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02 09:50
수정 : 2010.11.02 09:50
[헤리리뷰] 2010 아시아미래포럼 /
한중일 사회적기업은 무엇이 다른가
고도성장 따른 사회분열 위기로 촉발
과정상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 3국은 매우 빠르게 세계의 주요 경제규모로 성장했다. 이러한 빠른 성장에는 부작용이 크기 마련이다. 세 나라에서 계층간·지역간 분배의 문제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를 해소하는 데는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역량 있는 시민사회의 참여가 매우 절실하다. 이에 따라 사회적기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한국·중국·일본은 공통적으로 한자 및 유교문화권에 속할 뿐 아니라, 지리적 인접성으로 오랜 교류와 경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 변화의 중심에 있고, 서구에 비해 시민사회의 발전이 더딘 공통점도 보인다. 다른 아시아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경제 수준에 도달해 있어 저개발 국가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2010 아시아미래포럼: 동아시아 기업의 진화’에서는 한중일 세 나라의 사회적기업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세 나라 사회적기업의 현재를 짚어볼 예정이며, 동아시아 맥락의 사회적기업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도 논의된다.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세 나라 정부와 대기업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고, 이 활동을 통해 어떻게 세계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결론으로 내놓는다. 정부의 인증을 의무화하기 때문에 비교적 분류가 쉬운 한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에는 사회적기업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법과 정책이 없어, 사회적기업의 규모와 활동 양태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신오균 금오공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1970년대 말 민간그룹 형태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시민사회가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강화된 정부의 지도 및 통제에 따라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사회단체등기조례법 시행 이후 시민단체의 설립과 운영에서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승인과 관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회적기업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면서 엔피오·엔지오나 협동조합, 사회복지기업, 사회서비스센터 등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한 많은 사회적기업들이 공상부문의 일반 기업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 구조가 고도화되어 감에 따라 정부가 모든 복지 및 분배, 사회통합의 과제를 수행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또 오랜 시간 외국 엔지오들과 협력하거나 유학을 다녀오면서 생겨난 중국 내 전문가집단들이 사회문제를 좀더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수단으로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기업 논의가 최근 빠르게 활성화하는 양상이다. 2007년 말 현재 중국에는 복지 관련 사회적기업이 3만개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복구활동이 계기
일본의 사회적기업은 엔피오 법인, 임의단체, 재단 및 사단주식회사 등의 다양한 형태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워커스컬렉티브, 시민운동형 주식회사 등의 시민사업이 1990년대의 커뮤니티를 통한 지역 활성화(커뮤니티비즈니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중시되고, 시민사회의 구실은 비교적 미미했다. 그러다가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복구활동에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을 계기로 정부가 엔피오의 설립 절차를 간소화하게 됐다. 이러한 조치는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지진이라는 예상치 못한 큰 재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량을 확인한 정부가 시민단체 활성화의 필요성을 느껴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시민사회가 이러한 변화에 서서히 반응한 것이다. 2009년 현재 17개 분야에서 약 3만8천개의 엔피오 법인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적기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 문제가 기폭제
한국의 경우 사회적기업은 정부가 주도해 도입했다는 특징이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에서 촉발된 대규모 실업과 저소득층의 빈곤 심화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근로사업과 자활사업, 사회적 일자리 사업 등을 도입한다. 상당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단기적인 일자리만 양산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도입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정책 과제가 사회적기업 도입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동아시아 사회적기업들의 성장에는 일정한 기폭제가 있었다. 한국은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상황이 촉매제였고, 일본은 고베 지진이라는 환경적 위기가, 중국은 고도성장에 따른 사회 분열의 위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또한 고도화된 경제 구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여전히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주도적 구실을 수행하고 있는 특성도 보인다. 한국과 중국의 수출 중심 경제 구조는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고, 사회적기업을 통해 정부의 부담을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대체해 나가면서 사회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국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이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해 정부의 기존 역할에 대해 재조명할 필요성이 커지는 배경이 된다. 한편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사회적기업들 사이의 상호학습을 통해 각국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저개발 국가를 지원하는 데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중일 사회적기업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사회적기업의 제도화를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기업 부문의 협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일반 시민의 참여에 기반한 아시아적 지역재생의 모범사례를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다양한 해외 엔지오와의 협력과 저개발 국가에 특화된 프로그램 개발의 좋은 실험장이 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사회적기업들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어쩌면 동아시아의 사회적기업은, 공동체 정신에 기반한 이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맞물려, 서구에서보다 훨씬 더 빠르고 중요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시아미래포럼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 한중일 사회적기업 전문가들로부터 그 현황과 과제를 듣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박상유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kronos@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