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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31 17:26 수정 : 2011.10.31 18:24

일본 싱크탱크의 새로운 도전

2011년 3월11일. 거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규모의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곧바로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감히 근접조차 할 수 없어 방송카메라에 잡힌 모습으로 겨우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그 뒤 이어진 죽음과 공포, 피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는 설명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재건’과 ‘부흥’이 시작되어야 할 것인지, 갑론을박은 계속되지만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2009년 9월.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일본 국민의 변화 열망이 만들어낸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자민당 1당 지배의 ‘55년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거품 붕괴와 장기 침체의 ‘잃어버린 20년’, 고이즈미 총리가 주도했던 ‘신자유주의 개혁’, 더욱 심각해진 ‘격차사회’, 아베-후쿠다-아소로 이어지는 ‘세습총리’들의 무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불신 커져

그러나 새로운 미래의 도래에 대한 환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전대미문’의 대재앙이 일본 열도를 덮쳤다. 이미 1000조엔 가까운 국가부채와 오랜 불황으로 힘겨워하던 일본이었지만, 천문학적 수준의 재건비용을 더 쏟아부어야만 하게 되었다.

앤드루 드윗 일본 릿쿄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지진과 쓰나미로만 벌써 2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약 20조엔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자연재해라는 것이다.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절실한 상황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전처럼 ‘관료의 몫’만이 아님을 일본 국민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일본 민주당은 집권 전부터 ‘관료 주도’가 아닌 ‘정치 주도’의 정책결정 구조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은 서투르고 조급했다. 예산심의 공개, 불요불급한 토건사업 중단, 국가전략국 중심의 전략적 자원배분, ‘낙하산 금지’ 등의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더욱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을 보며 일본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더욱 커졌다.

스즈키 다카히로 조사이국제대학 겸임교수는 “간 나오토 총리가 세세한 일까지 지시를 내렸다. 총리의 분노를 살까봐 관료들은 눈치를 보며 일했다. 하지만 총리나 민주당이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라고 사고 직후 상황을 전했다.


정당계 싱크탱크 실험 성과 못내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선 의지와 능력, 사람과 조직이 모두 필요하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재정정책 담당 대신 등을 맡아 총리 주도의 ‘관저(官邸) 정치’를 이끌었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학 교수는 ‘정당계 싱크탱크’의 역할을 강조했다. “관료 주도의 정책프로세스를 변화시키고, 이를 담당할 ‘정책 신인류’를 제공하는 것이 정당계 싱크탱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민당 계열의 싱크탱크 2005·일본이 2006년 3월에, ‘플라톤’이라는 별칭의 민주당 계열 공공정책 플랫폼이 2005년 11월에 설립되어 정력적 활동을 선언했다. 사카타 겐이치 ‘플라톤’ 연구원은 “상근 연구원 10명, 비상근 연구원 15명 이상의 규모를 갖추려 했다. 관료가 주로 정책을 만들고, 학자는 그것에 더이상 손대지 않으려 하는 문화를 혁파하려 했다”고 창립 당시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나 싱크탱크 2005·일본은 올해 2월28일자로 해산했고, 플라톤 역시 민주당 집권 이후 주요 멤버들이 정부에 참여하면서 현재는 스태프도 없는 휴면상태다. 정당계 싱크탱크의 실험은 실패했다.

도쿄재단과 일본재단이 함께 있는 건물 모습.

‘독립계’ ‘기업계’ 등장 새바람

그러나 정책 생산의 새로운 주체를 만들고, 정책 결정 구조를 바꾸려는 일본 사회의 노력이 중단된 건 아니다. ‘정치 주도’를 넘어서 ‘시민 주도’의 정책 결정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정책풍(風)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독립계’ 싱크탱크들의 수와 활동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1997년 5월, 사사카와 평화재단 등으로부터 출연받은 50억엔의 기금으로 시작된 도쿄재단의 정책활동은 주목의 대상이다. 정책생산 능력과 영향력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지만,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정책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적이다. ‘고이즈미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제공공정책연구센터, 보수계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기본문제연구소, 간사이 지역 지식인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등도 지난 몇 년 사이에 설립됐다.

돈·조직·의지 있으나 사람이 문제

외교·국방, 에너지, 거시경제를 다루는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지속가능한 경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연구하는 리코경제사회연구소 등 새로운 ‘기업계’ 싱크탱크의 등장 역시 흥미롭다. 일본을 대표했던 노무라총합연구소, 미쓰비시총합연구소 등이 수익사업 위주로 조직을 재편한 상황에서, 이들은 오히려 정책 연구를 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스즈키 미치오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사무총장은 “연구소는 100% 캐논이 출연한 재단법인이지만, 캐논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다.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정책 개발과 제안이 설립 목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리코경제사회연구소의 우메다 도모히로 연구원은 “리코의 방대한 기업네트워크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할 계획이다”라고, 향후 영향력 확대 방향을 전망했다. 캐논연구소는 거시경제, 외교와 안전보장, 자원, 에너지, 환경 등의 분야에서 수준 높은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고, 프랑스사회과학고등연구원 등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도 활발하다. 반면 리코연구소는 홈페이지 개설도 미룬 채 내부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고, 리코 본사와의 소통과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도쿄재단의 연구 및 사무공간.

기업계와 일부 독립계 싱크탱크들이 일본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정책 제안’이라는 분명한 목표에 기반해 힘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돈과 조직, 의지가 확인된다. 문제는 이제 ‘사람’이다. 기성 관료와 정치인을 넘어설 역량과 비전을 갖춘 인물이 절실하다. 일본 사회가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투자와 실험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정책인재’를 키우는 일본의 정책학교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이 일본 총리로 선출되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자 국내 언론들은 1979년에 설립된 마쓰시타정경숙을 다시 주목했다. 노다 총리 외에 마에하라 세이지 민주당 정조회장,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 등 48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이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쳐 전액 장학생으로 뽑히면, ‘국가지도자’를 목표로 정책능력과 인격 형성을 위한 교육을 받게 된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오마에 겐이치가 교장으로 있는 일신숙(一新塾)도 눈에 띈다. ‘집단지성’을 강조하는 오마에답게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학원’을 표방한다. 마쓰시타정경숙과 달리 학비를 내고 일정 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1994년 설립 이후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2011년 9월 현재 국회의원 6명, 지방의원 90명, 단체장 7명을 냈다. 최근에는 사회적기업가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올 11월 개교 예정인 일본정책학교도 주목할 만하다. 내년 7월까지 주 1회, 총 35회의 강의가 진행되며, 1기 테마는 “포스트 3·11 사회로의 이행”이다. 80명의 본과 학생(학비 20만엔)과 100명의 온라인과 학생(학비 12만엔)을 모집한다. 일신숙 창업자이기도 한 곤노 사쿠이치가 설립을 주도하고 있고, 유력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들이 강의한다. 일본정책학교 이사이기도 한 스즈키 조사이국제대학 겸임교수는 “차세대 정책인재 육성을 통해 일본을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구축하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관료개혁의 큰 포부를 품고 경제산업성을 퇴직한 젊은 엘리트 아사히나 이치로가 설립한 아오야마사중(靑山社中)의 리더학원 프로그램도 인재 육성을 향한 일본 사회의 도전을 보여 준다.

도쿄/글·사진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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