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당 정책연구소가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면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사진은 여의도연구소(왼쪽)와 민주정책연구원의 토론회 모습. 각 연구소 제공
|
[헤리리뷰] 6·2 지방선거 통해 본 정당 싱크탱크 실태와 과제
선거땐 앉을 새도 없는 연구원들
6·2 지방선거 유세기간 중 방문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에선 연구원들 대부분이 선거지원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연구원들은 주요 선거본부에 결합해 후보들의 방송토론용 자료를 만들었고, 지역으로 파견돼 현안을 정책으로 만드는 일에 투입됐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연구원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공동정부운영이나 혁신적 지방자치에 관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 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정책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선거를 전후한 연구소들의 이러한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정당 정책연구소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거나, 아예 무관심하다. 대표적 의정감시단체인 참여연대의 이지현 팀장 역시 “정당의 정책역량을 중시하지만, 정책연구소들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은 따로 하지 않는다. 별로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민간 싱크탱크 관계자는 “그 많은 돈을 받아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정당간 국고보조금 ‘천양지차’
현재 국내에는 7곳의 정당 정책연구소가 있다. 이들은 연간 100억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2004년 정치자금법과 정당법 개정을 통해, 정당은 중앙당 산하에 별도 법인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당에 배분되는 국고보조금 총액의 30%를 배당하도록 됐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된 2009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정당 연구소에 지급되는 126억여원 가운데, 여의도연구소(약 65억원)와 민주정책연구원(약 39억원) 몫이 전체 보조금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 5개 연구소는 1년에 겨우 수억원 정도의 국고보조금만 지원받는다. 이러한 격차에 대해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지원규모 차이가 너무 커, 소수정당의 정책역량 강화에 심각한 제약이 된다”고 비판한다.
보조금 지급이 정당을 경유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예산이 변칙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도 자주 문제로 지적된다.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린 당직자들의 급여로 사용되고 있거나, 반대로 정당의 단기적 정책수요에 대응하는 역할로 연구원들이 차출된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예산을 운용하는 여의도연구소 정태윤 부소장조차 “정책연구소의 강화는 정당체제 자체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중장기 연구를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할 정도이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
정당 정책연구소 현황
|
독일식 정치재단 이상적 모델
한국의 정당 정책연구소는 독일식 정치재단 모델을 따른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의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는 대신, 별도 법인으로 둠으로써 정당에 예속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독일 모델의 껍데기만 베낀 ‘한국식’ 정당 정책연구소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한국과 독일의 정당 정책연구소를 꾸준히 연구해 온 선거연수원 신두철 교수의 설명이다.
정당 정책연구소가 정당의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중앙당이나 개별 의원은 단기적 현안대응과 구체적 의안개발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과 연구소 사이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연구원들은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 개발’에 힘을 쏟기는커녕, 몇 쪽짜리 현안분석 자료와 몇 개월짜리 단기 보고서 만들기에 바쁘다. 이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서도, 정당과 학계, 시민사회 모두가 불만을 표시한다. 당장 써먹기 곤란하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현안 따라잡기에 급급하다는 상반된 평가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정책연구원 문병주 연구실장은 “정책연구소의 문제는 ‘돈’만은 아니며, 오히려 연구소에 대한 편견과 협소한 인식에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지혜는 모으고, 자원은 나눠야”
이처럼 한국의 정당 정책연구소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정책연구소가 맺고 있는 ‘관계의 재구성’을 통해 가능하다. 여의도연구소 정태윤 부소장은 “정책연구소는 정당과 가까이 있음으로써, 강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당 정책연구소의 힘은 정당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민주정책연구원 문병주 연구실장 역시, 정당의 정책역량 강화라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 정책위원회와 연구소 사이의 훨씬 더 강한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시민사회와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당의 중장기 비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시민사회와의 넓고 깊은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이 “당의 요구에 충실히 응하되, 당에 종속되지 않고 비판할 수 있는 연구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장석준 실장 역시 “시민사회의 요구나 학계의 권위를 정치로 연결하고, 이들과 정당을 소통하게 하는 매개” 구실을 강조한다. 정당 정책연구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독일식 정치재단 모델을 따른다면, 연구소와 시민사회의 충실한 소통, 긴밀한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우선적 과제일지 단언하기란 어렵다. 연구소장을 누가 맡느냐부터 견해가 엇갈린다. ‘당 정책위원장이 겸임’(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하는 방안과 ‘당 외부의 독립적 학자’(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맡는 방안 등 뚜렷이 나뉜다. 현실 정치에서의 정책적 영향력 행사가 더 중요하고 가능한 경우와 시민사회에 착근하여 더 긴 호흡의 영향력 확보를 중시하는 경우는, 상황인식과 대안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당 정책연구소가 지금보다 더 큰 구실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정당 정책연구소나 정당의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정책지식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정당 정책연구소가 ‘정책을 매개로 한 정치’를 더 잘해 주어야 한다. 기업연구소들과는 ‘공공성’과 ‘공익’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관료집단들이 시민사회 두뇌집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증폭장치’ 노릇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정당 정책연구소가 더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고, 자원을 나누는’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이 처한 ‘모순적 위치’는 그저 ‘딜레마’가 아니라, 오히려 풍부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