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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0 11:41 수정 : 2011.12.20 11:41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시민들이 앞바다에 풍력발전기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 시각 /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렇게 본다

한겨레신문사가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주식회사보다는 협동조합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기존의 여러 사회적기업들이 협동조합으로 법인격을 전환하고, 말썽 많은 상조업계에서도 건강한 협동조합이 태어날 것이다. 남대문시장을 상인들의 협동조합으로 재개발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올 것이고, 주택과 발전 등의 다양한 협동조합의 출범이 기대된다. 서울시민 햇빛발전협동조합을 설립하자는 제안은 이미 서울시에 접수돼 있다.

유엔이 정한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앞두고, 협동조합기본법(기본법)의 제정이 임박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농협법, 수협법, 생협법 등에 따른 8개 유형의 협동조합 설립만 가능했다. 그나마 생협 말고는 관치 성격이 강한 협동조합들이었다. 이제 기본법이 제정되면 3~5명 정도가 모여 다양한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협동조합의 활성화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업체가 경제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추상적으로 다가오던 사회적 경제라는 영역이 구체적인 현실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 신호탄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주식회사 형태를 띤 지금의 다수 사회적기업들은 영리 추구와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선을 빚어왔다. 하지만 출자한 조합원들의 편익 극대화가 목적인 협동조합에서는 그런 갈등이 많이 해소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협은 소비자들에게 값싸게 좋은 물건을 공급하는 (바꿔 말하면 이익을 적게 남기는) 사회적 가치에 충실하면서도, 시장에서 1 대 1로 경쟁해 사업 확장에 성공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기본법 제정 논의는 몇가지 뚜렷한 한계를 안고 있다. 기존의 특별법으로 설립할 수 있는 농협 같은 협동조합은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 기존의 농협을 신뢰하지 못하는 농민들이 따로 제2의 농협을 설립하는 것이 원천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신용사업과 공제사업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본법 제정의 의의와 한계를 협동조합 전문가들에게 들어보았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는 식당노동자들이 급식회사를 세우고 교사들이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협동조합의 작품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 우리 주변에서도 이렇게 참신한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8천여 업체가 노동자협동조합으로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 다양한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진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는 농수산업·소비·금융 분야의 일부 대규모 협동조합 설립만 허용됐다. 사회서비스·복지·문화·기술 분야 등 다양한 성장산업에서는 아예 협동조합 설립이 금지돼 있었다.

기본법이 제정되면 선진국처럼 사회서비스나 지역기반사업 등에서 소자본 협동조합 기업들이 생겨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돌봄이나 육아, 또는 여러 특수직 노동자들의 8천여개 사업체가 노동자 협동조합의 법인격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서민들이 스스로 사업체를 만들어 생산적 복지에 나선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은 양극화 해소와 서민경제 활성화에도 일조하고, 사회적협동조합은 복지정책을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협동조합은 고용친화적이어서, 좋은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사회적기업의 협동조합 전환 활발할듯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반조성 본부장 기존 사회적기업 중에 협동조합 법인격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여럿 생겨날 것이다. 신생 사회적기업들은 처음부터 협동조합 법인격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기업의 가치와 목적에 부합하는 다양한 사회경제조직이 생겨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뒤늦게 마련되는 셈이다.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기업들 간에 또는 유사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들 간에 사업연합조직을 결성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서로 업무제휴를 하거나 공동의 시장 또는 자본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해져, 사회적기업의 자립 기반이 훨씬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기존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기본법 체계로 들어온다면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 생협 조직과의 연합으로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기업들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게 되는 셈이다.

농협 입김 휘둘려 제2농협 탄생 막아

최양부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대표 지금의 기본법 제정안은 제2의 농협의 탄생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농촌에서 제일 중요한 게 농산물판매 사업인데, 이런 사업을 하는 농협의 출범을 막아놓았다. 기존 농협의 핵심 기득권을 그대로 두고 무엇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자투리땅에 사회적협동조합 성격의 농협이나 만들라니, 협동조합의 정신과 기본을 근본적으로 망각한 처사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농협의 입김에 지나치게 휘둘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크고 작은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기본법 제정의 근본 취지이다. 제2노총, 제3노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또 유럽에서 주택과 발전 등에서 새로운 협동조합이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도 참신한 농협을 누구나 설립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렇게 태어난 작은 농협들의 연합조직 설립도 보장돼야 한다.

신용·공제사업 한도 지나친 제한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 왜 기본법인가? 협동조합 설립의 자유, 정부 간섭의 축소, 모든 사업영역의 개방, 이 세가지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자율과 독립이라는 협동조합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금의 농협법은 관제이다. 한국의 사회적기업 또한 정부 예산지원으로 운영되는 관제 사회적기업이 많다.

기본법이 제정되면, 한겨레두레공제조합도 협동조합으로 당당하게 상조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임의단체여서 조합원 모집과 회비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기본법안은 신용사업과 공제사업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소액출자와 상호부조를 허용하면서, 출자금의 2분의 1 이내라는 조건을 달아놓았다. 이러면 사실상 사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산 총액 한도 안에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본법안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자율을 5% 이내로 제한하면 악용의 소지도 막을 수 있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 협동조합기본법 어디까지 왔나

“시장만능으론 안된다” 공감 속 3가지 법안 계류중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안 주요 내용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안은 3건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성식 의원이 각각 의원입법안을 냈고, 29개 시민단체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통해 입법청원을 했다. 두 야당의 대표와 여당의 정책위 부의장, 그리고 정부까지 동시 출격했다는 점에서 기본법 제정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손 대표에게는 첫 입법안이고, 김성식 의원안은 정부의 뜻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민단체 깃발 들자 여야도 입법 나서

애초 기본법 제정을 주도한 것은 시민단체들이었다. 올해 2월에 기본법 제정 공감을 위한 간담회를 처음 열었고, 9월까지 8차례 준비모임을 가졌다. 지난 10월11일 29개 단체의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연대회의가 출범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러자 민주당의 손 대표 쪽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청와대가 나서서 정부 태스크포스 가동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유엔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가 내년으로 임박했다는 시점도 기본법 제정에 힘을 실어주었다. 세계협동조합연맹이 기본법 제정을 권고했고, 시민사회와 여야를 막론하고 ‘협동조합도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로는 더이상 안 된다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본법 제정의 의의를 설명했다. 손 대표는 생산을 통해 복지를 구현할 수 있는 유력한 경제대안으로 협동조합 카드를 찾게 됐고, 정부는 정부대로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공생발전의 콘텐츠로 협동조합을 떠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농·수협 등 반대에 대출·상호부조 제한

기본법 제정이 기정사실화하자, 농·수협과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반대 로비에 나서는 모습이 목격됐다. 특히 농협은 제2농협의 출범과 신용사업의 허용을 경계했으며, 농협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농민신문>에서는 ‘협동조합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기본법 제정을 추진한 시민단체들 사이에는 부족하더라도 일단 기본법을 제정하고 보자는 의견이 주류를 형성했다. 하지만 최근 소액대출과 신용사업을 좀더 폭넓게 허용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농업계 인사들은 제2농협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본법 제정안은 크게 특수법인인 협동조합과 비영리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구분해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일반 협동조합은 시·도 지사 신고만으로 설립이 가능하고 잉여금의 10% 이상을 적립해야 한다.

비영리인 사회적협동조합은 주무부처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해산 때에는 자산이 국고에 귀속된다. 잉여금도 30% 이상을 적립해야 한다.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 대상 소액대출과 상호부조를 출자금의 2분의 1 이내로 제한해 놓은 것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 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 모두 부분적으로 공정거래법 적용 예외를 인정받는다. 김현대 선임기자


스테파노 차마니의 협동조합기업론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 찾는 ‘야누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
“협동조합은 두 얼굴의 야누스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는 지난해에 펴낸 <협동조합 기업>이란 책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사실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는 경제적 차원의 기업이면서,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사회적 차원의 단체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경제를 같은 것으로 보는 개념적 혼선에서 비롯됐다고 차마니는 갈파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시장이 유일한 시장 형태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차마니는 13~16세기 이탈리아에서 기업의 자유와 노동의 분업, 합리적 규칙을 요체로 하는 시장경제가 이미 태동했다고 말한다.

차마니는 경쟁이 반드시 이윤의 논리를 따르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시장 행위자의 목적이 이기적일 수도 있고 호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동선(common good)과 전체선(total good)으로 구분하면서, 시민경제의 바탕이 되는 공동선의 논리가 17세기로 들어서면서 이윤동기에 기반한 전체선의 논리, 곧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로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차마니는 전체선과 공동선을 덧셈과 곱셈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덧셈의 전체선에서는 일부를 포기하고도 전체의 후생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지만, 곱셈의 공동선에서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개인이라도 기본권을 희생당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0이 되면, 전체의 곱셈이 0이 되기 때문이다.

차마니는 자본주의 경제가 시장경제의 일부에 불과하고, 시민경제 또한 시장 안에서 작동하면서 오히려 시장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고 강조한다. 시장에서의 협력적 경쟁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은 시민경제의 핵심적인 축이다. 차마니의 <협동조합 기업>은 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서 내년 초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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