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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4 14:01 수정 : 2010.05.04 14:03

대구·경북사례로 본 지역 싱크탱크 실태.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대구·경북사례로 본 지역 싱크탱크 실태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큰 역할
정책지식 생산 독점 위험성도
‘관’ 넘어 ‘민’ 기대도 충족해야

최근 2, 3년간 대구·경북 지역은 적잖은 국책사업들을 유치하면서, 끝 모를 불황과 침체로부터의 탈출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경제자유구역과 국가과학산업단지 지정, 첨단의료복합도시 유치, 로봇산업진흥원과 모바일융합기술센터 설립 확정, 연구개발(R&D) 특구 사실상 확정 등은 대구·경북 지역경제가 되살아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광역자치단체의 두뇌집단, 지방연구원

지역 스스로 회생할 수 있는 자원과 동력이 지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중앙부처가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이나 새로운 전략사업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대구·경북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은 때로는 ‘로비’의 형태로, 때로는 ‘연구’의 형태로 진행된다. 광역자치단체들이 적지 않은 기금을 출연해 지방연구원들을 설립하고, 자신들의 이러한 정책수요에 부응하도록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경기개발연구원, 대구경북연구원 등 총 15개 연구원이 전국적으로 운영중이며, 매년 수백억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 곳에서부터 1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연구 인력을 갖춘 곳까지 다양하게 있다.

지난 수년간 대구·경북이 여러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대구경북연구원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으며, 그 역할에 만족한다”는 것이 김범일 대구시장의 평가다. 대구경북연구원이 대구·경북 지식경제자유구역이나 첨단의료복합도시와 같은 대형 국책사업의 아이디어와 기본틀을 제공했고, 선제적인 연구를 통해 사업 지정에 필요한 자료와 논리들을 착실하게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국책사업들이 대구·경북의 경제 회생에 얼마나 빨리, 직접적이고 고른 효과를 미칠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지방연구원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지방연구원 성장의 명과 암

15개 지방연구원 현황

실제로 대구경북연구원의 양적 성장과 영향력 증대는 확연하다. 계약직을 포함한 전임 연구 인력의 수가 80명을 넘어섰고, 광역은 물론 기초자치단체들의 용역 발주 건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국책연구기관들과 달리 지역 연구의 우선순위가 높고, 사후관리도 잘되며, 중앙부처의 사업을 따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의 설명이다.

홍 원장은 또한 “공무원들이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 ‘오늘의 먹을거리’ 문제보다, 모양새 좋은 ‘내일의 프로젝트’에 치중하고 있다. 지역의 연구개발 기관들이 생색내기용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고, 대학교수들이 지역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대구·경북의 정책지식 생태계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역할로 ‘절반의 시민단체’를 스스로 내세울 정도이다. 하지만 모든 지방연구원들이 이와 비슷한 위상과 유사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며, 지방연구원의 역할에 대한 평가와 제안 역시 다양하다.

“서울과 수도권의 방대한 지적 인프라에 비교한다면, 대구·경북 지역은 대구경북연구원 하나로 버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김종한 대구시 정책기획관의 지적은, 대구경북연구원을 비롯한 지방연구원의 이중적 위상을 말해 준다. 지역을 대표하는 핵심 두뇌집단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지만, 자칫 그것이 지역의 부족한 정책자원들을 독점해 버릴 위험성도 있다는 것이다. 대구사회연구소 김영철 소장은 대구경북연구원의 역할 확장으로 인해, “정책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경쟁해야 하는데, 자칫 연구원으로 창구가 좁아질 위험도 있다”는 지역 내 우려를 전한다. 학술진흥재단 등재 학술지에 지역정책 관련 논문을 실을 경우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연구원의 ‘조력자’ 역할도 있지만, 그런 단순 지원을 넘어서는 ‘제도화된 협력 구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지방연구원들의 명칭을 통해 확인되듯, 연구원들 대부분이 “여전히 ‘개발’이나 ‘발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국책사업을 유치하기 위한 논리나 자료 개발에 집중된 연구에 치우쳐 있으며, 지역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시민사회와의 협력이 부족하다”는, 김제선 대전 풀뿌리사람들 상임이사의 지적이 대표적이다.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 공무원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성장한 지방연구원은 이미 상당수 있지만, ‘관’을 넘어선 ‘민’의 기대까지 충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서로 머리를 맞대는 지혜 필요

대구사회연구소 이창용 대외협력실장은 “지방연구원들이 지나치게 화려한 ‘이벤트성 연구’보다는 좀 더 착실하게 지역이 필요로 하는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 정책지식 생산자 집단의 적절한 역할 분담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독립 민간 두뇌집단(싱크탱크)들은 국책이나 대기업 연구소들에 비해, 자원과 영향력의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서울과 지방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추가되면 그러한 ‘불균형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내 자원을 상당 부분 차지한 지방연구원들에 대한 평가와 기대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부족한 지역의 정책 역량을 어떻게 모으고 키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역 두뇌집단의 성장은, 단순히 ‘자원 부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을 수 있는 ‘구조 부재’와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지역만 하더라도, 45개나 되는 대학이 있고, 수많은 대학교수가 있다. 하지만 대학교수들의 정책 참여는 추상적 자문이나 건별 용역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시의성과 지속성, 축적성 등에서 한계가 있다. 지역 시민단체들 역시, 풀뿌리의 문제의식을 구체적 정책으로 전환하는 능력에 대한 고민이 깊다. 결국 이러한 약점들을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제도화된 협력 구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역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남에게 ‘머리를 빌리는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그저 ‘머리 하나를 키우는’ 방식도 곤란하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


‘풀뿌리 공익활동’ 지원하는 지역재단 설립 꿈틀

대구시민센터가 펴낸 발간물.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 윤종화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가 같은 센터 이춘희 팀장과 함께 쓴 <공익아! 어딨니?>라는 책은 제목부터 무척 살갑게 다가온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저술지원으로 펴낸 이 책을, 김제선 상임이사(대전 풀뿌리사람들), 유정배 상임이사(강원살림), 김해몽 센터장(부산시민센터) 등이 추천하고 있다. 대구지역의 ‘풀뿌리 공익활동’을 찾아 나선 ‘희망순례’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우선 이들이 속한 단체는 그동안 ‘권력 감시’를 중심으로 지역 시민사회 변화에 기여해 오던 단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온전히 ‘새로운 사람들’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권력 감시 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이다. 도대체 지역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일까?

윤종화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는 “센터가 풀뿌리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지역재단’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현실 여건상 일본의 엔피오(NPO)지원센터와 유사한 ‘중간지원조직’ 위상을 갖는다”고 말한다. 대구, 대전과 달리 강원과 광주, 부산은 재단 설립도 함께 이루어졌지만, 현재의 위상과 역할은 ‘중간지원조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역 풀뿌리 단체들을 위한 각종 정보 제공, 공간 및 자원 나눔,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 민관 교류사업 진행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민들의 공익 활동이 넘쳐나는 풍성한 시민사회라는 기반을 만들어 내지 않고선, 시민운동이 울림 없는 외침 이상이 되기 어렵다”는 성찰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경제’ 모델도 적극 모색

풀뿌리 공익활동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사회적 경제’에 관한 관심도 공통적이다. 본래부터 생협 기반이 강했던 원주 등 강원지역 4개 권역으로 구성된 강원살림이나 사회적 기업, 커뮤니티 비즈니스 지원을 통해 지역의 복지, 고용, 교육을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대구사회연구소와 대구시민센터, ‘직거래’와 ‘지역화폐’의 결합, 먹을거리 중심의 생협을 넘어서는 종합형 생협, 도시형 대안학교 설립 등 다양한 방면의 사회적 경제를 실험하고 있는 대전 풀뿌리사람들 모두 개발과 발전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가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사회적 경제’라는 틀로 묶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작업은 추상적인 가치 제시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제안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막상 “지역의 진보 성향 교수들은 ‘거시담론’이나 ‘전국적 사안’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아, 지역 시민사회의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성상희 대구시민센터 이사는 고민을 토로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분권과 혁신’ 담론을 주도했고 지금은 지역기관 34곳이 협력하는 지역 거버넌스 모델로 낙동강 고용촉진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대구사회연구소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강원살림 기획이사를 맡고 있는 원기준 목사는 “강원도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알펜시아 리조트 부채 문제를 강원발전연구원이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그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강원살림이 강원시민사회연구원이라는 별도 연구기관을 설립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의 정책지식 생태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협의회 구성해 경험·정보 나눠

이를 위해 다섯 개 풀뿌리 지원조직들은 현재 정책협의회를 구성해 서로 경험과 정보를 나누고 있다. 지방연구원들의 문제점과 지역 시민사회 정책역량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들도 검토되고 있다. 김달수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은 “혁신자치단체 협의회를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방자치와 지역발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를 공동 구성하자”고 제안한다. 지역 밀착형의 독창적 정책 개발이 더욱 절실한 지자체들의 경우, 새로운 협력모델을 통해 자원과 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역의 새로운 흐름이 바꿔낼 관계의 핵심은 참가 단체들의 ‘과거’가 아니라 지역의 ‘현재’일 것이다. 이들의 도전과 실험은 ‘스스로’ 해내는 운동으로 확장시키는 데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지역의 정책지식 생태계도 ‘풀뿌리’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책들까지 풍부하게 다뤄지는 구조로 전환될 것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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