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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에 위치한 하인리히 뵐 재단(왼쪽)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건물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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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치재단’ 현장 탐방
독일 정당 연구소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재단’(Politischen Stiftung / political foundation)이며, 한국처럼 정당의 산하기관이 아니라 ‘정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이다. 현재 독일에는 연방의회에 ‘인접 정당’을 두고 있는 정치재단이 6곳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스 자이델 재단, 하인리히 뵐 재단,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이 그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민주시민교육과 정치적 다원주의에 대한 지원을 주된 업무로 삼고 있으며, 활동 범위는 독일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까지 걸쳐 있다. 1925년 설립돼 가장 역사가 오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경우 세계 90여개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고, 실질적 활동을 벌이고 있는 나라는 105개에 이른다.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역시 70여개국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정치재단은 정당에 대해, 그리고 정부에 대해 ‘독립적’인 관계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들은 ‘밀접한 관계의 정당’으로부터 조직적·재정적으로 독립돼 있어야 하며, 정당을 위한 직접적인 선거운동 지원이나 정치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되게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6곳의 정치재단은 1년에 총 4억유로가량의 예산을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정당 국고보조금의 30%를 할애받는 한국과 달리, 정치재단은 연방 내무부, 개발협력부, 외무부 등으로부터 직접 예산을 지원받으며, 연방 감사원의 정기감사를 받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 ‘독립성’ 지켜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베를린본부에서 만난 비외른 하커 박사는 “우리는 사민당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인리히 뵐 재단 아시아국 책임자 토르스텐 폴베르크 역시 “녹색당의 누구도 우리에게 어떤 걸 하라 말라 못한다”며 정당과 재단 사이의 독립성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정치재단과 정당의 관계를 소원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미하엘 보르하르트 박사는 재단의 독립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완전히 독립적이라면 정치재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우리 이사회엔 기독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참여한다. 우리는 정당이 뭘 하는 곳인지 잘 알고, 정당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은 다른 재단들에 비해 훨씬 더 ‘정치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싱크탱크’ 지향 강해져 그렇다면 독일 정치재단은 ‘싱크탱크’라 할 수 있는가? 베르너 캄페터 에버트 재단 전 한국사무소장은 “에버트 재단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싱크탱크는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같은 재단 하커 박사는 자신을 비롯한 젊은 세대의 연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0대 초반의 하커 박사와 동년배인 크리스토프 폴만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장 역시 “정치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길 바란다”며 에버트 재단의 변화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민주시민교육과 정치적 다원주의 증진이라는 전통적 역할로부터 더 적극적인 정책 영향력 행사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에버트 재단과 비교하여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은 훨씬 뚜렷하고 일관된 싱크탱크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아데나워 재단은 2003년에 이미 정치컨설팅국을 만들었고, 현재 20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국 책임자인 보르하르트 박사는 “베를린으로 수도가 이전된 뒤 정치컨설팅과 로비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 전략적인 정책조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버트 재단의 연구자들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나 ‘해외사무소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아데나워 재단 연구자들은 특정 분야 ‘전문가’로서의 성장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인리히 뵐 재단 역시 스스로를 ‘녹색 싱크탱크’라고 규정하고 연구와 조사, 정책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연합 출범따라 새 역할 모색 독일 정치재단들의 이러한 ‘싱크탱크화’ 현상은 국내외적 상황변화와 맞물려 있다.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다변화하고 복잡해진 정책수요에 대한 정당의 대응능력 제고가 필요해졌다. 브뤼셀의 유럽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책결정이 독일 국내 정치와 정책에 직접 영향을 끼치면서 이를 예측하고 개입하는 역량과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독일 국내적으로는 베텔스만 재단과 같은 민간 싱크탱크들과의 경쟁이 강화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커 박사는 “베텔스만 재단의 의제설정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우리에게 의미있는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변화에 조응해 정치재단의 젊은 세대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싱크탱크 연구원’(think tanker)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를린/글·사진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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