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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28 22:56 수정 : 2010.06.28 22:58

김은선씨가 강원 영월군 주천면 산골의 비산체험학교를 찾은 아이들에게 꽃누르미를 가르치고 있다.

[헤리리뷰] 농촌에서 다시 희망찾기
영월 주천면 김은선씨…꿈꿔왔던 귀농 마흔에 결행

산골로 다시 돌아와 일곱번의 봄이 지나갔다. 열네살 때 도시로 떠났던 나는 그때의 내 나이와 같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산골을 찾았다.

열네살에 작은 도시에 던져진 나는 늘 이방인처럼 서성이며 살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회색도시를 뒤로하고 다시 산골에 돌아와 섰을 때 내 마음에는 평온이 찾아왔다. 마흔에 할 일을 정했는데, 그것은 꽃누르미(압화)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과 숲해설가 교육을 받는 일, 그리고 운전면허를 따는 일, 자전거 배우기였다. 우선 운전학원에 등록을 하고, 횡성까지 일주일에 한번 꽃누르미를 배우러 다녔다. 숲해설가 교육 3개월 동안은 주말마다 서울 주변의 산과 수목원을 찾아다녔다. 산골살이에서 한가지 불편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배우려면 먼 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갈 때 우연히 폐교 운영을 맡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누르미와 숲해설가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비산체험학교라는 간판을 겁 없이 걸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천연염색도 배웠다. 아이들과 물고기를 잡아서 관찰하고, 지역의 야생화를 이용한 누름꽃으로 여러 가지 만들기를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물들임을 할 때면 나 자신이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즐겁고 행복했다. 물놀이나 물고기 관찰 체험과 감자 캐기 같은 영농체험 진행은 작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남편의 몫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경제적인 것이었다. 체험학교의 수입만으로는 살림 유지가 어려웠고, 학교도 점점 낡아가고 있었다. 학교를 보수하고 유지하는 데 체험학교의 수입이 거의 다 들어갔다. 큰아이가 대학에 진학하자 경제적 압박은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체험학교에 매달린 지난 7년. 두 아이가 고3을 보내는 동안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지어 먹인 적이 없을 정도로 엄마로서는 낙제점이었다. 하루 세차례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두 아이를 등하교시키느라 아침저녁으로 수시로 면소재지인 주천을 들락거려야 했다. 더 먼 산골짜기에 사는 지인들은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 다시 도시로 나가기도 했다. 통학은 너무 힘든 일이었고 아이들만 도시로 내보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은 까닭이었다.

교육청과 7년 임대계약이 끝나면 소규모의 체험학습장과 식물원을 열어 독립할 생각이었지만, 그동안 학교에 쏟은 시간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체험학교 운영을 다시 맡기로 했다.

다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개인이 운영해 나가기에 체험학교는 힘에 겨운 일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수 있는 술빛고을 정보화마을과 손을 잡았다.

이제 새로운 여름을 기다린다. 수첩에 적힌 일정들을 보면서 조금은 달라져 있을 여름 이야기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글·사진 김은선/비산체험학교 대표 na679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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