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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06 10:50 수정 : 2011.09.06 10:50

필리핀 타워빌에 들어선 마을형기업 ‘캠프봉제센터’에서 지역 주민들이 봉제수업을 받고 있다. 봉제센터는 전문 직업기술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같은 건물에 정부 인가 유치원을 운영해 자녀보육을 지원할 예정이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필리핀 타워빌의 마을형기업 ‘봉제센터’

지난 7월15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북동쪽으로 40㎞ 떨어진 타워빌(San Jose Del Monte City in Bulacan)에선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한신대와 기독교빈민지원센터 ‘캠프아시아’ 주도로 빈민촌 타워빌에 경제 및 보육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봉제센터’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 마을형기업은 가정해체로 경제 및 보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일당보다 비싼 교통비와 집집마다 서너명이 넘는 아이들 보육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해당 지자체로부터 건물 및 부지를 제공받고, 함께일하는재단의 사업 공모를 통해 봉제기술 전문가를 모셔 직업 교육 및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또한 봉제교육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고자 자녀 보육도 지원할 예정이다. 같은 건물에 정부 인가 유치원을 운영할 예정인데, 교육 대상 여성들이 우선권을 갖고 있다. 정부 인가 유치원은 단순 교육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건강을 고려해 영양식도 공급할 계획이다.

캠프아시아의 이철용 목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타워빌의 취약계층 여성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일자리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빠르게 걷고 성장하라고 독촉하기보다는 지역과 함께 자발적으로 전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개소식 인사말을 전했다. 2000년 초부터 시작된 필리핀 정부의 도시빈민 강제 이주 정책으로 고달팠던 이곳 주민들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웃음꽃이 폈다.

기반시설 없는 도시빈민 이주지역

타워빌에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도시빈민 톤도 지역 사람들과 마닐라의 통근열차를 만들기 위해 철로변에 살고 있던 도시빈민 5만여명이 이주해 있다. 야산을 개간해 바둑판 형태로 조성한 타워빌 주거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박스 형태의 벽돌로 지어져 있지만, 다른 사회적 기반시설은 전무하다. 교육시설이라곤 초등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전부이며 소규모의 데이케어센터(유치원) 몇 곳만 운영될 뿐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생존을 위한 일자리의 부족과 가정해체였다. 가정 경제를 지탱하는 남성들 대부분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다시 마닐라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임금과 비싼 교통비 때문에 주중에는 거의 마닐라 인근에서 노숙을 한다. 이로 인해 가정해체와 여성들이 육아와 가계까지 떠안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모린 파가두안 필리핀국립대 사회지역개발학과 교수는 “필리핀 가정해체의 원인은 법적 이혼을 어렵게 만든 종교나 태풍·지진 등의 환경적 영향 등 다양해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교통비 절감에 노동시간 유연성까지

가정해체로 인한 취약계층 여성 문제 해결책으로 마을형기업을 추진한 이상헌 한신대 교수는 오히려 가정해체라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했다고 한다. “필리핀을 비롯해 환경이 비슷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가정해체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기란 불가합니다. 워낙 정치·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이 많거든요. 오히려 가정해체가 발생한 상황에서 여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마을형기업도 그 안에서 고안해 낸 아이디어입니다.”

마을형기업은 육아나 가사로 집을 떠날 수 없는 여성의 유휴 노동력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친여성적 기업이다. 또한 서민이 거주하는 장소에 일자리를 만듦으로써 교통비 절감과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 즉 여성들이 경제적 책임과 육아 책임을 동시에 갖는 지역에 적합한 방식이다.

마을형기업을 세우겠다고 결심한 이후, 캠프아시아와 한신대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마을형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발적인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마을형기업의 성패는 자발적인 주민 참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 첫 삽은 외부 기관이 주도해 뜨더라도 중장기적으론 지역 주민이 주도적인 구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0년 6월부터 두 달간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두 가지 결론이 나왔다. 하나는 직업교육 강화다. 주민들은 캠프아시아가 단기적으로 직업 시설만 제공하고 떠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그래서 전문 직업기술 교육을 통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했다. 다른 하나는 보육이었다. 일자리 못지않게 보육 문제도 중요한 만큼 주민들은 노동 유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꼼꼼한 준비와 관심 속에서 마을형기업이 선보이게 된 것이다.

소비시장 취약해 판로 개척 만만찮아

캠프아시아는 봉제센터에 이어 베이커리사업과 공정무역 등 구체적인 향후 사업계획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타워빌 마을형기업에는 판로 개척과 수익금 재투자를 통한 신규고용 창출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본래 마을형기업은 제품이든 서비스든 생산과 소비가 한곳에서 일어났을 때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타워빌 지역은 여건상 그렇지 못하다. 소비 시장이 매우 취약해 별도의 판로 개척이 필요한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또한 판로 개척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경제적 누수를 피할 수 없다. 마을형기업의 지속가능성도 여전히 해결해야 될 문제 중 하나다.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지만 하루하루 생활이 힘든 그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동기가 그리 많지 않다.

타워빌 마을형기업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여러 한국 비영리기관의 지원으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곳에서 시작된 ‘희망의 날갯짓’이 거센 바람으로 변해 필리핀 빈민이주 지역 전역에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산호세델몬테(필리핀)/글·사진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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