으며, 이 스캔들을 둘러싼 집단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8억9500만달러를 써야 했다. 이것은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챙기기 위해 어떤 종류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점점 더 건강을 잃어가는 미국으로부터도 충분한 이윤을 거둬왔다. 최고경영자들의 충격적인 연봉에 더해, 이 회사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선의 의회’ 안에서 변화를 차단하기 위해 의회에 뿌릴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 대가는 너무도 크다. 보험회사로부터 보험혜택을 거부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마치 골리앗을 마주한 다윗의 성경 이야기처럼, 필자를 비롯한 100명은 국가의 의료보험계획을 짜는 최고경영자들에게 다음의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감옥에라도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아프고 병들어가는 동안, 당신들은 결코 부유해지지 못할 것이다.”
결국 경찰은 시위대를 체포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우리는 논점을 더욱 크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운동은 3월21일, 219명의 의원으로 하여금 국민의료보험법안에 투표해야 한다는 확신을 불어넣는 데 주효했다. 이날은 미국 역사에서 기본권이 기업의 탐욕에 승리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새 법안은 부분적 승리에 불과
그러나 우리는 이 승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의료보험 최종 법안은 부분적인 승리에 불과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미국은 의료보험에 관해서는 부유한 국가들 중에서 최악의 국가였다. 거의 5000만명에 이르는, 즉 전체 인구의 6분의 1이 이제껏 아무런 의료보험도 적용받지 못했다. 새 의료보험 법안은 보험을 적용받지 못했던 인구 중에서 3000만명가량에게만 의료보험을 새로이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공공의료보험(public option), 즉 민영의료보험과 경쟁하는 정부 주도의 의료보험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시위에도 불구하고, 최종 법안에는 아무런 공공의료보험도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게 될 3000만명의 미국인들은 여전히 민영보험회사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새로운 의료보험 체계는 여전히 캐나다나 서유럽의 의료보험 체계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에서 부분적인 향상만을 일구어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승리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진보적인 저항이 잘 조직되기만 한다면, 워싱턴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강력한 이해관계가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 승리는 진보주의자들로 하여금 2010년에 은행입법, 기후변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전과 관련하여 중대한 개혁을 성취해내는 데 진력하도록 고취하고 있다. 오바마가 선전했던 희망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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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커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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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커배너(John Cavanagh)는 1998년부터 정책연구소(IPS) 대표를 맡아오면서, 연구소의 각종 프로그램, 대외협력, 재원개발 등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다트머스 대학에서 학사,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유엔무역개발회의(1978~1981)와 세계보건기구(1981~1983)에서 일했고, 이후 83년부터 97년까지 정책연구소 글로벌경제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로빈 브로드와 함께 쓴 <개발의 재정의: 시장은 어떻게 그의 호적수를 만났나>(2008, Paradigm Publishers)를 포함해 10권이 넘는 책의 공동저자이며, 국제경제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해 왔다.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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