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28 22:16
수정 : 2010.06.2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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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영국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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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세계 두뇌집단 톺아보기
5월 총선 결과 영국에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됐다. 총리에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선출됐다. 총리와 부총리, 내각의 핵심 인물들이 40대 젊은 정치인들로 배치되면서, 영국 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최근 6·2 지방선거를 계기로 한국 정치권에서도 ‘세대교체’가 논란이 되면서, 영국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는 양상이다.
싱크탱크 연설로 큰 캐머런 총리
하지만 영국 정치인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중요한 계기가 정치인의 ‘연설’이라는 사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전당대회나 각종 대중 집회에서 영국 정치인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 방향을 ‘연설’하고, 당원과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낸다.
캐머런 영국 총리(사진)가 보수당을 이끌 차세대 스타로 부상하는 데는 ‘정책교환’(Policy Exchange)이라는 보수 두뇌집단(싱크탱크)에서의 연설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2005년 9월 ‘보수당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을 통해 자신의 비전과 열정을 밝혔고, 그에 힘입어 그해 연말 39살의 나이로 당수에 취임했다. 2002년에 창립된 정책교환은 ‘영국 우파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 ‘데이비드 캐머런이 가장 좋아하는 싱크탱크’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2009년 7월 캐머런은,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시장자유주의’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센터(Center for Policy Studies) 창립 35돌 기념행사 연설에서, 센터가 1979년 보수당 승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적인 기여’를 했다며 찬사를 보낸다. 자신 또한 그 정치적 흐름 속에 존재함을 밝힌 것이다. 캐머런 총리에게 가장 큰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싱크탱크를, 정책교환과 정책연구센터라고 평가하는 데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공공정책연구소, 진보 재구성 고민
그러나 캐머런의 연설 행보는 보수 싱크탱크들에 국한되지 않았다. 2009년 1월 캐머런은 보수당 당수의 신분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진보 싱크탱크인 데모스(Demos)에서의 연설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을 ‘진보적 보수주의’라는 개념으로 명쾌히 설명했다. “진보의 가치를 보수적 방식으로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후 캐머런은 2009년 11월, 데모스의 창립자이자,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정책실장이었던 제프 멀건이 이끄는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 연설에서, 사회서비스 시스템 개혁을 중심으로 한 영국 사회의 변화를 “큰 정부가 아닌 큰 사회”의 복원이라고 주창했다. 마가릿 대처 영국 총리의 “더 이상 사회라는 것은 없다”는 1987년 선언과 비교해 볼 때, 캐머런의 정책 방향이 대처 시절의 보수당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임을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6월1일, 영국 ‘신노동당’의 이념, 가치, 정책을 뒷받침해 온 공공정책연구소(IPPR) 누리집에 작은 알림 기사 하나가 떴다. 10년간 이곳을 이끌어 왔던 공동대표 케리 오펜하임과 리사 하커가 사임하고, 새로운 대표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중도우익 연립정권 아래서 노동당과 진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 싱크탱크를 연구하고 있는 김보영 박사는 “대처나 블레어 등장 당시에 견줘, 캐머런이 내거는 ‘큰 사회’의 설득력은 아직 약하다. 당분간 보수와 진보 싱크탱크의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큰 사회’의 의미를 둘러싼 정책연구센터, 정책교환, 공공정책연구소 사이의 논쟁도 이미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따르려 한다면, 정치인의 ‘나이’만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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