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리뷰
금융·공제사업 빼곤 자유롭게 조합 설립
출자금 제한 없어…사회적 조합도 가능
우리에게도 협동조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협, 수협, 엽연초조합, 산림조합, 중소기협, 신협, 새마을금고, 소비자생협 등 8개 형태의 협동조합이 그때그때 제정된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됐다. 그중 농협은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규모가 크다. 수협과 산림조합도 덩치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왜 우리나라는 협동조합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써야 했을까? 올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 실제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정부 인가 없이 신고만 하면 설립 끝
“대한민국 헌법 119조 2항에서 천명한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 실천하는 현장이 협동조합이다.”(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 대표)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헌법적 가치인 협동조합의 자유로운 설립이 막혀 있는 나라였다. 8개 특별법으로 정하지 않은 어떤 협동조합의 설립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생협과 일부 신협을 제외하고 기존의 협동조합 대부분은 정부의 지원 또는 정부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 조합원의 자율과 참여로 이뤄지는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기본법이 발효되면 거의 모든 사업 영역에서 자유로이 협동조합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기존 협동조합들이 1차 산업과 일부 금융·소비 분야에 국한됐다면, 앞으로는 일반 제조업과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각양각색의 협동조합이 생겨날 것이다. 금융과 공제사업 진출을 제한한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자유 얻는 대신 정부지원 못받을 수도
기존의 협동조합 설립요건은 무척 까다롭다. 예를 들어 사과재배 농민들이 농협을 만들려면 200명 이상이 3억원 이상의 출자금을 납입해야 한다. 생협 설립요건은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원 이상이다.
앞으로는 출자금의 제한 없이 조합원 5명만 모이면 다양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뜻 맞는 친구들끼리 협동조합으로 벤처사업을 벌여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기존의 협동조합은 계속 8개 개별법의 적용을 받는다. 대신 세제 및 정책자금 지원을 계속 누린다. 기본법으로 새로 설립되는 협동조합이 가난한 자유를 얻는다면, 기존의 협동조합들은 정부의 규제와 지원을 끌어안는 셈이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 길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농협이란 간판만 달지 않으면 된다. 사과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새 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농협 조합원이 받는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차별 논란의 소지가 크다. 이와 관련해 기본법 13조 2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개별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때는 기본법의 목적과 원칙에 맞아야 한다.” 기존 협동조합들의 독점적 폐쇄성이 장차 깨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회적기업들도 조합으로 전환할 듯 사회적 협동조합은 1991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법제화됐다. 조합원의 경제적 편익을 추구하는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삼는다. 구체적으로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공헌 사업 등을 벌인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유럽형 사회적기업의 원형으로도 인정받는다. 우리 기본법에서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해 조합원을 상대로 한 소액대출과 상호부조를 허용한다. 대신 정부의 인가를 받도록 설립요건을 강화했다. 주식회사 형태를 띤 사회적기업의 상당수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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