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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6 11:34 수정 : 2012.03.06 11:34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로 분리 독립됐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효율성을 높여, 농민 조합원들의 삶을 낫게 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뜻이다. 엠비(MB) 정부는 농정의 최대 치적이라고 홍보하고, 전문가들은 진정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한다. 사진은 서울 충정로 농협중앙회 본점.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헤리리뷰 | ‘신·경 분리’ 농협에 던지는 전문가 쓴소리

금융·유통 분리 독립
50년만에 변화 첫걸음
환골탈태로 이어질까

농협중앙회가 3월2일 50년 만의 큰 변화를 시작했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농산물 유통판매사업)을 중앙회에서 분리해 별도의 지주회사로 출범시킨 것이다. 정부는 ‘농협 개혁’을 엠비(MB) 농정의 최대 치적으로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발짝 진전이지만 진정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농민 조합원과 협동조합 정체성은 뒷전이고, 애초개혁의 명분으로 삼았던 경제사업 활성화가 구현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쓴소리를 모았다.

“관변 체질 벗어던지고 농촌 현장으로 뛰어라”

최양부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3월2일 단행한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개편은 신용사업에 초점이 맞춰진 절반의 신·경 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중앙회로부터 분리 독립)에 머물렀다. 농산물 판매를 비롯한 경제사업을 끌고나갈 경제지주를 설립했지만 아직은 빈집이기 때문이다. 중앙회의 유통판매사업은 2015년까지, 경제사업은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경제지주로 분리 이관하기로 되어 있어, 앞으로 3년간은 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경제사업도 50년 만에 신용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본금(6조원 규모)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신용사업에서 자본을 차입해 경제사업을 하고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부담은 지지 않아도 된다. 유통판매 분야의 전문 인력을 직접 확보하는 등 독자적인 인사권도 행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경제사업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중앙회, 사업지도 명분 아래 안주해와

그럼에도 농협의 신·경 분리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약속한 대로 중앙회 경제사업을 3년 뒤에 모두 경제지주로 이관한다 치더라도,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팔아주는 경제사업이 활성화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50년 동안 농협의 임직원들은 산지와 소비지 현장에서 찬바람 맞고 몸으로 뛰는 경제사업에 나서지 않았다. 경제사업 지도라는 책임질 일 없고 편안한 역할에 안주해 있었다. 돈 되는 사업이다 싶으면, ‘주인’인 회원 조합과의 경합을 마다하지 않고 중앙회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는 행태도 보였다. 직원들은 고임금을 받으면서, 경제사업은 원래 적자사업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비효율성을 합리화해 왔다.

농협의 임직원들이 이번 사업분리를 계기로 협동조합인으로 거듭나는 의식개혁이 일어나고, 그동안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앞으로 3년 안에 모든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큰 변수다. 아직도 경제사업 분리에 소극적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이 경제사업 부문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니, 더욱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기본법 제정으로 농협 독점시대 끝나

아무튼 지주회사로의 분리라는 처음 가보는 개혁에 농협은 나서게 되었다. 무엇보다 경제지주는 농민조합원과 회원조합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협동조합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지주가 중앙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되고 전문가에 의한 경영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전통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농민조합원이 피부로 “농협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한다. 선키스트, 제스프리, 그리너리, 대니시 크라운과 같은 세계적 협동조합기업들이 펼치는 글로벌 브랜드마케팅의 기법을 도입해, 우리 농협도 글로벌 농기업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농협 개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때맞춰 협동조합기본법 시대가 열린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기본법에 따라 우리 농민들이 기존의 농협을 넘어서는 대안의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품목별로 생산자 농민이 시·군, 읍·면 같은 행정구역과 지역의 제한을 넘어, 생산·가공·판매·유통 등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농민(생산자)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농협이 협동조합을 독점하는 시대가 끝나고 농업인을 상대로 협동조합들이 경쟁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농업인이 중소가공업자와 연대해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도, 농민과 가공생산자,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는 통합적 협동경제를 구축하는 ‘신세대협동조합’을 세우는 것도 가능해졌다.

농협이 지금처럼 특별법의 테두리에 안주해 주인인 농민조합원보다 임직원의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는 ‘대리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솔직히 말해 그런 농협에는 이제 미래가 없다. 2012년이 농민협동조합의 새 지평을 열고 새판을 짜는 해가 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양부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지주사 아닌 연합회로 농협법 다시 개정하라”

장상환 경상대 교수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이 총선 공약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식량자급률 향상, 다양한 직접지불제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보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통상협정에서 농산물 개방 유예 등과 함께 진정한 농협 개혁이 중요한 과제이다.

네덜란드나 덴마크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농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두 요소는 정부의 농업보호정책과 농민의 힘, 즉 농업기술력과 사회적 단결력이다. 농업 보호가 강화되더라도 생산·유통 자본과의 대결에서 농민의 단결력이 약하면 실속은 자본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시장지배력을 장악한 대형 유통자본이 농가에 과도한 납품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등 불공정 거래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이대로는 중앙회-농민 대립 계속

여기서 농협 개혁을 통해 경제사업을 대폭 강화해야 하는 필요성이 부각된다. 신·경 분리가 이루어진 것은 한발짝 진전이지만 새로 출범한 지주회사 방식의 사업구조 개편은 진정한 농협 개혁, 농민을 위한 농협 개혁이라 할 수가 없다. 지주회사의 운영원리는 투자자본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지주회사를 통제하게 된다지만 농민조합원이나 회원조합이 중앙회를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결국 농협은 농협 임직원과 농협을 규제하는 정부관료 손에 들어가게 된다. 중앙회 신용사업은 농민의 이해관계와 통제를 떠나 독자적인 엔에이치(NH)금융그룹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농협 경제사업을 지주회사 방식으로 개편하는 것은 회원조합이나 회원조합 연합의 경제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앙회 임직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거래 과정에서 회원조합 또는 농민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남해화학은 다른 비료회사들과 담합해 비료값을 과도하게 인상하여 농민에게 피해를 주었다. 소값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농협사료는 사료값 인상으로 농민에게 부담을 지우고 폭리를 취했다. 농협하나로마트 또한 대형 유통매장과 경쟁하려면 납품하는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가격을 최대한 낮춰야 하고 외국 농산물과 일반소비재를 취급할 수밖에 없다. 목우촌도 축협의 자회사이다 보니 사업 확대에 한계가 뚜렷하고 소값 하락에 전혀 대응할 수 없었다.

광역으로 묶으면 시장지배도 가능

진정한 농협 개혁을 위해서는 연합회 방식으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재편해야 한다. 경제사업을 잘하는 것은 농업협동조합이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농민조합원들이 협동조합 경제사업에 적극 참여해 네덜란드나 덴마크처럼 농협이나 축협이 시장에서 독점적 공급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사업을 해야 1인 1표의 원리가 작동해 의사결정에서 농민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고, 사업운영에서도 이용고 배당(농협사업 이용실적에 비례한 조합원 배당)을 우선하므로 조합원의 사업 이용을 촉진할 수 있다. 다만 회원조합은 영세하므로 이를 시·군단위나 광역단위로 통합하고, 다시 전국단위로 연합회를 만들어 판매사업과 구매사업을 하면 시장지배력을 가질 수 있다.

다음 국회 또는 다음 정부에서 농협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 지난해 농협법 개정 때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 분리 법안에 반대한 민주당 의원은 7명에 불과했다. 민주통합당이 현재 형태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것을 후회하듯이 여야는 지주회사 방식의 농협개혁법이 올바르지 않은 길임을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연합회 방식의 신·경 분리 농협법 개정을 총선 공약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농민들도 영농조합법인과 농협의 연합경제사업 등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조직력을 강화해 실질적인 농협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

“역피라미드 지배구조 라보방크에서 배워라”

김현대 <한겨레> 선임기자
농협중앙회가 50년 만의 사업구조개편을 준비하면서 자주 인용한 벤치마킹 모델은 네덜란드의 라보방크였다. 라보방크는 116년 역사의 네덜란드 최대 은행으로 협동조합이다. 하지만 농협은 오늘의 라보방크를 이룬 협동조합 경영의 요체는 배우지 않았다. 정부의 자본금 지원을 받아내는 데만 라보방크 협동조합 사례를 이용했다.

조합원이 맨 위에 있는 조직으로

농협이 라보방크에서 꼭 배웠어야 할 한가지를 꼽으라면 역피라미드 지배구조이다. 라보방크의 조직도에는 맨 위에 조합원이 있고, 141개 지역 라보방크가 가운데에, 이사회와 최고경영자가 맨 아래에 그려져 있다. 우리 눈에 익숙한 주식회사의 피라미드식 조직도를 거꾸로 뒤집어놓은 모양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상향식으로 올라가자는 발상을 넘어, 처음부터 조합원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음을 웅변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지난해 라보방크에서 만났던 빌베르트 판덴보스는 지역 라보방크를 141명의 어머니로, 중앙 라보방크를 1명의 딸로 비유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달 말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농업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사업구조개편의 의미를 크게 부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분리의 긍정적 효과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농협이 잘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인색했다.

116년 역사의 라보방크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협동조합이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은행으로 커졌지만, 지배구조와 은행경영에서, 여전히 ‘협동조합의 심장’이 뛰고 있다. 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폐쇄적·권위주의적 문화 벗어야

첫째,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다. 농협 특유의 협동조합 경영 원칙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고민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승진 시험 통과하려고 농협법을 공부한 적이 있을 뿐 직원들이 제대로 협동조합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협동조합 정체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일 것이다. 아마도 ‘분리독립’ 이후 금융지주 사람들은 그림자만 희미한 협동조합의 유전자를 지우려 할 것이다. 경제지주 사람들은 돈 많이 버는 데 골몰할 것이고, 중앙회의 권력집단은 끝까지 통제장치를 부여잡으려 할 것이다.

둘째, 회원조합의 개혁 논의가 빠졌다. 농협의 1167개 회원조합은 라보방크의 141명의 ‘어머니’에 해당한다. 하지만 농협에서는 중앙회가 손쉽게 통제하는 비인격적인 객체일 뿐이다. 라보방크에서 ‘어머니’들은 2단계로 지역 단위 대표를 선출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72명의 중앙대표자회의를 구성한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이사회를 감독하면서, 라보방크의 정체성과 건강한 경영을 지탱하는 것이다. 농협의 ‘1167명 어머니’들은 주인 행세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각개약진으로 흩어져 중앙회의 ‘딸’이 나눠주는 떡을 고분고분 받아먹을 뿐이다.

셋째, 농협 조직의 내부개혁이 빠졌다. 농협의 조직문화는 닫혀 있고 권위주의적이다.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 있다. 200개 가까운 지역농협에서 대출금리 조작이 벌어져도 중앙회에서 먼저 나서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사업구조개편에 따른 최고경영진 인사는 철저한 지역안배로 이뤄졌다. 경제지주의 초대 대표 또한 경제사업 경력이 없는 인물이었다.

최양부 농협제자리찾기국민운동 대표는 ‘제2농협’의 출현을 기다린다고 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농협법 재개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농협 개혁의 출발점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맞게 지역조합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양식 있는 농협 조합장과 임직원들에게 호소한다. 길게 보고 협동조합 공부부터 시작하자! 김현대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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