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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전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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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한겨레경제연구소(HERI)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세상 만들기 프로젝트
현대건설과 애플 중 어디가 더 나은 기업인가? 기업 재무성과를 측정하는 회계규칙과, 그 측정 결과를 공개하는 보고서가 없다면, 이 질문은 매우 부질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파트와 스마트폰을 비교할 수 없다. 이 둘은 가격도 쓰임새도 재료도 모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제품을 만드는 두 개의 기업이다. 그러나 보고서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개의 기업도 순이익, 매출, 비용, 자산, 부채 같은 몇 개의 숫자를 통해 간단하게 평가하고 우열을 가릴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성과 골고루 담아 기업의 재무실적을 보고하는 사업보고서는 이렇게, 기업 실적의 측정과 평가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표준화의 힘이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형태의 보고서가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는 매출과 비용 같은 재무적 성과 대신, 탄소배출량과 비정규직 비율과 기부액수 같은 사회적 성과가 실린다.이렇게 사회적 성과 보고가 떠오르는 배경에는 사회책임경영(CSR)이 있다. 2010년 11월, 사회책임경영 국제표준인 ‘ISO 26000’이 발표됐다. 사회책임경영 원칙을 제시하는 유엔글로벌콤팩트의 가입 기관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사회책임경영은 완전히 주류 경영원리로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물론 더 근본적인 배경에는 2009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경제가 하고 있는 반성이 놓여 있다. 단기적 재무성과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거대 금융사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책임경영을 펼쳐야 경제가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된 것이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이런 사회책임경영 활동 성과를 가장 잘 요약해 보여주는 자료다.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정보가 골고루 실리는 보고서다. 사회책임경영을 하려면 주주뿐 아니라 지역사회, 임직원, 소비자,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을 펼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들 이해관계자가 원하는 기업 정보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보고서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가 이처럼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활동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업 투명성과 신뢰도 제고 실증 런던비즈니스스쿨 이와니스 이와누 교수와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조지 세러페임 교수는 최근 작업논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의무화의 결과’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의 효과를 실증 분석했다. 이들이 1995년부터 2008년까지 58개국의 데이터를 계량 분석한 결과, 지속가능경영 보고가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활동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속가능경영 보고를 강화하면 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활동의 투명성이 증가하며, 소비자와 투자자가 장기적 관점에서 소비하고 투자하도록 촉진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지속가능 보고의 강화와 기업의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사이에도 명확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보고 의무화가 기업의 뇌물이나 부패를 감소시키고 경영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제3자에 의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검증 비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그 효과가 더욱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제3자 검증이란 회계사가 기업이 제출한 재무성과가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처럼, 신뢰할 만한 기관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HERI)는 2010년 한국에서 발간된 68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가운데 제3자 검증을 받은 45개를 들여다봤다. 어떤 부분이 잘 쓰였고 어떤 부분이 여전히 부족한지 살펴봤다. 그 결과를 이번 <헤리리뷰>(HERI Review)에 싣는다. 기업 보고서의 역사는 길게는 유럽의 중세 봉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봉건 경제는 영주가 소유하고 그 대리인이 관리하는 장원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대리인은 영주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장원의 수입·지출·재산을 기록하는 장부를 마련해야 했다. 수탁 책임 이행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작성하고 제출한 것이다. 그리고 기업 보고서는 몇 차례의 중요한 변화 계기를 맞는다. 그중 한 번은 기간별 회계의 도입이다. 유럽 상인들이 앞다퉈 아시아와 북미에 기업을 세우겠다며 투자자를 모으던 대항해시대, 기업의 보고서는 단 한 차례 수익배분을 위해서 쓰일 뿐이었다. 영속적 개념의 주식회사가 도입되고 나서야 지금처럼 일정한 기간을 두고 정기적 성과 보고가 이루어지게 된다. 외부기관 검증땐 효과 더 높아져 또 한 번은 외부검증제도의 도입이다. 1710년 영국 동인도회사 중 하나인 남해회사가 투기사업에 실패한 뒤 회계기록을 검사하는 회계감사가 처음으로 도입되며 현재의 외부감사제도의 시초가 됐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검증제도의 시초라고 볼 수도 있다. 국제표준의 도입도 새로운 변화다. 국제무역과 국경을 넘나드는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200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은 자국만의 기준 대신 국제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다음 변화는 바로 사회적 성과 보고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는 이미 기간별 보고 체계, 외부검증제도, 국제표준 마련 작업을 마쳤다.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는 이미 주식시장 상장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에 사회적 성과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연기금들은 사회책임투자를 하기 위해 이 보고서를 참고한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서서히 사업보고서만큼 중요한 위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건설과 애플 중 어디가 더 나은 기업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사업보고서뿐 아니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도 함께 펼쳐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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