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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직원들이 오창센터에서 꾸러미 회원들에게 보낼 농산물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흙살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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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 케이스파일
흙살림 ‘꾸러미’사업10월22일 충북 괴산군 흙살림 토종연구농장에선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유기농 사회적기업인 흙살림 임직원과 회원 50여명이 모여 ‘2011 토종벼베기’ 행사를 열었다. 사실 토종벼베기 행사는 2003년부터 모내기 행사와 함께 매년 진행해온 터라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 이 행사를 치르는 흙살림 임직원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동안 친환경 농자재 사업 및 인증 사업을 하면서 흙살림은 생산자 중심 농업을 해 왔다. 그런데 과일, 채소 등 농산물을 포장배달하는 ‘꾸러미’라는 유통업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비자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흙살림이 2010년 4월 꾸러미채소를 처음 팔기로 했을 때, 소비자는 그리 큰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싼값에 좋은 물건을 내놓으면 자연스럽게 팔릴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컸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10월 무렵부터, 신문과 방송에 홍보가 되면서 회원 가구가 2천곳으로 빠른 속도로 늘었다. 초기 20여곳에 지나지 않던 생산 농가 역시 100여곳으로 늘었고, 임직원이 철야로 매달려도 배달 물량을 처리하기 빠듯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홍보 효과가 한풀 꺾이자 회원 가구 수가 급감하더니, 올해 봄 이후엔 1천가구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회원 가구 수 정체의 원인은 한 가지였다. 소비자를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흙살림은 친환경 농자재 사업과 인증 사업 등 생산자 입장에서 일하는 데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공부하고, 그 결과를 행동에 옮기는 일은 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려도 있었다. 자칫 ‘농가 소득 증대’라는 조직의 근본적인 미션이 흔들릴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마냥 고민만 할 수는 없었다. 꾸러미사업이 언론을 타기 시작하면서 사업의 취지나 방식에 관심을 보인 지자체와 관련 단체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흙살림은 본래 사명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소비자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네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첫째, 유통채널에 유연성을 더했다. 지난 6월 ‘쌈지농부’와 계약을 맺고, 흙살림 택배가 아닌 꾸러미채소를 일반 매장에서 팔 수 있도록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직거래만을 고수했던 흙살림으로선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둘째, 제품 다각화를 통해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자 노력했다. 지난 9월 소비자 기호를 고려한 신제품 과일꾸러미를 출시했다. 과일은 꾸러미채소 회원들한테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농산물이다. 앞으로 유기농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영유아 가구를 대상으로 ‘아이꾸러미’도 상품화할 계획이다.
셋째, 접근성도 한층 높였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직장인의 경우 택배로 신선식품을 받아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과거 주 1회 오창센터에서 이루어지던 장터행사를 도심 한복판에서 열기로 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매주 1회 엔에이치엔(NHN) 본사에서 열리는 장터에선 한 시간 동안 300만원어치의 꾸러미채소가 팔려나간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와의 소통을 위한 정기적인 설문조사를 하기로 하고, 지난달 첫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향후 신제품 개발과 유통방안 개선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꾸러미사업은 흙살림에 과제와 교훈을 함께 던져줬다. 소비자와의 소통이라는 어려운 과제와 농업이야말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하는 상생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오창/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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