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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페 엘베크 카오스필로츠 설립자는 사회를 바꾸려는 청년 혁신가야말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라고 강조했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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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HERI가 만난 사람 /
우페 엘베크 카오스필로츠 설립자
설립 20년 만에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세계적인 디자인스쿨 60위 안에 든 곳. 애플을 상대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레고의 최고경영자가 극찬한 대학. 덴마크 제2의 도시 오르후스에 자리잡은 창의학교 카오스필로츠(KaosPilots)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91년 개교와 동시에 유럽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카오스필로츠는 ‘북유럽의 하버드’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세상을 바꿔가는 혁신적인 인재들의 양성소로 자리매김했다. 21살 이상의 청년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으나, 엄격하고도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험을 거쳐 입학 자격을 얻는 청년은 35명 남짓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강의보다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통해 비즈니스와 프로세스 디자인 등을 배운다. 수업의 최우선 목표는 학생의 창의력 개발이다.
혁신인재 양성하는 ‘북유럽 하버드’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근대교육의 산실 덴마크에서 이처럼 독창적인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2010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의 메인 연사로 초청받아 한국을 방문한 카오스필로츠의 설립자 우페 엘베크를 만나 비결을 물었다.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은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이동하던 시기입니다. 게다가 당시 유럽은 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베를린장벽 붕괴에 따라 사회가 재편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경제적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사회를 준비할 수 있는 인재에 대한 요구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터져나온 셈이죠.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저는 오히려 가장 보수적인 교육 시스템을 가진 덴마크에 있었기 때문에 카오스필로츠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시대적 변화를 품어내고 이끌 수 있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인재를 길러낼 교육기관이 더욱 간절했기 때문이지요.”
경제적 위기가 새 교육기관 요구 급변하는 사회가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그의 말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함께 읽혔다.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새로운 움직임, 예측할 수 없는 경제상황이 청년 사회혁신가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이런 흐름을 이끄는 교육 프로그램이 전통 교육기관이 아닌 시민사회 영역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어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제약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시민사회 영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교육입니다. 기존의 경영학과들이 남보다 성공하기 위해 개인의 역량 개발에 집중했다면, 카오스필로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팀으로 일하는 법을 배웁니다. 기존 경영학과가 골프클럽에서 탄생했다면 우리는 댄스클럽에서 탄생한 셈이지요. 카오스필로츠가 경영을 가르치지만 전통 교육기관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교육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과거에 시민활동가로 활동한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익숙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사회가 원하는 방식이기도 하지요.” 한국, 사회적 지원 체제 잘돼 있어 전문성과 혁신성을 모두 갖춘 ‘고수’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청년 사회혁신가 교육은 어떨까? 그는 무엇보다 사회적인 지원을 갖춘 점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카오스필로츠가 출범할 때 제대로 된 인프라는 없었지만, 우리가 갖고 있었던 네트워크가 좋은 인프라 구실을 해줬습니다. 특히 덴마크의 문화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그리고 장난감회사 레고의 시이오 등이 큰 도움을 줬죠. 재정적인 지원뿐 아니라 설립 과정에서 행정적 지원이나 홍보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청년 사회혁신가 교육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기대가 크고 호의적이며, 정부가 대안교육과 사회적기업가 교육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여건을 좋은 결과로 연결시키려면 전통적인 교육기관보다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실제로 덴마크에서도 대학들이 이러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카오스필로츠가 더 나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는 현재 카오스필로츠의 교장직에서 물러나 ‘체인지 더 게임’이라는 교육·컨설팅회사를 운영하며 지난 8년간의 시의원 생활을 마치고 중앙의원 선거를 준비중이다. 시민활동가에서 교육자로, 다시 정치가로 끊임없이 변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덴마크는 무엇보다 교육과 정치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오스필로츠를 만들어 교육의 혁신을 이뤄냈고, 이제 정치를 혁신적인 정책으로 변화시키려 합니다. ‘체인지 더 게임’은 제가 가진 노하우를 더 많은 곳에 전파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죠. 최근에는 싱가포르, 베이징 등 아시아 지역의 초청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데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더 큰 발전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아무런 보상 없이 내놓기는 어렵다. 노하우가 쌓인 영역을 버리고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채우는 도전도 쉽지 않다. 결국 그가 실천하는 나눔과 채움은 혁신이 되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행보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김지예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minn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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