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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밀 영농조합은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와 국수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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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HERI BIZ
[케이스파일] 대전 백세밀영농조합법인
지난해 세밑, 계룡산 자락 깊숙이 자리잡은 세동 마을에선 동네 주민 20~30여명이 모여 ‘누룩황토방’ 개소를 축하하는 행사를 열었다. 동네 폐가를 활용해 직접 술을 빚어볼 수 있는 체험방을 만든 것인데, 백세밀영농조합법인 김종우 대표는 이를 ‘우리밀 체험 프로그램’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백세밀영농조합법인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세동의 ‘마을기업’이다.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와 국수, 그리고 쌀을 판매한다. 세동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2006년 객지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본래 김 대표는 잘나가던 대기업 직원이었다. 귀향을 결심하게 된 것은 2001년 15년 동안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진 게 계기가 됐다. 퇴직 후에도 중소기업에서 공장장 생활을 몇 년 더 했지만, 마음은 늘 고향으로 향해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뒤 김 대표는 직장 경험을 되살려 세동 주민을 위한 안정적인 소득원을 만들고자 마음먹었다. 김 대표가 보기에 산골의 빈촌인 세동은 농사지을 한뼘의 땅을 늘리는 것보다,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줄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8명의 주민이 100만원씩 자본금을 모아 백세밀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2008년 10월 첫 삽을 뜨고 이듬해 6월 첫 우리밀을 수확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6000여평에서 수확한 7~8t의 우리밀이 3일 만에 모두 팔려나간 것이다. 지난해에도 20t 이상의 밀을 수확해 1억5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릴 정도로 사업은 순탄하게 확장하고 있다.
지역 유관기관 네트워크 통해 판로 확대 그렇다면 김 대표가 스스로 진단한 백세밀영농조합의 성공비결은 뭘까? 첫째, 지역 맞춤형 사업 아이템 발굴이다. 시골은 노령인구 비율이 높아 작업 효율성이 아무래도 떨어진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이 과거에 해봐서 잘 알거나 하고 싶은 일, 즉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대표가 우리밀을 선택한 것도 60~70년대 세동에서 밀을 많이 재배해 지역주민들이 밀 농사를 낯설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밀이 비교적 추위에 강해 산촌 지역인 세동과 잘 맞을 것이란 판단도 도움이 됐다. 둘째, 판로 확대를 위한 네트워크 강화다. 마을기업은 동원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이 많지 않아서 생산에 모든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판로를 개척하는 데 쓸 힘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지역 유관기관과 관계를 강화하는 데 활로가 있다고 봤다. 현재 백세밀영농조합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청, 새마을금고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 판로를 개척해 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 간 신뢰 형성이다. 마을기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갈등과 불화를 원만히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많지 않은 주민 사이에 마음의 틈새가 벌어지면 그 어떤 사업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따라서 명확한 목표와 전망을 제시하며 마을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물론 백세밀영농조합 역시 고민이 없진 않다. 외형적인 성장은 했지만 아직 이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가공비가 밀가격의 30~40%나 차지하는 등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경작지 확대·제품 다양화로 새 도약 모색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 대표는 두 가지를 마음먹고 있다. 첫째, 규모의 경제 강화다. 현재 10㏊인 경작지를 30㏊까지 늘려 중장기적으론 밀 생산량을 100t까지 늘리려 한다. 둘째, 사업 다각화를 통해 수익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는 우리밀 국수 한 품목만 출시하고 있으나 종류를 다양화하고, 우리밀 체험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또한 우리밀 가공 역시 직접 맡겠다는 중장기 계획도 갖고 있다. “지역주민들에게 세동에서 나는 우리밀로도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싶습니다.” 김 대표가 바라는 백세밀영농조합의 미래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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